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 아저씨는 하루에도 몇십 벌씩 비둘기 똥이 묻은 점퍼와 남방들을 세탁기 안에 넣고 돌립니다. 그리고 비둘기들이 좋아하는 과자와 빵부스러기를 시도 때도 없이 동네 골목에 뿌리곤 하죠. 잘 모르는 사람들은 박씨 아저씨를 가리켜 비둘기를 몹시 사랑하는 사람인가 보다 생각하겠지만 그건 천만의 말씀이에요. 그는 성질이 괴팍하고 이기적인 사람이거든요. 그가 어떻게 괴팍하고 어떻게 이기적인지는 차차 이야기할게요.
참, 언젠가 방송국에서 우리 동네의 비둘기 떼를 취재하러 왔을 때 동네 사람들을 대표하여 기자와 인터뷰를 했던 이도 다름 아닌 세탁소주인 박씨 아저씨였어요. 그날 박씨 아저씨는 방송국 리포터가 내미는 마이크에 대고 이런 소리를 늘어놓았지요.
“비둘기는 사람과 가장 친근한 새잖아요. 마치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아요. 우리 비상리 주민들은 우리 동네를 우리나라에서 비둘기가 제일 많은 동네, 비둘기가 가장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들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민들은 비둘기처럼 평화를 사랑하니까요.”
박씨 아저씨는 동네 사람들의 평화를 사랑하는 너그러운 품성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얘기했죠. 그 방송의 말미에서 방송국의 리포터는 우리 동네를 ‘비둘기 마을’이라고 소개했고 그후부터는 비둘기 마을이 우리 동네의 별명이 되었어요. 그러나 박씨 아저씨가 카메라 앞에서 리포터에게 한 말은 나로서는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것들입니다.
비둘기가 많은 이 동네는 전혀 낭만적이지도 평화롭지도 않기 때문이에요. 오히려 우리 동네는 흉흉하고 소란스러운 동네입니다. 어떨 때는 비둘기 우는 소리와 세탁소의 대형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만이 하루 종일 쿠륵쿠륵쿠륵, 울려 퍼질 때가 있어요. 그 즈음이면 장단이라도 맞추듯 목욕탕의 굴뚝에서는 검은 연기들이 뭉게뭉게 뿜어져 나와 시커먼 구름떼를 만들곤 하지요. 사람들은 비둘기 똥이 묻은 몸을 씻고 나와서 어깨를 치며 툴툴거리다가 밤이 오길 기다려 술을 마시고 싸움들을 합니다. 그것은 이 동네의 퍽 자연스러운 풍속이 되었어요. 하루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타이어공장에서는 하룻밤에도 타이어 수천 개씩이 생산돼요. 타이어공장의 굴뚝에서는 연일 시커먼 구름 같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죠. 이 동네는 장대비가 내리는 날이면 걷잡을 수 없이 범람하는 하수구의 시커먼 물처럼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동네가 돼버린 거예요. 사람들은 인심을 잃어가고, 쉽게 이웃에게 짜증을 내곤 해요. 물론 그 풍속은 비둘기들이 이 동네에 진주하고부터 생겨난 거예요. 그런 것을 익히 아는 나는 더 이상 비둘기들이 평화를 상징한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아요. 그들이 여전히 평화를 상징한다면 평화를 상징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을 거란 생각마저 들어요. 비둘기가 평화를 상징한다면 돼지나 늑대, 혹은 도마뱀 따위가 평화를 상징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는 말이죠. 비둘기는 오만하고 버릇이 없는 일개 날짐승에 불과해요. 평화를 상징한다는, 그들의 분에 넘치는 지위도 이제는 박탈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해요.
‘비둘기를 잡아서 구워먹고 싶다.’
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이런 생각을 해왔어요. 그러나 나는 또한 알고 있죠. 소심하고 비위가 약한 나는 늘 주저하기만 할 뿐 끝내 비둘기를 잡아먹지 못하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아마 새엄마라면 상황이 다를 거예요. 힘이 세고 못 먹는 것이 없는 새엄마는 비둘기 같은 건 눈 하나 깜짝 않고 먹어치울 거예요. 그리고 그것은 새엄마와 썩 잘 어울리는 일입니다. 새엄마가 못하는 것은 물론 먹는 것뿐만은 아닙니다. 새엄마는 못하는 욕도 없고 못하는 운동도 없습니다. 그런 새엄마가 ‘만숙’이라는 매우 저돌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생각할 때는 참으로 잘 어울리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