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엄마 얘기가 나왔으니 나를 낳아준 엄마, 그리운 나의 엄마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아, 엄마 생각만 하면 저는 지금도 어린애처럼 울고 싶은 생각만 들어요. 엄마는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돌아가셨어요. 정말 좋은 분이었어요. 엄마는 아빠와 함께 읍내에서 작은 식당을 하셨는데, 우리 식당은 음식 맛이 정갈하기로 소문이 자자했죠. 모두가 엄마의 손맛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손님들이 넘쳐 났어요. 엄마는 철마다 나는 신선한 채소와 나물 따위로 맛깔스럽게 음식을 만들었어요. 특히 시원하게 끓여내는 북어국과 구수한 청국장이 일품이었죠. 그리고 시래기국이나 아욱국도 별미였어요. 우리 식당에서 밥을 먹은 손님들은 어린 시절 시골에서 먹던 바로 그 맛이라면서 게눈 감추듯 뚝딱 그릇을 비우곤 했어요. 엄마는 또 정도 많아서, 동네에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을 식당으로 모셔서 가끔 식사 대접을 하고는 했어요. 그리고 운동을 하는 제가 허기지지 않도록 몸에 보양이 되는 음식을 만들어주시곤 하셨어요. 저에게 그렇게 지극정성일 수 없었죠. 그런데 어느 날 세상에서 가장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고 말았어요.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하신 거예요. 엄마는 그날 신선한 채소거리를 사려고 아침 일찍 자전거를 타고 시장에 가다가, 시장 길바닥을 점령하고 있던 비둘기 떼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피하려고 자전거 핸들을 꺾으셨던 모양이에요. 바로 그때 반대편에서 무섭게 달려오던 오토바이가 엄마의 자전거를 힘껏 치고 말았어요. 엄마는 땅에 떨어지면서 머리를 크게 다치셨고, 그로부터 사흘쯤 후에 돌아가셨지요. 비둘기들은 그때 하필이면 간밤에 어떤 취객이 토해놓은 토사물을 쪼아먹고 있었죠. 그리고 좁은 시장길에서 속력을 내며 달려오던 오토바이의 기사 역시 새벽까지 마신 술이 덜 깬 상태였대요. 모두가 원망스럽네요. 네, 비둘기와 오토바이, 비둘기와 오토바이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었던 내 엄마를 돌아가시게 한 거예요. 차차 얘기하겠지만, 비둘기와 오토바이를 제가 끔찍하게 싫어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돼요.
어찌됐든 저는 아직 학교에 다녀야 하는 열여덟 살밖에 안 된 나이지만 더 이상 학생이 아니에요. 저는 지금 아빠와 새엄마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을 돕고 있어요. 청소와 설거지, 배달 같은 식당에서 가장 궂은일을 도맡아하고 있어요. 사실 식당일 말고 제가 딱히 다른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아요. 배워둔 기술 같은 것도 없고, 당연히 자격증도 없고, 결정적으로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는 제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요. 저에게 식당일을 시키는 사람은 새엄마예요. 아직 머리가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힘든 식당일을 하는 게 무리일 수 있지만, 새엄마의 감시 때문에 잠시도 몸을 놀릴 수가 없어요. 보다 못한 아빠가 새엄마에게 뭐라고 한 모양이에요. 그때 새엄마는 식당에 있는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는 큰목소리로 아빠에게 이렇게 소리를 쳤어요.
“자꾸 그렇게 쪼다 같은 소리 할 거야! 정신이 온전치 않은 애는 몸을 놀려야 한다고!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에 둬야 뭐든 보고 배우지.”
이제야 말씀드리지만, 저에게 새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에요. 저는 뇌수술의 후유증을 치료하기 위해 새엄마가 병원에서 타다 주는 약을 매일 먹는데, 그 약을 먹으면 이상하게도 새엄마의 말이 제 귀에 들어와 박히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되어요. 다시 말해서 새엄마의 말을 듣지 않으면 마치 큰일이 생길 것만 같은 그런 강박 같은 거, 그런 걸 느끼게 돼죠. 그래서 저는 새엄마가 시키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어요. 새엄마가 저에게 “청소해!”라고 한번 말하면, 그 말이 마치 한여름 맹렬하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처럼 내 귀에 들어와서는 수십 번 반복되는 거예요. 끊임없이 소리가 재생되는 녹음기가 내 귓속에 들어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새엄마의 목소리는 내가 새엄마가 시킨 일을 해야지만 멈추었어요. 사정이 이러니, 제가 새엄마의 말을 어찌 듣지 않을 수 있겠어요. 새엄마가 병원에서 타다 주는 약을 꾸준히 먹는데도, 몸은 나아지지 않고 예전보다 더 자주 어지러워요. 나는 가끔 내가 젊은 나이에 죽어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몹쓸 상상을 하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