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입맛이 없으시죠? 하지만 일부러라도 많이 드셔야 해요. 저도 엄마와 아빠를 잃었잖아요. 그분들이 어떤 설움이 있어서 그러셨는지는 모르지만, 어린 저를 두고 모두 먼 곳으로 떠나가셨어요. 돌아가셔서 묘라도 모셨으면 찾아뵐 수 있을 텐데 저는 그럴 수도 없는 처지잖아요. 하지만 저는 그분들 원망하지 않아요. 제가 열심히 살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그분들이 원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하죠. 제가 밝게 웃으면 그분들도 어디선가 저를 지켜보면서 밝게 웃으실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아저씨도 힘내세요. 어린 달구도 돌봐야 하잖아요.”
하지만 아버지는 엄마를 잃은 충격과 슬픔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는 듯했어요. 오히려 판단력과 이성이 흐려졌는지 엉뚱한 행동을 하게 되었죠. 네 그건 누가 봐도 정말 엉뚱한 행동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었어요. 그토록 엄마를 생각하며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했던 아버지가 세탁소 박씨 아저씨의 소개로 어떤 여자를 만나기로 한 거예요. 그렇게 만난 여자가 바로 지금의 새엄마랍니다. 더욱 놀라운 건 아버지가 새엄마를 만난 지 불과 석 달만에 재혼을 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었어요.
어느 날, 전에 없이 들뜬 표정으로 저에게 깨끗한 옷을 입으라고 한 아버지는 저를 시내의 고기집으로 데리고 가더군요. 나가 보니 어떤 아주머니 한분이 아버지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미 불판에서는 갈비가 구워지고 있었죠.
“시장할까봐 미리 주문을 해서 굽고 있었어요.”
네, 새엄마라는 사람은 그토록 성질이 급한 분이었죠.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새엄마의 인상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어요. 매우 야무지고 단단해 보이는 인상이었는데, 두 눈에서 다정함을 읽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자리에 앉자마자 아버지가 말했어요. 아버지는 여전히 뭔가에 홀린 사람 같았고, 그런 모습은 저에게 무척 낯설었어요.
“달구야, 우리도 예전처럼 다시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니. 너에게 엄마가 필요할 것 같아서 내가 사람을 들이기로 했어. 여기 있는 아주머니가 네 새엄마가 될 사람이야.”
그러자 새엄마가 호들갑스럽게 웃으면 말했어요.
“네가 달구구나. 축구선수라며? 열심히 해서 국가대표가 되어야지. 그래 국가대표가 최고야. 그래서 아버지를 호강시켜줘야지.”
그러면서 채 익지도 않은 갈비 한 점을 집어서는 내 입 쪽으로 들이밀었죠. 저는 그것을 억지로 삼켜야 했어요. 아버지는 분명 내게 엄마가 필요할 것 같아서 당신이 재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게 아버지의 진심이었다면, 불행하게도 아버지는 사람을 잘못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생각은 새엄마를 처음 보았던 그날부터 어느 정도 내 마음속에 심어진 것이었어요. 여태까지 새엄마는 내가 필요로 하는 엄마의 모습, 그러니까 다정하고 자상한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거든요.
당연히, 친척들과 이웃사람들은 대부분 아버지의 재혼을 반대했어요. 특히 이모들의 반대가 심했죠. 이모들은 아버지를 직접 찾아와서 서운한 마음을 숨기지 않고 내비쳤어요.
“형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언니가 형부한테 이 정도로 쉽게 잊혀질 수 있는 사람이에요?”
아버지는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언니도 나나 달구가 새 출발 하는 걸 원할 거야. 미안해. 이 말밖에는 할 말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