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아버지는 새엄마를 집으로 들이셨고, 새엄마가 살림을 가지고 우리 식당으로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식당의 이름은 토담집에서 비둘기식당으로 바뀌었어요. 그리고 옆 가게 자리까지 세를 얻어 벽을 트면서 주방과 홀의 넓이도 전보다 훨씬 넓어졌죠. 네, 앞서서 얘기한 그대로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식당의 이름이 토담집에서 비둘기식당으로 바뀌었다는 것, 그것이 아마도 그때 저에게 닥친 모든 상황을 정리해서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토담집이라는 소박한 간판이 내려지던 날, 어린 마음에도 생살이 베어지는 것처럼 엄마의 기억과 추억이 뭉텅 잘려나가는 것만 같아 마음이 몹시 아프더군요. 전보다 훨씬 웅장하고 화려한 새 간판이 올라갈 때도 저는 조금도 즐겁지 않았어요. 모르긴 몰라도 아버지도, 옥희 누나도 마음이 아픈 건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엄마가 사고로 돌아가시고 2년 만에 아버지가 뜻밖에 재혼을 하기로 결심했을 때, 아버지를 알던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어리둥절해했지만 그 중에서 가장 당혹스러워했던 것은 옥희 누나였습니다. 옥희 누나는 자신의 거취, 다시 말하자면 계속 우리 식당에 머물러야 하는지, 아니면 떠나야 하는지를 놓고 고민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아버지는 여전히 무언가에 홀린 듯 들뜬 상태로 새엄마와의 새살림 준비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어요. 옥희 누나가 계속 머무르건, 떠나건 그건 자기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식이었죠. 저는 도대체 아버지의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저는 당연히 옥희 누나가 우리와 함께 계속 지낼 수 있게 되기를 바랐죠. 돌아가신 엄마와 먼 친척간이라는 이유가 아니더라도, 2년 동안 옥희 누나는 저에게 친누나 같은 살뜰한 존재였거든요. 그걸 생각하면 옥희 누나가 우리 집을 떠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어요.
하지만 옥희 누나는 날로 수심이 깊어졌어요. 누가 봐도 자신이 떠나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2년 가까이 함께 지내면서 아버지와 내게 정이 들었는데다가 마땅히 갈 곳도 없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옥희 누나는 내심 자신이 떠나는 쪽으로 생각을 굳히고 있는 것 같았어요. 새엄마가 살림을 들이기 하루 전날인가, 옥희 누나는 나를 따로 불러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달구야.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너무 섭섭하게 듣지 마.”
누나가 그렇게 말했을 때 이미 저는 누나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 수 있었어요.
“달구야, 누나는 아무래도 여기를 떠나야 할 것 같아. 사실 내가 여기에 온 것은 너도 알다시피 돌아가신 아주머님과 가늘게나마 연결된 핏줄의 인연 때문이었는데, 이제 아저씨가 새로 결혼을 하셔서 새 아주머니가 들어오신다면, 당연히 내가 나가는 게 맞아. 원래는 아주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때 내가 떠났어야 했는지도 몰라. 내가 염치도 없이 너무 늑장을 부린 셈이지. 아무튼 지금은 내가 떠나는 게 순리에 맞는 일이야. 새로 오시는 아주머니도 그래야 편하실 거고.”
옥희 누나의 말은 저를 무척 슬프게도 하고 서운하게도 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옥희 누나의 판단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또한 들더군요. 누나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거라는 생각 말이에요. 엄마와 엮여 있던 아주 엷고 가는 혈연의 끈으로 우리 집에 오게 되었는데 이미 엄마는 돌아가시고 급기야 아버지가 새엄마와 결혼하기로 한 이상, 누나 입장에서는 우리 집에서 생활하는 게 충분히 부담이 될 법도 했어요.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미 누나는 저에게 한 식구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저는 누나를 설득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