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기로는 계씨 형보다 나이가 족히 대여섯 살은 많은 아버지는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도 언제나 그에게 깍듯한 존대를 합니다. 그것이 어떨 때는 비굴하게 보일 정도로 심할 때도 있어요. 오히려 말을 편하게 놓는 쪽은 계씨 형이죠. 아버지는 거의 매일 밥을 먹으러 오는 단골손님인 계씨 형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불편한 게 분명합니다. 싫어하는 사람에게 당당히 맞서지도 못하고, 싫어한다는 말도 못한 채 울렁거리는 속을 다스려야만 하는 나약한 사람. 내가 아는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죠. 당신이 좋아하지 않는 이나 당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이에게는 말조차 제대로 붙이지 못하는 사람. 그리고 그런 불편한 마음을 그대로 마음속에 수심으로 쌓아놓고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 말이에요.
아버지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지금 나의 아버지가 가엾게도 매우 소심한 사람이 돼버렸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가 더없이 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아버지가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에요. 활달하거나 배포가 크지는 않지만 인심이 바르고 우직해서 동네 사람들로부터도 말과 행동이 어긋나지 않는,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곤 했죠. 아마도 엄마를 잃은 상처와 상실감이 아직까지도 아버지를 괴롭히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결코 원만해 보이지 않는 새엄마와의 관계도 아버지를 자주 우울하게 하는 것 같아요.
신기한 사실 하나는 아버지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거나 불편해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새엄마와는 더없이 죽이 잘 맞아서 친하게 지낸다는 것입니다. 새엄마는 식당을 찾는 아저씨들과 짓궂은 농담을 주고받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그들의 팔뚝이나 허벅지 같은 데를 아무렇지 않게 툭툭 치고 쓰다듬으면서 헤픈 웃음을 날리곤 하지요. 음,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새엄마가 그들과 친하게 지내기 때문에 아버지가 그들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요. 글쎄요, 아버지가 질투심을 느낄 만큼 과연 새엄마를 끔찍하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누가 저에게 의견을 묻는다면, 음… 저는 아니라는 쪽이에요. 뭐, 어쨌건 이 문제는 아버지와 새엄마의 일이니 제가 뭐라고 확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좀더 지켜봐야 할 부분이겠죠.
아무튼 계씨 형제를 아버지가 불편하게 여기는 것만큼은 사실입니다. 그냥 그들에게 주눅이 들었다고 하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말이죠. 일주일 전쯤 시인 상문이 형이 우리 식당에 놀러 왔던 적이 있어요. 네, 그날 상문이 형은 단순히 저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식당에 들른 참이었어요. 앞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상문이 형은 토담집이라는 간판을 떼어버린 이후, 우리 식당에서 더 이상 밥을 사먹지 않아요. 저는 지금도 형이 했던 말을 기억하죠.
“토담집의 깨끗하고 정갈한 음식을 피와 기름이 함부로 더럽혔어. 나는 더 이상 여기서 밥을 먹을 수가 없을 것 같다.”
토담집이 비둘기식당으로 간판이 바뀌고 처음 식당을 찾은 상문이 형이 새엄마가 주방에서 끓여낸 해장국을 한술 떠먹고 했던 말이 바로 저 말이에요. 형이 그렇게 얘기했을 때 저는 형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머리를 다치고 퇴원한 이후에 다시 그 말이 떠올랐을 때에는 신기하게도 형의 생각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상문이 형이 우리 식당에 밥을 먹으러 오지 않는 것이 저는 조금도 섭섭하지 않아요. 물론 새엄마는 밥도 사먹지 않으면서 가끔 식당에 와서는 나와 속닥이는 상문이 형을 탐탁지 않아 했지요. 아무튼 그날 우리 식당에 나를 보러 왔던 상문이 형은 마침, 우리 식당에 밥을 먹으러 왔던 계씨 형제들이 식사를 마치고 오토바이의 요란한 굉음과 먼지를 남긴 채 떠나는 뒷모습을 내다보면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그것은 정말 시를 쓰는 상문이 형다운 말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