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저 왔어요!”
군복을 입은 만세 형이 가게에 들어섭니다. 그는 아직 날이 선 줄이 잡힌 빳빳한 군복을 입고 있지만 그의 목소리는 형편없이 비실거립니다. 그에게서 군기나 단정함 같은 건 이미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어딘가 병신스러움이 느껴지는 목소리입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이미 술에 취해 있는 상태입니다. 군대에서 제대신고를 하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술을 퍼마신 모양입니다. 새엄마가 주방에서 뛰쳐나와 만세 형을 반깁니다. 정말 두 모자는 만세라도 부를 기세입니다.
“만세 왔구나. 만세야. 우리 만세가 드디어 제대를 했어!”
그러자 만세 형이 교활한 표정과 태만한 인상 따위와는 어울리지 않게, 재롱 섞인 목소리로 응대를 하네요.
“응 엄마, 저 왔어요. 엄마의 큰아들 만세가 왔어요.”
“아이구 내 아들, 고생이 많았다. 그런데, 어디서 이렇게 술을 마셨니.”
만세 형에게서 뒤늦게 술 냄새를 맡은 새엄마가 그렇게 말하자 만세 형이 조금 전의 목소리를 싹 바꿔서는 토라진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응 같이 나온 동기들하고 좀 마셨지. 왜, 오늘 같은 날 술 좀 마시면 안 돼?”
“안 되긴 왜 안 돼. 자 여기 앉아. 엄마가 술 한잔 더 줄게.”
새엄마는 만세 형에게 홀 중앙의 테이블에 앉을 것을 권하면서, 카운터에서 세 발자국 쯤 앞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어정쩡하게 서 있던 아버지를 보고는 한마디 합니다.
“아니, 당신 만세를 보고도 왜 아무런 말도 안 해요. 군대에서 개고생을 하다가 제대를 했는데, 수고했다는 말 한 마디 안 해요?”
그러자 그 소리를 들은, 술 먹은 만세 형이 다시 병신스러운 말을 내뱉습니다.
“그럼, 내가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영창도 세 번씩이나 갔다 오고.”
아직 군대를 가지 않은 나도 영창이 말썽을 피우는 군인들이 들어가는 군대 안의 감옥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영창을 한두 번도 아니고 세 번씩 갔던 것을 자랑이라고 떠들어내고 있으니, 만세 형은 정말, 내가 생각한 대로, 형으로서 내가 그다지 기대할 게 없는 사람인 게 분명하네요.
아버지는 마지못해, 만세 앞으로 두 발자국 정도 다가가서는 어색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고생 많았다. 네 엄마가 네 생각을 여간 많이 하는 게 아니었어.”
갈수록 술기운이 오르는지 만세 형은 테이블에 상체를 반쯤은 구부린 채 대답합니다.
“헤헤, 아저씨는 우리 엄마랑 결혼했으니까, 나한테는 새아버지가 되네. 그런데, 나한테 아버지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그게 지금 이 순간 존나 궁금해지네.”
아버지의 얼굴은 그만 무참하게 빨개집니다. 새어머니가 이번엔 나를 보고 다그치듯 말합니다.
“달구도 뭐해? 형한테 인사해야지.”
나 역시 내키지 않는 표정을 숨기지 않으면서 만세 형에게 말합니다.
“군 생활 하느라 고생 많았어요.”
어차피 그는 내가 어떻게 인사를 하든, 귀담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이미 주의가 산만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주방 앞에서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음전하게 서 있던 옥희 누나에게도 새엄마의 질책 어린 시선이 가서 꽂힙니다.
“옥희도 내 아들에게 인사해. 아마 너랑 동갑일 거야.”
옥희 누나는 들릴락 말락 작은 소리로 인사를 합니다.
“군 생활 하느라 고생 많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