나는 그때 본능적으로 아버지를 흘끔 바라봅니다. 아버지는 새엄마가 주씨 아저씨 옆에 껴 앉아서 계속 웃음을 흘리고 있을 즈음 TV 리모컨을 들어서 선반 위에 놓여 있는 TV를 켭니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채널 YTN이 뜨고 아나운서의 멘트가 나옵니다. 아버지가 TV를 켜고 YTN을 본다는 것은 그것 외에 눈앞에서 일어나는 그 어떤 장면이나 소리에도 관심을 끊겠다는 뜻입니다. 네, 보고 싶지 않은 것이 눈앞에서 일어날 때, 듣고 싶지 않은 것이 귓가에 들려올 때,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은 TV를 켜는 것입니다. 나 역시 시나브로 TV에서 들려오는 아나운서의 멘트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정부와 문화광광부는 에너지 절약과 국민의 건강 증진을 위해 지자체와 협의해 전국적으로 10개 도시를 선정하고 자전거 전용도로망을 확충하기로 했습니다. 이와 함께 자전거 대여소를 대거 보강 정비해서 많은 시민들이 보다 쉽게 자전거에 접근할 수 있는 생활환경을 조성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기존의 도심 내 자전거도로를 사무실이 많은 오피스 타운 등과 연결시켜 자전거 출퇴근을 유도하기로 했습니다.”
“미친 놈들! 지랄하고 자빠졌네.”
그렇게 말한 이는 계씨 형제 중 형인 계중식입니다. 계중식 역시 무심코 TV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오토바이를 끌고 폼 나게 달리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폼나는 일이라고 믿고 있을 그에게 자전거 수요를 유도하는 뉴스가 달가울 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가 침을 튀기면서 말을 잇는군요.
“아니 형님들, 저게 말이 됩니까? 자전거가 밥을 먹여줘요? 아니 왜들 저렇게 미친 짓들을 하는 거지. 아니 한가하게 자전가 페달이나 굴리면서 여유 부리면서 누가 쌀을 가져다 줘요? 빠른 게 좋은 거 아닙니까?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가져다주려면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가서 줘야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주면 목마른 사람은 목이 말라 죽는 거 아니냐구요?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내참.”
그러자 술자리에서만큼은 만숙씨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새엄마가 맞장구를 치네요.
“아이구 계 사장님 말씀도 한번 이해하기 쉽게 하시네. 맞아요. 목이 말라 죽겠는데, 어디 한가하게 자전거를 타요 타길. 호호.”
새엄마의 왼쪽 손이 착 달라붙은 가죽바지를 입은 계중식의 허벅지를 살짝 쓰다듬는 것이 내 눈에 보입니다. 아버지는 그것을 보았을까요? 새엄마는 주씨 아저씨보다는 계중식에게 호감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 자리의 좌장격인 세탁소 박씨 아저씨가 훈수를 두고 나서네요.
“아니, 그동안 뒤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달려와서 우리가 그래도 이 정도로 사는 거지. 오토바이나 자동차를 놔두고 자전거를 타자는 작자들은 그럼 핸드폰이니 컴퓨터니 다 반납해야 하는 거 아냐? 예전처럼 파발을 돌리든가 주판알을 굴리든가 해야지.”
“하하하.”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는 자들이 함께 웃고 있습니다. 그들이 웃는 것은 그들의 자유이고, 그들은 웃을 만한 일이 있어서 웃는 것입니다. 네, 그들에게는 충분히 웃을 만한 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 웃음은 다른 이에게 감염되지 않는,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수 없는 웃음이어서 좀 질이 나쁜 웃음입니다. 네, 내 생각은 그렇습니다. 그 웃음은 다른 이를 감염시키기는커녕, 그 웃음의 논리가 배제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깔보는 웃음이기에 흉측한 웃음입니다. 모든 웃음이, 다 유쾌하고 아름다운 것은 아니라는 것을, 저 사람들은 지금 보여주고 있네요. 나는 지금 내 생각이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 궁금합니다. 상문이 형한테 물어보고 싶지만, 지금 상황은 형을 만날 수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