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상문이 형은 식당 안쪽 주방의 동정을 한번 살피고는 더욱 목소리를 낮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저도 아버지에게서 들은 말인데요. 아버지가 읽은 한의학 고전 속에 사람은 자신이 먹는 것이 된다는 말이 있대요. 그게 무슨 말이냐면 음식이 그 음식을 먹는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예요. 예컨대 고요한 숲속에서 자란 채소나 야채를 먹은 사람은 채소나 야채처럼 온순하고 고요해지지만, 아무렇게나 도축되어 피를 뿌리며 길길이 날뛰다 죽은 짐승의 고기를 먹은 사람은 그 짐승처럼 천박하고 거칠고 투박해진다는 말이에요.”
“정말 그런 말이 있어?”
“네, 물론 과학적으로는 검증될 수 없는 좀 과장된 말이겠지만, 이 말은 우리들 인간의 삶을 욕망의 관점에서 이해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될 수도 있어요. 음식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무시할 수 없는 촉매거든요. 아저씨도 생각해보세요. 먹음직스럽고 탐스러운 음식만큼 사람을 현혹시키는 게 또 어디 있겠어요? 음식은 너무나 강렬한 욕망의 촉매, 다시 말해 그 사람 속에 깃들어 있는 욕망을 불러내는 매개라는 말이죠. 그런데, 그 사람에게 시뻘건 고기국물을 계속 주면서 그 맛에 길들여지게 해보세요. 그 사람은 곧 자신의 숨은 욕망을 금방 눈치 채게 되고 말 거예요. 그는 짐승처럼 매번 뜨거운 피와 급박한 맥박을 갈구하게 되는 거예요.”
“여보, 거기서 뭐해! 달구랑 같이 이쪽으로 와서 주방 바닥 좀 닦아!”
상문이 형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 식당 안쪽에서 아버지를 부르는 새엄마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날의 대화는 거기서 끝이 났어요.
지금, 홀 한가운데에 놓인 테이블을 차지한 채 허겁지겁 뻘건 고기국물을 떠먹고 있는 계씨 형제들을 보고 있자니 그날 상문이 형이 했던 말들이 다시 떠오르네요. 속도에 미친 사람들이 벼랑이 있는 줄도 모르고 앞으로만 앞으로만 뛰쳐나가고 있다는 말, 그리고 사람은 자기가 먹는 것이 된다는 말 말이예요. 아버지는 어떤지 모르지만, 저는 상문이 형이 하는 말들이 너무나 명료해서 통쾌하기까지 했어요. 더 많은 말을 듣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죠.
누군가가 자신들을 향해 그런 예언을 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계씨 형제들은 뜨겁고 붉은 고기국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훌훌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날 때도 그냥 일어나는 법이 없습니다. 틀림없이 자신들을 과시하려고 그러는 거겠지만 언제나 우당쾅쾅 의자를 뒤로 자빠뜨리면서 일어나지요. 그들이 식사를 마친 테이블은 또 어떤가요. 마치 싸움이라도 벌인 것처럼 난삽하고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쓰러진 물컵 하며, 엎어진 깍두기 종지그릇,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휴지들. 그들은 마치 무례와 천박함과 야비함을 자신들의 삶의 원칙으로 삼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앞에서도 얘기했던 것처럼 계씨 형제는 어느 날 홀연히 이 동네에 나타나 오토바이 상회를 차렸고 오토바이 상회를 차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유명해졌지요. 그런데 그들을 유명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무례함과 천박함과 야비함이었습니다. 철물점 송씨 아저씨는 그들을 가리켜 노골적으로 이렇게 말하기도 했죠.
“어디서 굴러먹던 문디 새끼들인지는 몰라도 하는 짓이 딱 쌍양아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