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점심 손님들이 막 물러가고 그들이 비운 밥그릇이며 국사발들의 설거지를 끝마친 후라서 그나마 하루 중 가장 한가한 시간이에요. 사람들이 점심을 먹으러 오는 시간인 열두 시부터 두 시까지는 정말이지 눈이 코 위에 붙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코가 눈 위에 붙어 있는 것인지조차 헷갈릴 정도로 정신없이 바쁘죠. 밥을 먹으러 온 사람들은 다닥다닥 붙어 앉아 연신 비지땀을 흘리면서 새엄마가 끓여내는 걸쭉하고 진한 해장국을 먹어댑니다. 육고기의 새빨간 핏물이 둥둥 떠다니는 국을 참으로 걸신들린 듯이 먹어대죠. 어떤 사람들은 눈에 흰자위를 드러내면서 맹렬하게 숟가락을 놀리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붉은 국물, 후루룩거리는 소리들, 숟가락이 투가리 바닥을 긁는 소리, 젓가락이 아랫니에 부딪치는 소리. 그런 것들에 골똘하게 사로잡혀 있다 보면 나는 어느 순간 하루 한끼의 밥을 먹자고 와 있는 이 사람들이 한없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잠시라도 멍하게 한자리에 붙잡혀 있는 시간은 여지없이 새엄마의 고함소리로 깨지고 맙니다. “달구, 정신 안 차려!” 그러면 저는 본능적으로 막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는 손님들의 테이블로 빈그릇을 치우러 뛰어갑니다. 옥희 누나 역시 정신이 없기는 마찬가지에요. 허리를 툭 치면 금방이라도 접힐 듯 호리호리한 몸으로 무수히 많은 투가리 그릇을 주방에서 홀로, 홀에서 주방으로 끝없이 날라야 하니까요. 옥희 누나가 더욱 불쌍한 건 반주삼아 소주를 마시던 손님들이 따라주는 술잔을 억지로 비워야 할 때가 종종 있다는 거예요. 특히 단골인 목욕탕 사장 주씨 아저씨와 오토바이 상회 계씨 아저씨 형제,(저는 가끔 이 사람들을 혼자서만 속으로 ‘계새끼들’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안마방의 김씨 아저씨는 노골적으로 옥희 누나에게 술을 권합니다. 그렇게 바쁜 시간에 일하는 사람을 붙잡아 옆에 앉혀 놓고 억지로 술을 먹이고 돼먹잖은 농을 건네는 거죠.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인정 사납고 매몰차기로 유명한 새엄마가 이들이 옥희 누나에게 부리는 수작 앞에서는 아무런 간섭을 하질 않는다는 거예요. 카운터에서 밥값을 받는 아빠 역시 쭈뼛쭈뼛 술을 받아 마시는 옥희 누나를 약간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만 볼 뿐, 제지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만 속이 타들어가지요.
사실 저는 우리 식당에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밥을 먹으러 오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새엄마의 음식솜씨가 그리 훌륭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죠. 조리를 돕는 아주머니 한 분이 계시기는 하지만 주방에서 조리되는 모든 음식은 새엄마가 양념을 하고 간을 쳐요. 그건 새엄마의 특권이죠. 아무도 양념과 간에 대해서 간섭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새엄마가 간을 치는 음식은 하나같이 그렇게 맵고 짤 수가 없어요. 그것뿐이 아니에요. 얼마나 비위생적인지, 언젠가 주방에서 해장국이 끓고 있는 큰 솥그릇에 엄마가 인공화학조미료 한 봉지를 거침없이 털어 넣고 양념이라는 듯 침을 탁 뱉는 것을 보고는 하루 종일 구역질이 날 때도 있었어요. 새엄마가 해장국 솥단지에 침을 뱉는 것을 보고 만 그날 이후, 나는 우리 식당에 밥을 먹으러 오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미욱스럽게 보일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이런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우리 식당의 이름은 ‘비둘기네 해장국’인데, 우리 동네가 비둘기 마을로 막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 새엄마가 붙인 이름이죠. 큼지막한 빨간 바탕의 식당 간판에도 비둘기 그림이 그려져 있어요. 원래 우리 식당의 이름은 돌아가신 나의 엄마가 붙였던 ‘토담집’이었어요. 흙으로 빚어서 낮게 올린 담처럼 이웃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엄마가 나에게 알려주신 적이 있죠. 저도 토담집이라는 이름이 참 좋았어요. 하지만 토담집이라는 식당 이름을 지었던 엄마는 불쌍하게 돌아가셨고 그와 함께 토담집이라는 이름도 사라졌어요. 5년 전 아빠가 새엄마와 재혼을 하고, 새엄마가 식당 운영의 전권을 쥔 이후부터는 토담집의 추억은 빠른 속도로 사라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