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제부터 제 이야기를 시작할게요. 혹여 제가 들려드리는 이야기가 여러분의 귀를 솔깃하게 할 만큼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끝까지 귀를 기울이고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간곡하게 청을 드리는 이유는 제가 들려드리는 이야기 속에 제가 여러분께 꼭 알려드리고 싶은, 알려드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인생의 진실이 담겨 있기 때문이에요. 인생의 진실이라고 말하니 좀 거창하긴 하지만 저는 정말 여러분께 제가 알게 된 인생의 진실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이렇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겁니다.
먼저 제 이름과 나이를 말씀드리는 게 순서겠죠. 저는 올해 열여덟 살이고 이름은 공달구라고 합니다. 공달구라는 이름, 좀 촌스러운가요? 네, 요즘 TV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 또래 아이돌 가수들의 이름에 비하면 참으로 우둔하고 퉁박스러운 이름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태양’이나 ‘승리’ 같은 이름은 제 이름에 비하면 얼마나 반듯하고 기품이 있나요. 그건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 이름이 아주 마음에 들어요. 신기하게도 이름이 제 운명에 어떤 간섭을 한 것인지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공차기를 좋아했거든요. 공을 거의 달고 살다시피 했어요. 공을 달고 살았던 아이의 이름이 공달구이니, 이것 참 우연치고는 기막힌 우연이죠?
저의 가족은 아빠와 새엄마, 그리고 형과 남동생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아, 그리고 식당에서 일하는 옥희 누나도 저는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저밖에 없다는 것이 좀 슬픈 일이긴 하지만요. 지금 제가 하는 일이라곤 식당일을 거드는 것과 책을 읽는 일밖에 없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저는 비상고등학교의 축구선수였어요. 학교를 대표해서 많은 대회에 나갔죠. 확실히 저는 어렸을 때부터 공을 다루는 데 재주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축구를 처음 가르쳐주신 선생님이나 동네의 어른들도 제가 축구에 남다른 소질이 있다면서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어요. 경상도 말투가 심하고 아빠와 친한 철물점의 송씨 아저씨는 가끔씩 저에게 용돈을 쥐어주며 이런 말을 하기도 했죠.
“니 나중에 국가대표 선수로 뽑혔을 때 나 모른 척하면 안 되는 기라.”
저는 주변분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말 열심히 축구를 했어요.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축구가 제 인생의 전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그때부터 오로지 축구만을 생각했어요. 축구선수로서 커다란 꿈을 꾸기 시작했죠. 네, 송씨아저씨의 말처럼 국가대표로 뽑혀 다른 나라에서 치러지는 큰 대회에 나가는 그런 꿈 말이에요. 그런데, 그 꿈은 제가 넘보지 말았어야 할 욕심이었던 걸까요. 작년 가을에 시합을 나갔다가 경기 중에 머리를 크게 다치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어요. 우리 팀이 코너킥 찬스를 얻어서 공이 상대팀 골대 앞으로 날아왔을 때, 최전방 공격수였던 저는 헤딩을 하기 위해 힘껏 뛰어올랐지요. 공은 정확히 제 머리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고 저는 골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어이없게도 공은 제 눈앞에서 골키퍼의 손에 튕겨나갔고 제 이마는 골포스트를 들이받고 말았어요. 저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답니다. 나중에 눈을 뜬 곳은 병원의 입원실이었는데, 제가 사고를 당하고도 물경 한 달이나 지나 있더라구요. 그러니까 저는 한 달 동안이나 의식불명의 상태에 빠져 있었던 거예요. 의식이 돌아왔을 때 내 귀에 처음 들렸던 말은 새엄마가 마침 회진을 왔던 의사선생님한테 한 말이었어요.
“벌써 한 달이나 이러고 있는데, 거의 죽었다고 봐야 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