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희 누나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습니다. 그러자 계씨 동생이 어이가 없는지 카운터 앞에 있는 자기 형을 바라보면서 홀 안이 떠나갈 듯 과장되게 소리를 지릅니다.
“아니, 형님, 이 아가씨 왜 이런대! 씨발 누가 보면 내가 이 아가씨 아구통이라도 날린 줄 알겠네.”
그러자 계씨 형은 그저 헤죽 웃으며 이렇게만 말합니다.
“재밌다야, 재밌어.”
그때였습니다. 홀의 문이 열리면서 대여섯 명의, 앳되어 보이기까지 하는 젊은 남자들이 들어옵니다. 그들은 타이어공장에 다니는 노동자들입니다. 그걸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입고 있는 유니폼과 그 유니폼에 찍혀 있는 타이어공장의 로고 때문이지요. 아, 그러고 보니 새벽출근조의 퇴근시간이네요. 아마 저들은 타이어공장의 퇴근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우리식당의 문을 열었을 겁니다. 아니면 비둘끼 떼들이 싸지르는 똥을 피하느라 경황도 없이 식당문을 열었을지도 모르죠. 얼굴들이 낯설고 우리 식당에 처음 오는 사람들인 걸 보면, 아마도 최근에 타이어공장에 채용된 신입직원들인가 봅니다. 홀 안의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타이어 공장의 노동자들은 바로 자리에 앉지 못하고 홀 안의 정황을 살펴보는 듯한 눈치입니다. 그때 주방 쪽에서 새엄마가 재빠르게 튀어나와서는 홀 안의 어수선하고 어색한 분위기를 정리합니다.
“아이고, 어서들 와요, 어서들. 더운 날씨에 고생들 하셨네, 얼른 시원한 쪽으로 앉아요. 이쪽이 시원해, 이쪽이. 에어컨 바람이 빵빵하거든요. 그래, 이 더운 날 얼마나 고생들 하셨겠어.”
새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타이어공장의 앳된 노동자들을 한쪽 자리로 거의 내몰 듯이 데리고 갑니다. 그러고는 계씨 동생 쪽으로 가서 귀엣말로 뭐라고 속삭입니다. 신기하게도 그것은 7~8미터쯤 떨어져 있는 나의 귀에도 정확하게 들립니다.
“아유, 작은 계씨. 옥희 얘가 아직 철이 없어서 그래요. 경험이 없어서 통 남잘 볼 줄 모르지. 학교도 안 가고 집에서만 자란 애라서 그래요. 내가 잘 말해서 저녁에 작은 계씨 총각에게 보낼 테니까. 지금은 마음 풀고 그냥 가요. 응?”
계씨 동생은 그제서야 크게 인심을 쓴다는 듯한 표정으로 옥희 누나로부터 돌아섭니다. 계씨 형제들이 돌아가고 나자, 땅이 꺼져라 내쉬는 아버지의 한숨소리가 들립니다. 아버지는 아무도 들리지 않게 중얼거립니다. 물론 나에게는 아버지의 중얼거림이 다 들립니다.
“당신이 그립구료. 당신이.”
아버지가 낮게 중얼거리며 그리워하는 당신, 그 당신이 나의 엄마라는 것을 나는 너무도 잘 압니다. 그래서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토담집이라는 예쁘고 정 많은 식당을 운영하던 나의 엄마. 나의 엄마는 비둘기들이 이 동네에 떼로 몰려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장 바닥에서 취객의 토사물을 쪼아 먹던 비둘기 떼를 피하려다가 오토바이에 치어 돌아가셨어요. 아버지가 그리워하는 엄마를 저 역시 매일 그리워합니다. 아버지와 나는 그러니까 똑같은 존재를 그리워하는 사람인 것이죠. 그러니, 이 순간 아버지와 나를 이어주는 것도 엄마인 셈입니다. 하지만 같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아버지와 나의 이 그윽한 감상은 새엄마의 앙칼진 목소리에 의해 다시 깨지고 맙니다. 주방 안에서 새엄마가 옥희 누나를 불러들여 꾸짖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