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친네가 뭐라고 했는데 그래?”
“글쎄, 다짜고짜로 모두들 다 죽을 팔자니까 약을 쓸래도 약이 없다는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지?”
그러자, 안마방 손씨가 마치 연기를 하는 배우처럼 과장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사방으로 휘저으면서 마저 이야기를 합니다.
“뭐라더라, 몸을 정하지 않게 놀리니 그게 바로 죽을 팔자라고 했나. 그렇게 말하면서 나랑 여자애들 면상에 대고 침을 튀기더라니까요. 절 보고는 아예 살 자격조차 없는 인간이라고 말했어요. 아주, 작정을 하고 악담을 퍼붓는 거 같았어요. 여자애들은 얼굴이 붉어져가지고 눈물을 쥐어짜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어요.”
세탁소 박씨는 안마방 손씨에게 진정하라는 손짓을 보내면서 자신이 자신의 투가리에 소금과 고춧가루를 한술씩 떠넣습니다. 이미 고깃국은 충분히 빨갛고 짠데도 말입니다.
“그래 뭐하러 거긴 갔어. 쯧쯧, 돌팔이 한의사가 이제 망령까지 든 모양이네. 자네가 좀 참어. 이 동네서 어디 그 양반 악담을 피한 사람이 있을라구.”
비록 박씨 아저씨는 저렇게 말을 하지만 제가 보기엔 수정한의원 원장님인 윤씨 할아버지는 우리 동네에서 유일하게 바른 말을 할 줄 아는 어른입니다. 세탁소 박씨나 목욕탕 주씨 아저씨들에게는 윤씨 할아버지가 하는 말이 모두 악담으로 들릴 수밖에 없을 거예요. 왜냐하면 언제나 자신들이 듣기에 거북살스럽고 껄끄러운 말만을 하기 때문이죠. 윤씨 할아버지는 세탁소 박씨 아저씨와 목욕탕 주씨 아저씨, 그리고 오토바이 상회의 계씨 형제, 지금 막 윤씨 할아버지로부터 해꼬지를 당했다는 투로 떠드는 손씨를 노골적으로 경멸합니다. 사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윤씨 할아버지는 이 동네에서 행세 좀 하는 사람들-사실 박씨, 주씨, 계씨 형제, 손씨들은 이 동네에서 발언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한테 그다지 인기가 없어요. 윤씨 할아버지가 서슬 퍼런 독설을 퍼붓는 대상이 바로 그들이니까요.
우리 동네에 난데없이 오토바이 상회가 들어설 때도, 그리고 1년여 전쯤 안마방이 들어설 때도 우리 동네에서 마지막까지 맨 앞에 나서서 목에 핏대를 세우며 반대를 했던 사람이 바로 윤씨 할아버지였어요.
목욕탕 주씨 아저씨가 한마디를 하는군요.
“그 노친네를 언젠가는 이 동네에서 쫗아내고 말 거야. 거리에서 아주 가끔 마주치면 내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거야. 그러면서 인간아 똑바로 살아라고 혼잣말을 하듯 내뱉는 거야. 내가 그 소리를 못 들었으면 모를까. 암튼 그 노친네만 마주치면 기분이 참 더럽다니까. 자기가 무슨 독립군이야 뭐야. 그리고 그 비실비실하게 생겨서 사내 노릇도 전혀 못하는 아들 녀석은 도대체 뭐하는 녀석이야. 아들녀석 건사나 잘 하지 말야.”
주씨 아저씨가 말한 윤씨 할아버지의 아들은 바로 시를 쓰는 상문이 형을 말하는 겁니다.
주씨 아저씨의 말에 다시 안마방 손씨가 맞장구를 칩니다.
“그러게 말이에요. 그 노친네 아들내미는 무슨 시를 쓴답시고, 맨날 얼굴이 하얗게 들떠서 책이나 옆구리에 끼고 다니잖아요. 언젠가는 우리 안마방 입간판에 딱 침을 뱉으며 지나가는 게 딱 내 눈에 띄었지 뭐예요. 그냥 딱 들켰지. 그래서 내가 대뜸 멱살을 잡고 왜 남의 집 간판에 침을 뱉고 지랄이냐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침을 뱉을 만해서 뱉었다는 게 아니겠어요. 내참 유별난 부자간이에요.”
“허허, 그런 일이 있었단 말야?”
세탁소 박씨 아저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합니다.
박씨와 주씨 아저씨의 고깃국 그릇이 다 비워졌습니다. 그들은 물컵을 들어 입에 붓고는 마치 가글을 하듯이 요란하게 입을 헹굽니다. 그러곤 깨뜨릴 듯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카운터에 와서 지폐 두어 장을 아버지 앞에 던져놓고는 휭 하니 나갑니다. 그들이 그렇게 아버지를 없는 사람처럼 대할 때조차도 아버지는 일언반구 대응하는 법 없이 TV 뉴스 채널 YTN을 보고 있습니다.
나는 갑자기 꼬장꼬장한 윤씨 할아버지와 그의 시 쓰는 아들 상문이 형이 보고 싶어집니다. 그들의 맑고 소신 있는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식당에서 나갈 수가 없습니다. 저에게 자유시간이 허락되는 때는 점심손님이 모두 물러난 오후 세 시부터 네 시 사이, 그리고 식당영업이 끝나는 밤 열 시 이후뿐입니다. 사실 밤 열 시 이후에 자유시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하루 종일 식당 일이 시달린 몸은 축 늘어진 채 금방 잠에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옥희 누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시간 오후 다섯 시 십오분. 이제 곧 저녁을 먹는 손님들이 밀어닥칠 시간입니다.
붉고 맵고 짠 고깃국에 길들여진 이 동네의 주민들이, 머리와 어깨에 묻은 비둘기 똥을 털면서 비둘기식당에 들어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