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다시, 이매진
6월 19일. 대통령 취임 후 첫 특별기자회견이 열렸다. 뒷산에서 <아침이슬>을 들으며 자책했다, 고 대통령은 말했다. 뼈저린 반성을 했다고도 했다. 취임 4개월도 안 되어 지지율이 7.4%로 급락했다는 여론조사 발표가 있은 직후였다. 5월 22일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해 송구하다는 말을 한 이후, 무엇을 사과한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강경 폭력 진압을 계속해오던 정부였다. 심지어 촛불을 누구 돈으로 산 거냐고 다그치던 정부였다. 도심 한가운데 시민과 청와대를 분리하는 컨테이너 장벽을 쌓아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만든 그 대통령이 두 번째 사과를 했다. 시민들이 43번째 촛불을 켜던 날이었다.
그날, 아현 고물상은 조용했다. 아현동 초입에 철거 고시가 붙은 지 꽤 지난 시점이었다. 8월 말까지 건물을 비우라는 주인의 독촉이 홍씨에게도 여러 차례 있었다. 가까운 곳으로의 이사도 생각해 보았지만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높아진 바람에 지금 있는 보증금으로는 근처 어디에도 갈 수 있는 데가 없었다. 하긴 ‘뉴타운’이 생기면 고물 같은 건 필요 없어질 동네였다.
고물의 상당수는 종류별로 갈무리되어 노끈으로 묶여 있거나 사람 키 정도 되는 높이의 성글게 짠 마대에 담겨 고물상의 담을 따라 정렬되어 있었다. 오래도록 세상 여기저기를 떠돈 끝에 도착한 고물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모습은 어딘지 서글퍼 보였다. 마당 중앙에 마른버짐이 핀 것처럼 동그랗게 남은 공터 위로 7월을 향해 가기 시작한 6월의 햇살이 하얗게 부서지고 있었다.
고물상이라고 쓰여 있지 않아도 고물상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건물 입구에서 한 사내가 <행복 고물상>이라고 쓰인 붓글씨 현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마당으로 접어들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웅얼거림. 사내가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귀를 기울이며 소리가 나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뜨거운 햇볕 속에 긴 팔 줄무늬 와이셔츠를 입은 사내는 이지훈이었다.
이지훈이 고물상의 뒷마당으로 접어들자 뒷마당 담 벽을 따라 쳐놓은 루핑 천막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루핑 그늘 밑에는 앞마당에서 보았던 고물들과는 다른 종류의 고물들이 가득했다. 헌책방처럼 헌책과 폐신문들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헌책 더미 사이에서 노란 노끈을 들고 무릎보다 조금 높은 높이로 헌책들을 한 다발씩 묶고 있는 은발 노인의 등이 보였다. 노인의 하늘색 셔츠 등짝이 절반쯤 땀으로 젖어 있었다.
루핑 천막의 오른쪽 맨 끝에 직사각형 나무 평상이 하나 놓여 있고 그 위엔 폐신문들이 신문사별로 나란히 늘어놓여 있었다. 무슨 심사라도 받는 것처럼 귀가 딱 맞춰진 신문들이었다. 평상 한 끝에는 표지가 나달나달한 몇 권의 헌책이 놓여 있고, 그 옆에는 물주전자와 물컵이 보였다. 맨 위에 놓인 책은 《북치는 소년》이었다. 물주전자와 헌책들 사이에 놓인 라디오 겸용 고물 카세트에서 약간의 잡음과 함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언젠가 당신도 우리와 같은 꿈을 가지길 바래요. 그러면 세상은 하나가 될 거예요’ 막 끝난 노래에 이어 다시 처음이 시작되고 있었다. ‘천국이라는 것은 없다고 상상해보세요. 그다지 어렵지 않아요. 땅 아래 지옥 또한 없고, 우리 위에는 오직 하늘만 있다고 생각해요. 상상해 봐요, 모든 사람들이 오늘에 충실하며 사는 세상’ 테이프 하나를 한 곡으로만 전부 녹음한 것 같았다.
카세트에 귀를 기울이던 이지훈이 마당에 쌓인 헌책 더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노끈 매듭을 짓느라 끙, 흘러나오는 신음을 노래가사처럼 자연스럽게 섞으며 은발 노인이 <이매진>을 허밍으로 따라 부르고 있었다. 고물상 노인과 <이매진>이라니! 이지훈이 순간적으로 실소를 터뜨렸다. 순간, 노인의 등이 멈칫했다. 은발 노인이 이지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죄송합니다. 허락 없이 들어와서…. 대단한 풍경이네요. 그런데 이거, 누구 노랜 줄 아십니까?”
호칭이 마땅치 않은지 이지훈이 말끝을 흐리며 여전히 조금쯤 실소가 실린 얼굴로 물었다. 은발 노인이 눈빛을 도사려 이지훈을 한 번 노려본 후 이내 무표정하게 고개를 돌렸다.
“딱정벌레들.”
