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희영, 달리다
연우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도 한달음에 달려가지 못한 희영은 창밖으로 눈을 돌리다가 사무실 입구 정수기에서 물 한 잔을 받아 마셨다.
“살릴 수 있다는데 살려야죠!”
처음 만나던 날의 연우 목소리가 생생하게 살아 들려왔다.
사과의 얘기를 듣는 순간 거의 자동적으로 떠오른 것도 연우의 목소리였다. 사과에게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함께했으니 무조건반사 같은 반응인지도 모르고, 사과는 희영의 사과만도 아니었다. 사과가 돌아가고 싶어한다고 지오가 말했을 때, 희영은 무슨 말인지 얼른 알아듣지 못했다. 사과가 돌아간다고? 어디로? 전화기 저편에서 지오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지오의 침묵으로 인해 간신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연우가 돌아오자 사과가 돌아간다…. 희영이 털썩 사무실 의자에 주저앉았다.
잠깐 이마를 짚고 있던 희영이 벽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출입문 위에서 빨간색 숫자를 깜빡거리는 직사각형 모양의 전자시계는 올려다볼 때마다 감시카메라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시간과 분 사이에 찍힌 콜론이 끊어진 다리의 두 점처럼 깜빡거렸다. 숫자가 끊임없이 바뀌고 있지만 다리를 건널 수 없는 숫자들. 0에서 9까지의 숫자들이 지루한 설교를 영원히 반복할 것처럼 두 파트로 나뉜 채 끊임없이 깜빡거리고 있는 것이다. 희영이 미간을 찡그리며 팀장의 책상을 건너다보았다.
주간과 월간지 교정 마감이 겹치는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공식적인 야근 날이었다. 할 일이 빨리 끝나도 9시 야근은 철통같이 고수되었다. 야근 후엔 회사 가까운 술집으로 단체회식을 갔다. 사장은 이 날의 회식자리에서 직원들의 사내 단결과 성실성을 강조하곤 했다. 더구나 석 달 전부터 상위 10퍼센트 초등학생을 상대로 하는 경쟁사가 문을 열면서 사장의 행보도 바빠졌다. 학벌을 중시하는 강남권 수요자들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최고 학벌의 신입사원 신규 채용도 곧 단행할 태세였다.
같은 파트의 선배 인숙에게 “오늘만 좀 어떻게 안 될까?” 라고 말해 보았더니 팀장 쪽 책상을 한번 흘긋 본 후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림없을걸!” 7시 30분. 파트에 할당된 최종교정본 검토는 마무리 단계였다.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자리에 돌아와 시계를 쳐다보며 안절부절 못하는 희영을 인숙이 손짓으로 불렀다. 인숙의 책상엔 초콜릿 한 조각이 놓여 있고, 책상 컴퓨터에 인터넷 생중계 창이 떠 있었다.
모니터 속은 온통 촛불 바다였다. 희영이 숨을 몰아쉬었다. 6.10 촛불문화제가 시작되고 있었다. 컴퓨터와 연결된 이어폰 한쪽을 인숙이 희영에게 끼워주었다. 현장 생중계 소리가 들려왔다. 막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시간. 세종로 네거리에 들어본 적 없는 노래가 울려 퍼지고, 그 노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사회자의 소개말을 듣는 순간 희영의 머릿속에선 웬일인지 <라쿠카라차>가 떠올랐다. 비장한 노래였지만 현장은 흥성거리는 잔칫날 같았다. 인파가 점점 불어나고 무대에 오른 가수 안치환의 모습이 보였다. 희영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 인터넷 생중계를 연결하자 가수 양희은이 <아침이슬>을 부르고 있었다. 뒤이어 머리카락이 적당히 헝클어진 윤도현이 <아리랑>을 불렀다. “고시 철회!”, “미국산 쇠고기 전면 재협상!”, “2MB는 물러가라!” 구호가 들려왔다. 천둥이 치는 것처럼 구호 소리가 이어폰 속에서 우르릉, 울려왔다. 피가 육체 곳곳으로 퍼졌다가 심장으로 돌아가는 게 느껴졌다
연우식탁을 차려놓고 광장에서 음식을 나누어줄 때 들리던 구호들이 희영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온 것은 아니었다. 다만 희영에겐 연우를 다치게 한 어떤 상황에 대한 막연한 분노가 있었다. 소나 개만도 못한 백성 취급당하는 게 자존심 상하기도 했다. 그뿐이었다. 그런데 한걸음 떨어져서 듣는 구호는 이상하게 희영의 폐부로 곧장 날아왔다. 저 구호들. 우리 삶과 직접 연관이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우리는 다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정치 아닌가. 순간, 희영이 전율했다. “살릴 수 있다는데 살려야죠!” 라고 연우가 말할 때 그것은 이미 정치적인 선택이었다. 그렇게 사과를 살렸던 것이다. “사과, 함께 살려보면 안될까요?”라며 연우가 내민 손. 따뜻한 생명의 감각. 아주 일상적이면서 정치적인 아름다운 말들. 자신의 내부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며 깨어나는 것을 느끼며 희영이 흡, 숨을 몰아쉬었다. 몸속이 환해지는 기분 좋은 각성의 느낌이 희영을 깨웠다.
