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제가 한참 허공에서 퍼덕이는 백만 개의 단어를 눈으로 읽으며 중얼거리고 있을 때, 마침 그 앞을 지나던 상문이 형이 저를 발견했지요. 그는 내 입에서 나오는 중얼거림이 범상치 않음을 한눈에 알아봤던 거예요.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시를 쓰는 사람이었거든요.
“달구야, 너 지금 뭐라고 한 거니?”
나는 상문이 형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퇴원 이후 나에게 일어난 일을 상세하게 얘기했어요. 그리고 내가 왜 지금 입술을 쉼 없이 움직이며 중얼거리고 있는지도 얘기했지요. 사실, 그렇게 말하는 중에도 제 눈앞에서는 매혹적이고 신비하고 아름답고 높고 외로운 단어들이 계속 지나가고 있었어요.
그러자 상문 형이 말했죠.
“달구야, 아직 단정하긴 이르지만 너 서전트증후군인 것 같다.”
“서전트증후군요?”
내가 그렇게 묻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 상문이 형은 식당 안쪽을 살피더니, 은밀한 손짓으로 자기를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냈어요.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눈을 쓰윽 닦았어요. 그때까지도 내 눈꺼풀에 달라붙던 나비 떼의 단어들을 잠시 털어버려야 했으니까요. 나는 상문이 형을 따라갔죠. 상문이 형이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수정한의원이었어요. 저도 익히 잘 아는 곳이었죠. 축구를 하던 시절, 저를 위해 엄마가 보약을 몇 번 지었던 곳이니까요. 그곳의 원장님은 머리가 온통 백발로 뒤덮인 윤씨 할아버지예요. 상문이 형은 바로 윤씨 할아버지의 외아들이었죠.
상문이 형은 먼저 윤씨 할아버지에게 나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똑같이 전했어요. 그러자 윤씨 할아버지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물었죠.
“달구야, 사람들이 하는 말의 무늬가 보이느냐?”
말의 무늬가 보이느냐니, 그건 참으로 이상한 질문이었지만 나는 그 이상한 질문이 마치 늘 받던 질문인 것처럼 익숙하게 들렸어요. 그래서 자신 있게 대답했죠.
“네, 말의 무늬가 너무나 잘 보여요.”
그때 옆에 있던 상문이 형이 다시 나서며 말했죠.
“달구야. 내가 간단하게 테스트를 해볼게. 지금부터 내가 어떤 시를 두 번 읽을 테니 잘 들은 뒤에 그대로 기억해서 암송해봐.”
그러면서 자신이 줄곧 들고 있던 가방에서 시집을 꺼내 중간 즈음을 펼쳐서는 읽기 시작했어요.
“태양아 다만 한 번이라도 좋다. 너를 부르기 위하여 나는 두루미의 목통을 빌어오마. 나의 마음의 무너진 터를 닦고 나는 그 위에 너를 위한 작은 궁전을 세우련다. 그러면 너는 그 속에 와서 살아라. 나는 너를 나의 어머니 나의 고향 나의 사랑 나의 희망이라고 부르마. 그리고 너의 사라운 풍속을 쫓아서 이 어둠을 깨물어 죽이련다. 태양아 너는 나의 가슴속 작은 우주의 호수와 산과 푸른 잔디밭과 흰 방천에서 불결한 간밤의 서리를 핥아 버려라. 나의 시냇물을 쓰다듬어 주며 나의 바다의 요람을 흔들어 주어라. 너는 나의 병실을 어족들의 아침을 데리고 유쾌한 손님처럼 찾아오너라. 태양보다도 이쁘지 못한 시. 태양일 수가 없는 서러운 나의 시를 어두운 병실에 켜놓고 태양아 네가 오기를 나는 이 밤을 새워 가며 기다린다.”
상문이 형이 처음 들어보는 시를 두 번 반복해서 읽는 것을 끝마쳤을 때, 나는 마치 상문이 형의 목소리를 녹음한 녹음기의 재생 버튼을 누른 것처럼 똑같은 어조와 똑같은 속도로 그 시를 암송하기 시작했어요. 그것 참으로 편안하고 쉽고 즐거운 일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