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아버지는 아무런 생각이 없기 때문에 새엄마가 바라는 시원한 대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
“아니, 만세도 당신에겐 자식인데, 왜 그렇게 아무런 생각이 없어?”
“아니 뭐, 아무튼 일자리라도 하나 얻어야겠지 뭐.”
“아니 무슨 대답이 그렇게 성의가 없어. 음, 타이어공장에라도 자리를 하나 봐달라고 해야 하지 않겠어? 당신 공장에 아는 사람 없어?”
아버지는 물론 타이어공장에 아는 사람이 없고,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자기와 결혼한 여자의 큰아들을 위해서 아쉬운 소리를 할 생각도 없습니다. 아버지는 이미 어지간히 새엄마에게 질려 있기 때문이죠. 사실 아버지는 이웃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새엄마와 결혼을 하고 식당의 간판을 비둘기식당으로 바꿔 단 이후 동네 사람들로부터 빠르게 인심을 잃었어요. 동네 어른들이 하나둘 모이면 하나같이 이런 말들을 하곤 했죠.
“토담집 공씨가 예전의 공씨가 아냐.”
“안 사람을 보내고 나더니 사람이 영 이상해졌지.”
“새로 들인 여자나 식당 바뀐 꼴이나 도저히 공씨답지 않지.”
사실 아버지가 동네 어른들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게 제 입장에서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동네 어른들이 근거 없이 아버지를 흉보는 건 아니기 때문에 저로서도 무작정 동네 어른들의 말을 무시하거나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튼 최근 들어 부쩍 새엄마와 아버지가 만세 형 이야기를 자주 나누는 걸 보면 만세 형의 제대가 코앞에 다가오긴 다가온 모양입니다.
세탁소 박씨 아저씨가 목욕탕 주씨 아저씨와 함께 비둘기식당 홀 중앙에 앉아 밥을 먹고 있습니다. 그들이 먹는 밥은 예의 붉고 맵게 끓여낸 고깃국입니다. 메뉴판에 ‘비둘기국밥’이라고 쓰여 있는 메뉴죠. 그들은 막 안마방에서 나온 모양입니다.
“미희라고 했나, 자네 말대로 그 아이 아주 죽여주던데. 어찌 그리고 간지러운 곳만 꾹꾹 눌러주는지.”
“그래, 내 말이 맞지? 하하, 내가 웬만해선 자네에게 그 아이 양보 안 하는데. 특별히 생각한 거라고.”
“에이, 그런 말이 어딨나. 먼저 가서 콕 찍는 게 임자지. 그런데 그 아이는 어디에 있다 온 아이지?”
“대학에 다니다가 휴학을 했다잖아. 여대생이어서 그런지 손맛이 아주 특별나지?”
그런 말을 주고 받으면서 그들은 연신 고깃국을 퍼먹습니다. 그때 안마방 김씨 사장이 들어옵니다. 그는 세탁소 박씨 아저씨와 목욕탕 주씨 아저씨를 보자마자 호들갑스럽게 소리를 치네요.
“형님들! 내 여기 계실 줄 알았지. 아니, 수정한의원 원장이란 노친네 말이에요, 완전히 노망이 들었지 원.”
그러자 박씨 아저씨가 안마방 손씨를 손짓으로 옆자리에 권하면서 묻습니다.
“왜 그래? 무슨 일인데?”
“아니, 여자애 둘이 허리가 좀 아프다길래 약이라도 먹일려고 한의원에 갔더니, 그 노친네가 하는 말이 가관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