등을 보인 채 날아오는 대답을 들으며 이지훈의 얼굴에서 서서히 웃음기가 걷혔다.
“또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무슨 일임메. 인연이긴 한가본데 나쁜 쪽 인연은 애이면 좋게씀둥.”
이지훈이 내민 박카스 상자를 뜯어 노인이 이지훈에게 한 병 먼저 건넸다. 대로변 약국에서 사온 것인 듯 상자는 아직 시원했다. 이지훈이 머뭇하다가 박카스를 받았다. 촛불집회의 확성기 차량 연단에서 마이크를 잡은 홍씨 노인을 본 순간, 기자의 필이 꽂혔었다. 그 다음날 바로 고물상을 찾아간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이지훈의 직감은 정확했다. B병원에 파견된 누렁소 할머니 감시반이 좁혀놓은 경찰의 인맥 보고서엔 딱 두 명밖에 없었다. 한연우. 홍귀남.
경찰도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은 전혀 없다고 주저할 때 다짜고짜 기자 감각이라며 임의동행을 강청한 것도 이지훈이었다. 하지만 홍씨 노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취조해 얻어낸 것은 평안북도 정주가 고향이고 6.25 때 남으로 피란한 실향민이라는 것뿐, 엮어볼 만한 게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노인은 세금 한번 떼먹은 적이 없었고, 심지어 아현동 독거노인 보살핌 기금이라며 동사무소에 매달 고물상 수입의 20%를 꼬박꼬박 기부해오고 있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기부를 20년째 해오고 있다고 홍씨에 대해 설명하던 동사무소 직원은 ‘모르는 사람은 몰라도 이 동네에선 존경받는 분’이라며 이상한 행태는 없었냐고 꼬치꼬치 캐묻는 이지훈을 오히려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고정간첩의 전형적인 위장 처세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었지만 여러 가지 정황이 그렇게 엮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닌 듯했다.
그날 당한 걸로 봐 이지훈을 흰 눈으로 볼만도 한데 박카스를 내미는 노인은 모든 걸 다 잊은 사람처럼 뒤끝 없이 서글서글했다. 이지훈이 눈을 질끈 감으며 박카스 한 모금을 목 안으로 밀어 넘겼다.
“기런데 기자양반 어디 아픔메?”
어디 아프냐고 걱정스럽게 물어오는 노인의 부드러운 음성에 이지훈이 오히려 움찔했다. 까칠한 턱수염을 오른쪽 손바닥으로 비비며 이지훈이 바로 말머리를 돌렸다.
“그런데 이런 신문도 보십니까?”
천막 안쪽 평상에 늘어놓여진 신문 더미 중 J신문 제호에 시선을 붙박으며 이지훈이 물었다. 날짜를 보니 이틀 전 신문이었다.
“기럼. 내가 보는 신문이래 아홉 개임메. 하루씩 지나 폐지가 된 것들이긴 하지만 말입지.”
“그쪽, 그러니까…, 촛불들은 싫어하는 신문 아닙니까? 이거.”
이지훈이 심상한 척 다리를 건들거리며 툭 던졌다. 노인의 시원시원한 대답이 곧바로 돌아왔다.
“기렇디 좀 이상한 신문이디. 기래도 정치 사회면 빼면 읽을 만함메.”
심상하게 말을 받아주던 홍씨 노인이 걸음을 옮기려다 갑자기 “오호- 기러니끼니, 기자양반이래 지금 이 늙은이 언론관이 듣고 싶은 모양이지비?”라고 말하며 흥미롭다는 듯 평상에 걸터앉더니 이지훈을 손짓하며 평상을 톡톡 두드렸다.
“이리 오라. 난 무지렁이지만 신문하고 헌책들이 내 선생임메. 선생은 많을수록 좋지 않게씀둥?”
폐신문과 헌책들이 선생이라고 말하는 홍씨는 청년처럼 눈을 빛내며 양 볼이 불그스레하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유식한 사람들이 이쪽 신문 보고 보수네 저쪽 신문 보고 진보네 부르는데, 그 말을 좀 빌려 보믄 말임둥, 세상에 보수신문만 있다고 생각해 보기요. 끔찍하지 않게씀둥? 모든 신문이 김숙자 씨가 간첩이라고 떠들고 있다고 생각해 보란 말입지. 그기 생지옥 애이게씀둥?”
홍씨 노인이 이지훈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지훈이 손에 든 박카스 병으로 얼른 시선을 떨구었다. 홍씨 노인이 빙그레 웃음을 띠며 그런 이지훈을 바라보았다.
“기런데 내 생각은 말이요, 세상에 진보신문만 있다고 해도 좋은 거마는 아이란 생각이 든다 말입지. 보기요. 산에 나무가 한 종류만 있으면 그 산엔 생명이 다양해지지를 않씀둥. 한 종류에 적응하는 식물 동물만 살아남지비. 모든 신문이 한 목소리만 낸다면 뭐 하러 신문이 있게씀메. 다른 의견들이 있으니 사람들이 신문을 만들고 보는 거 아임메? 보기요, 저 고물들이 몽땅 한 종류라면 고물상 같은 건 필요 없지비.”
