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져라, 비둘기』 연재를 시작하며
말이란 늘 어렵지만, 그중 무엇을 시작하면서 거기에 토를 다는 말이 가장 어려운 것 같다. 나처럼 ‘불확실성의 원리’나 ‘아노미적 환경’에 매여 사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러니 남의 말 하듯 어물쩍,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을 이해해줬으면 한다. 짐작컨대 『꺼져라, 비둘기』는, 여전히 외롭고 높고 쓸쓸한 세계를 꿈꾸는 자들을 위한 소설이 될 것 같다.
소설과 관련해서 내게는 몇 가지 확인된 편견이 있는데, 소설이 영악하고 똑똑한 사람들을 고무하는 데 쓰이기보다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위로하는 데 쓰이는 게 훨씬 가치로운 일이라고 믿는 것도 그 중 하나다. 나는 『꺼져라, 비둘기』에도 이 편견을 적용시킬 생각이다.
내가 믿는 편견을 소설 속에서 밀고 나가기 위해 나는 먼저 고정적인 것들을 전복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의심하지 않고 옳다고 생각해온 것들에게 슬쩍 시비를 걸어보는 것이다. 언제나 문제는 시비 자체가 아니라 시비걸기의 방식일 것이다. 나는 좀 세련되고 멋있는 시비걸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나의 시비걸기를 지켜보고 기꺼이 질정해달라는 말을 하고 싶다. 삶과 세상에 대한 오해의 기록으로서의 소설이, 삶의 이치나 섭리를 기록한 소설보다 더욱 위대한 것이라고 믿는 나로서는, 당신들의 오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니까.
『꺼져라, 비둘기』가 불편하게 읽힌다면 일단 작전은 성공!
김도언은
우리 앞에 놓인 삶은 고혈압 환자의 식단처럼 평속하고, 평속한 것을 비웃는 것들에게 둘러 싸여 있다. 그 삶을 견딘다는 점에서 나는 당신들과 다르지 않다. 당신들처럼 음악을 듣고, 샤워를 하고, 밥을 먹고, 쇼핑을 하고, 전화를 한다. 좋은 것을 생각해내지 못할 때 자주 아프고, 어떤 때는 아무런 근거 없이 우쭐해지기도 하지만 십중팔구는 무기력하다. 때때로 너무 빈번하지는 않게 허무맹랑한 상상을 옷처럼 입고 물처럼 마신다. 그림 그리는 것과 사진 찍는 것과 시집 읽는 것을 좋아한다. 좋아서 하는 일이 대체적으로 내게 즐거움을 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즐거운 삶을 포기할 생각이 조금도 없다. 소설은,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가끔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역시 즐겁게 쓰고 있는 편이다. 잘 가는 곳은 한강이다. 혼자 한강의 벤치에 앉아 낮부터 소주 마시는 것을 나름의 선수행(禪修行)이라고 생각한다. 술은 열 번 마시면 다섯 번은 혼자서 마신다. 그렇다고 괴팍하거나 변태적인 기질의 소유자는 아니다. 10년 동안 미치지 않고 무난히 직장생활을 해온 것이 그 증거다. 다른 이에게 폐를 끼치는 일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나는 아마 쌀이 떨어지면 자연사할 때까지 굶는 쪽을 택할 것 같다. 나의 소박한 꿈은 ‘이상하고 매력적인 비주류 작가’가 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당신이 모르는 최후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지금 막 떠오른 설레는 말 몇 가지는 침엽수림, 오아시스(록밴드), 참치, 잔디밭, 에곤 실레 등이다. 장용학, 손창섭, 이범선, 선우휘, 오탁번, 서기원의 단편을 읽으면서 소설수업을 한 끝에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소설집 세 권(『철제계단이 있는 천변 풍경』, 『악취미들』, 『랑의 사태』(7월 출간예정))과 장편소설 한 권(『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을 펴냈다. 앞으로 몇 권을 더 낼지는 귀신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