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윤씨 할아버지와 그의 아들인 시인 상문이 형은 감격이라도 한 듯 서로의 눈을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제 자신이 신기했던 것은 그 긴 설명글을 한번 보고 왼 것뿐만 아니라, 그 내용까지도 완전하게 이해가 된다는 사실이었어요. 그 어려운 말들로 가득 찬 문장이 말이에요.
다시 서전트증후군이라는 말이 나온 것은 제가 범부채라는 약초를 사전에 나온 대로 토씨 하나도 빼놓지 않고 설명했을 때였어요. 상문이 형이 말했죠.
“아버지, 서전트증후군이 틀림없는 것 같죠?”
상문이 형이 윤씨 할아버지에게 그렇게 말하자, 윤씨 할아버지도 이번에는 바로 대답하더군요.
“그래, 그런 것 같아.”
나는 두 번씩이나 상문이 형의 입에서 나온 서전트증후군이란 말이 무엇인지 너무나 궁금했죠. 그래서 상문이 형에게 물었어요.
“형, 서전트증후군이라는 게 뭐예요?”
그러자 상문이 형이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을 하기 시작했어요.
“응, 뇌손상이나 뇌수술처럼 어떤 외부적인 충격 혹은 자극에 의해서 존재하지 않았던 예술적 재능이 갑자기 발현되는 현상을 말하는 거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서전트증후군 현상을 보인 사람들이 속속들이 보고되고 있어. 그림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던 독일의 건설업자가 뇌출혈을 일으켜 수술을 받았는데, 그 이후부터 천재적인 그림솜씨를 보인 사례도 있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는 파킨스씨 병을 앓던 환자에게 뇌 치료제를 투여했더니 갑자기 놀라운 시적 재능을 보인 경우도 있거든. 의사들은 이와 같은 믿을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을 이렇게 설명하곤 해. 사람의 뇌는 크게 좌뇌와 우뇌로 나뉘는데, 좌뇌는 수리능력 같은 이성을 관장하는 반면 우뇌는 언어, 시각 같은 감성을 관장해. 그런데, 좌뇌가 손상되었을 때, 그에 따른 과보상으로 우뇌의 기능이 대폭 강화하는 경우가 있어. 이때 전에 없던 예술적 재능이 발휘된다는 게 의사들의 설명이야. 아마 달구도 뇌를 다치고 수술을 하는 과정에서 언어와 감정을 관장하는 뇌의 기능이 폭발적으로 진화한 것 같아.”
아무튼 그날 제가 식당 앞에서 볕을 쬐고 있을 때, 갑자기 허공에서 나풀거리던 나비 떼처럼 눈부신 말들이 내 머릿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것을 입술을 열어 쉼 없이 중얼거렸고, 제가 그러고 있는 것을 상문이 형이 지나가다가 본 덕분에, 저는 제가 머리를 다치기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서전트증후군이나 천재적 재능이니 하는 말에는 저는 별다른 관심이 없어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축구밖에 모르던 제가, 그러니까 축구라는 룰 안에서 공을 다루는 기교와 다른 선수를 따라잡는 속도만을 익혀온 제가, 지금은 사람들이 사는 이 세상의 말을 섬세하게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에요. 그리고 비로소 세상의 말을 알아듣고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게 됨으로써 저는 이 세계의 일부가 되고, 이 세계에 존재하게 된 거예요. 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기까지에는 조금 전에 말한, 저에게서 서전트증후군의 기미를 처음 발견했던 상문이 형과의 대화가 많은 도움을 주었어요. 사실, 이 비둘기마을에서 저의 유일한 대화상대는 상문이 형이거든요. 그는 시를 쓰는 사람이고, 말을 아주 조심스럽게 가려서 하는 사람이에요. 이 마을의, 말을 빠르고 거칠게 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많이 다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