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마지막 행을 암송했을 때, 곧바로 상문이 형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형은 나와 윤씨 할아버지를 흥분된 표정으로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죠.
“오, 이럴 수가! 조금도 틀리지 않았어요. 완벽해요.”
그러자 윤씨 할아버지가 상문이 형의 흥분을 제지하며 신중한 목소리로 저에게 묻더군요.
“달구야, 너 혹시 이 시를 어디서 듣거나 배운 적 있었니?”
“아니요. 저는 지금까지 시 같은 걸 읽어본 적이 한번도 없어요.”
저는 사실대로 대답했어요.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그러자 아마도 상문이 형이 여전히 흥분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던 것 같아요.
“이 시는 김기림의 <태양의 풍속>이라는 시야. 산문시라서 외우기가 쉽지 않은 시인데, 정말 대단하다. 두 번 듣고 외우다니.”
저는 상문이 형의 말을 듣고서야, 우리나라 시인 중에 김기림이라는 사람이 있고, 제가 암송한 시가 그의 시 <태양의 풍속>이라는 걸 알았죠. 그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윤씨 할아버지가 약장 한켠에 꽂혀 있던 두꺼운 사전을 끄집어내서는 제 앞으로 내밀더군요. 사전의 맨 앞표지에 약초사전이라고 씌어 있는 책이었죠.
“달구야. 이번에는 이 책을 한번 펼쳐보거라. 이 책은 한의에서 약에 쓰는 약초들을 설명해놓은 것인데, 약초 이름과 효능 효과 등을 읽고 최대한 많이 머릿속에 집어넣어봐.”
할아버지가 펼쳐준 약초사전에는 처음 보는 단어들이 많았어요. 모두가 약이 되는 풀들의 이름이었죠. 하지만 그 단어들은 무거운 약초사전 사이에서 납작하게 눌려 버린 채 박제가 된 나비처럼 보였어요. 그 나비들은 당연히 숨을 쉬지 못하고 있었죠. 저는 그것들을 살려내고 싶었어요. 살려내서 나풀나풀 허공에 날려보내고 싶었죠.
저는 하나하나 약초들의 이름을 짚어가면서 그것들을 설명해놓은 글을 읽었어요. 박하, 반하, 방풍, 백개자, 백두구, 백두옹, 백반, 백복령, 백복신, 백선피, 백지, 백질려, 백출, 백현두, 백합, 범부채, 별갑, 복분자, 봉출, 부소맥, 부자, 비파엽, 비해.
이윽코 십 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윤씨 할아버지는 내 앞에 놓인 약초사전을 덮었죠. 그러고는 물었어요.
“범부채에 대해 설명해보아라.”
저는 범부채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어요. 물론 사전에 있는 내용 그대로였죠.
“인도 북부, 중국, 일본, 우리나라 전반에 걸쳐 분포하는 여러해살이풀로 들이나 야산 등지에서 자라거나 관상용으로 재배한다. 땅 밑으로 마디가 많은 짧고 굵은 줄기뿌리가 뻗으면서 번식한다. 줄기의 높이는 1미터 정도이고 잎은 칼 모양으로 줄기의 아랫부분에 밀착하여 어긋 달리며 서로 싸안고 있어 마치 인(人)자를 거꾸로 세운 듯한 형태이다. 7,8월경에 줄기 끝의 가지가 여러 개로 갈라져 짧은 꽃대를 단 꽃이 핀다. 꽃의 크기는 5,6cm 정도로 황적색이며 꽃잎에 검붉은 반점이 있어 나리꽃과 비슷하다. 열매는 삭과로 길이 2.5~3cm 정도의 도란형인데, 그 안에 원형으로 된 흑색의 윤기 있는 씨를 담고 있다. 줄기뿌리를 파서 말린 것을 "사간(射干)"이라 하고, 한방에서는 편도선염 및 이에 수반되는 주위의 농창, 인후병, 소염, 진해에 쓴다. 본초학에서는 화(火)를 내리게 하고 해독하며, 통경·소담하여 목병과 입냄새를 없애고 해열, 해독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주로 인후병에 많이 쓴다. 민간에서는 갓 돋아난 어린 순을 데쳐서 나물이나 국거리로 한다. 민간요법으로는 편도선이 부은 증상에 사간을 달인 물을 머금거나 양치질을 하면 효험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