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까지만 들었을 때는 정말 새엄마의 인심에 감동을 할 정도였어요. 내가 함부로 짐작하고 있었던 것보다 새엄마라는 사람이 정도 많고, 사람의 형편을 헤아릴 줄도 아는 사람이라는 그런 기대감을 갖게까지 했죠. 하지만 새엄마의 속마음은 뒤에 이어진 말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틀림없는 것이죠.
“그리고, 잘 들어봐. 지금 우리가 비둘기식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식당 규모를 엄청 키워놔서 일손 하나가 아쉬운 판이잖아. 미쳐도 유분수지. 왜 일이 손에 익은 사람을 내보내려고 해요. 얼굴도 반반하고 보아 하니 쟤 얼굴만 보자고 이곳에 드나드는 사내들도 많이 생길 것 같은데. 쟤는 여기서 계속 일해야 해요.”
네, 그게 새엄마의 진심이었죠. 그런 속셈을 옥희 누나가 없는 데서 꺼내놓은 것이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죠. 새엄마는 옥희 누나를 가족이 아닌, 단순히 식당의 일꾼으로만 생각했던 거예요. 그것도 돈을 들이지 않고도 마음껏 부릴 수 있는 일꾼 말이에요. 사실 그날 이후에 새엄마가 옥희 누나를 대하는 걸 보면, 정말이지 월급을 주면서도 저렇게까지는 부리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정하고 혹독하기 그지없는 것이었어요. 새벽부터 일어나 주방 바닥에 쭈그려 앉아 양파, 마늘, 생강, 콩나물, 무 등 온갖 식재료를 다듬고 준비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손님이 들기 시작하면 주문받고 음식 나르고 빈 그릇 치우는 것까지 홀서빙을 도맡아 해야 했고, 손님이 물러나면 주방에 들어가 설거지까지 해야만 했어요. 하지만 옥희 누나의 입장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계씨 형제들의 경우처럼 짓궂은 남자 손님들의 희롱과 몽니를 그대로 받아내는 일이었어요. 새엄마는 그런 일을 옥희 누나가 온전히 감내하게 만들었죠. 어떨 때는 일부러 그런 것을 방조하고 관망하기까지 했어요. 아, 벌써 그런 세월이 2년이나 계속되고 있네요. 열다섯 살, 아직 소녀티를 벗지 못한 나이에 토담집에 들어왔던 누나가 벌써 스물한 살이 성숙한 여자가 된 거예요.
저는 비록, 학교를 제대로 마치지도 못하고 나이도 어려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많이 미숙한 사람이지만 새엄마의 묵인 아래, 옥희 누나에게 가해지는 어른들의 폭력과 가해가 그렇게 지저분하고 추잡해 보일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것이 ‘비둘기식당’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가진 곳에서 일어난다니, 정말 어이가 없죠.
비둘기식당은 이제 토담집 시절에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밥을 먹는 큰 식당이 되었지만, 그래서 돈도 많이 벌고 있지만 저는 이곳에서의 생활이 아주 힘들고 슬픕니다.
저것 좀 보세요. 비둘기 똥을 뒤집어 쓴 사람들이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우리 집에 와서, 붉고 맵고 진한 고깃국을 시켜 소주를 마시면서 점점 흉악한 몰골이 되어가고 있잖아요. 제 친구의 형이나 삼촌이기도 한 그들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순하고 어진 사람들이었어요. 그런데, 비둘기 떼들이 우리 동네를 점령한 이후부터, 더럽고 조악한 먹이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의 부리를 쪼는 비둘기처럼 야박하고 매몰찬 사람들로 서서히 변해간 거예요.
제가 이야기를 시작하고 시간이 꽤 흐른 것 같군요. 지금까지, 대략 제가 누구이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제 주변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고, 그동안 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 가족과 이 동네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고 그들을 제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서 비교적 상세히 이야기한 것 같아요. 그런데 아직까지 말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