흘러나오던 <이매진>이 멈추었다. 이지훈의 시선이 도망치듯 고물 카세트덱에 멈추었다. 이지훈의 눈빛을 집요하게 따라가며 홍씨 노인이 카세트에서 테이프를 꺼내 뒤집어 꽂은 후 말을 이었다. 건성으로 말하듯 활기차게 미끄러지던 좀 전의 음성이 아니었다.
“이 보오, 기자양반.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오.”
이지훈의 마음속을 꿰뚫기라도 하듯 홍씨 노인이 이지훈을 바라보며 느리고 또박또박 말했다.
“첫째. 반성 없이 그냥 넘어갈 수 있소. 둘째.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해 볼 수 있소. 보수신문이든 진보신문이든 자기갱신이 필요한 거 아임메. 나는 신문을 선생 삼은 무지렁이니 보수신문도 진보신문도 발전하길 바람메. 참여정부 시절엔 광우병 위험하다고 사사건건 비판하고 들다가 지금 정부 출범하자마자 미국산 쇠고기 절대 안전하다고 돌변해서리 정권의 나팔수 노릇 자처하는 거이 제대로 된 언론이라고 말할 수 있게씀둥? 멀쩡한 사람 간첩 만드는 이상한 보수가 아니라 최소한 상식적인 보수가 되어야 하지 않게씀둥? 열흘 전 촛불 을 보라. 국민이 달라지고 있는데 맨날 50년 전 빨갱이 타령을 해서야 쓰게씀둥. 그러러면 보수신문에서 일 하는 기자들부터 변해야 함메. 사주가 변하지 않으면 기자들이 변해서 사주를 변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게씀둥. 사주의 입맛에 길들여지는 게 아니라 말입지. 신문사 다니는 당신들, 다들 많이 배운 똑똑한 사람들 아임메? 지식인들 아임메?”
이지훈이 꿀꺽 침을 삼켰다. 목젖이 가만히 눌리며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이 자그마한 체구의 은발 노인의 정체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리고 마지막 방법이 있지비. 가장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 가장 어렵겠지비.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거. 잘못된 증거였다고 인정하는 거. 조작된 거라고 인정하는 거. 거기서부터 새로 출발하는 거. 그걸 뭐라더라, 기렇디, 양심선언이라 하던데 말입지.”
노인이 이지훈의 시선에 자신의 시선을 꽂으며 말을 마쳤다.
이지훈의 가슴이 쿵쾅거리며 답답해졌다. 머릿속이 뿌옇게 흐리고 현기증이 밀려오는 듯했다. 혀끝에 ‘간첩’이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노인의 말은 굉장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지훈 자신이 노인의 말에 세뇌당한 것처럼 노인의 말을 수긍하며 듣고 있었다. 이런 사태 자체, 이 자체만으로도 눈앞의 노인이야말로 내공이 엄청난 간첩이라고 우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노인의 말은 미리 준비해놓은 것처럼 논리정연하고 합리적이었다. 자신을 세뇌하려고 오래 전부터 별러 온 것처럼. 다리가 허청, 꺾이는 것을 느끼며 이지훈이 서둘러 고물상 뒷마당으로 발걸음을 떼었다.
‘세상에 소유라는 것이 없다고 상상해보세요. 상상이 되시나요? 탐욕이나 배고픔이 사라지겠죠. 모든 사람이 인류애로 하나가 되겠죠.’ <이매진>이 이지훈의 등 뒤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기런데 기자양반, 여긴 왜 온 거임메? 지난번 일 때문에 박카스 주려고 온 거이면 고맙게 먹게씀둥”
고물상 앞마당까지 따라 나온 홍씨 노인이 벙긋 입을 벌려 웃으며 한 손을 흔들었다. 도망치듯 고물상을 빠져나오며 이지훈 스스로도 혼란스러웠다. 글쎄. 왜 온 걸일까. 최소한 한 번쯤은 다시 만나봐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물어볼 말이 있었다. 그 아이, 지오. 한연우와 가깝게 지내는 캐나다에서 온 그 아이가 김숙자와 어떻게 얽히게 된 것인지, 홍씨 노인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입을 뗄 수 없었다. 어쩌면 우연을 가장해 지오와 맞닥뜨려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지오, 그 아이. 아현동에서 지낸다고 했고 홍씨의 고물상을 가끔 드나든다고 했다.
“참, 저 위쪽 오거리에 가면 오거리 상점 담 벽에 뭐 붙어 있는 게 있을 거요. 오늘 숙자씨 집에서 고운 애기들이래 무슨 전시를 한다고 기러더만. 궁금하면 가보기요.”
홍씨 노인의 마지막 말이 이지훈의 등줄기로 서늘하게 끼쳐왔다. 차마 뒤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자신의 등 뒤에서 노인이 웃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웃음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도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