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군대에 가있던 새엄마의 큰아들 만세 형이 내일 제대를 해서 집에 온답니다. 글쎄요, 워낙 첫인상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만세 형과 함께 한집에서 살아야 할 앞으로의 시간이 좀 내키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걸 피할 방법은 없습니다. 이미 우리 집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은 모두 새엄마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새엄마는 오늘 평소보다 일찍 식당 문을 닫으면서 옥희 누나에게, 식당 2층에 있는 살림집의 맨 오른쪽 방, 그러니까 옥희 누나가 쓰던 방을 말끔하게 비우고 청소를 해놓으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옥희 누나의 방을 내일 제대하는 자신의 큰아들에게 쓰게끔 할 생각인 모양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방을 쓰던 옥희 누나에게 한마디 상의도 하지 않고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요. 하지만 옥희 누나는 여전히 고분고분하게 새엄마의 명령에 따르기로 합니다. 옥희 누나는 평소에 쌀 포대 등속의 부식재료 등을 쌓아놓던 맨 왼쪽의 작고 누추한 방으로 옮겨가기로 했습니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살림집의 방은 옥희 누나가 옮겨가기로 한 방까지 포함해서 모두 네 개입니다. 방 두 개는 아래층 식당 안쪽에 있고, 방 두개는 2층에 있습니다. 아래층 식당 안쪽에 딸려 있는 안방은 새엄마와 아빠가 쓰고 있고 안방과 나란히 놓인 옆방은 제가 쓰고 있습니다. 2층에 놓인, 그런대로 의젓하고 깔끔한 방은 주인이 옥희 누나에서 만세 형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옥희 누나는 이제부터는 가장 작고 누추하고 을씨년스러운 방에서 잠을 자야 합니다. 그것도 마음이 아프지만, 저는 옥희 누나가 만세 형과 같은 2층에 있는 방을 써야 한다는 사실이 좀 마음에 걸립니다.
나는 옥희 누나가 방을 옮기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갑니다. 옥희 누나의 세간은 옥희 누나를 닮아 소박한 것들뿐입니다. 옥희 누나는 5년 전 우리 집에 올 때 가져왔던 가방에 차곡차곡 옷가지들을 담습니다. 그리고 옥희 누나가 읽던 책들과 옥희 누나가 애지중지하는 화집들을 박스에 담습니다. 네, 옥희 누나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일을 마치고 자기 방에 들어와서 화집 속에 들어 있는 화가들의 그림을 들여다보는 것이었습니다. 화집을 박스에 담는 누나의 손길이 파르르 떨리는가도 싶어 내가 물었습니다.
“누나, 기분 괜찮아?”
그러자 의외로 밝은 목소리가 들려오네요.
“응 괜찮아. 어차피 나도 아주머니 아들이 곧 우리 집에 온다는 얘기를 듣고, 내 방을 내어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
아버지도 마음이 쓰였는지, 어느 사이 2층에 올라와서는 누나 방문 앞에 서 있습니다. 아버지가 2층에 올라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새엄마가 아버지가 2층에 올라가는 걸 무척 싫어했기 때문이죠. 아버지가 내게 나지막이 말을 하네요.
“달구야 뭐하니, 얼른 누나 짐 싸는 것 좀 도와줘. 그리고 저쪽 방 청소하는 것도 좀 도와주고.”
“네 알았어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저 혼자 해도 충분히 해요. 짐이 얼마나 된다구요.”
옥희 누나는 다소 민망한 표정으로 짐을 들기 위해 방안에 들어서는 저를 제지합니다. 옥희 누나의 가냘픈 손이 내 무릎께를 잡습니다. 하지만 나는 냉큼 달려들어서 누나가 싸놓은 가방을 불끈 들어 밖으로 가지고 나옵니다. 그러곤 구석진 방 앞에 가져다 놓습니다. 뒤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다시 들립니다. 몹시 측은하면서도 무기력한 목소리입니다.
“미안하다 옥희야.”
그때 구석진 방 안에 있던 귀뚜라미 한 마리가 문턱에서 문 바깥쪽으로 튀어나옵니다. 빛도 잘 들지 않는 그 방안에서 귀뚜라미는 얼마나 많이 울었을까요. 그러면 혹시, 옥희 누나도 귀뚜라미처럼 그 방에 갇혀 자주 우는 시간을 갖게 될까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가슴이 좀 답답해집니다. 착하고 예쁜 옥희 누나가 활짝 웃는 모습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옥희 누나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본다면 내 마음도 시원해질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