인터넷 생중계 창 바로 옆엔 엄청난 속도로 실시간 댓글들이 달리고 있었다. 부산, 광주, 대구, 청주, 대전, 강릉, 춘천, 제주, 목포… 촛불을 함께 들고 있다는 전국 발 실시간 댓글들이 깜빡거렸다. “여러분! 지금 우리들의 이 현장은 인터넷으로 시시각각 생중계되고 있습니다. 마음을 함께하는 분들은 지금 당장 청와대 홈페이지에 항의 방문해 우리의 힘을 보여줍시다. 청와대 홈피를 다운시켜요!” 라고 사회자가 즉석 제안을 했다.
인숙이 희영을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희영과 인숙의 눈빛이 마주친 순간, 누군가 문제지 추가 교정안을 희영에게 넘기고 지나갔다. 희영이 프린트물을 받아 책상 옆에 놓은 후, 검색창에 ‘청와대’를 쳤다. 글자는 영문으로 ‘cjddhkeo’ 라고 찍혔다. 삭제. 한글키로 변환해 다시 ‘청와대’를 쳤다. 촛불 현장에서 사회자가 제안을 한 지 1분이 채 지나지 않은 시간, 청와대 홈페이지는 그 시간 열리지 않았다.
생중계 창 옆으로 댓글들이 속속 올라왔다.
“청와대 홈피 다운되었습니다!”
“청와대 홈피 접속불가! 완전 마비상태!”
곧이어 현장에서 이 소식을 전해 듣는 사람들의 표정이 카메라에 잡히고 있었다. 단발머리의 여고생들이 두 손을 번쩍 들어 환호했다. 정말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는지 눈물을 글썽거리며 발을 구르는 이십대 아가씨들의 얼굴이 지나갔다. 아이들을 가운데 세운 채 하이파이브를 하는 중년 부부도 보였다. 광장과 거리의 사람들이 손에 손을 잡고 어깨를 감싸며 좀 전에 가수 윤도현이 부른 <아리랑>을 다시 부르기 시작했다. 희영의 등줄기로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전율이 지나갔다.
1분! 희영이 사무실의 전자시계를 쳐다보았다. 빨간색 콜론이 규칙적으로 깜빡거리며 숫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1분이면 청와대 홈페이지가 다운될 수도 있고, 1분이면 누군가를 살리는 선택을 할 수 있으며, 1분이면 누군가 영영 지상을 떠날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희영이 두 손으로 책상 모서리를 힘주어 짚고 있다가 몇 권의 책을 정리해 책꽂이에 꽂고 가방을 집어 들었다. 인숙이 놀란 얼굴로 그런 희영을 바라보았다. 희영의 동선을 지켜보던 팀장의 안경알 너머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약간 길다 싶은 가방끈을 왼쪽 어깨에 걸며 책장 앞을 지나는 희영의 표정은 무심해 보였다. 이내 사무실 문이 열리고. 닫혔다. 희영이 계단을 빠르게 걸어 내려가 서양란이 보라색 꽃을 달고 있는 화분이 놓인 파리바게트 옆을 지나 달리기 시작했다. 0에서 9까지 규칙적으로 반복되며 깜빡거리는 전자시계의 숫자판이 희영이 등 뒤에 냉정한 얼굴로 남겨졌다.
6월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사과가 가출을 했고, 연우가 다쳤고, 연우가 깨어났고, 사과가 돌아가려고 한다. 처음으로 광장에 나갔고, 일상의 정치에 대해 생각했고, 동수를 만났고, 1년 만에 육체적인 사랑을 나누었고, 숨을 쉬고, 숨을 토하고 시간이 지나 간다. 시간이 달린다… 달리면서 희영이 휴대폰을 꺼내 지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간, 지오는 숨을 가다듬고 있었다. 느리게 휘어진 시간이 방 안에 똬리 틀듯 주저앉고 있었다. 희영이 달려오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쫑긋한 사과의 귀가 아주 가끔씩 까딱거렸다. 어떤 곳에선 빨리 흐르는 시간이 어떤 곳에선 아주 느리게 몸을 움직이기도 하지. 지금은 지상에 살았던 풍찬노숙의 한 생명이 마지막 인사를 준비하는 시간.
태어나서 일곱 살까지의 삶이 깜깜하게 정전되었을 때, 지오는 일주일 동안 잠을 잤다고 했다. 연우도 일주일 동안 잠을 잤다. 아무 설명 없이 가까운 누군가 잠든다면, 그것이 아픔을 치유하는 방식이란 걸 이제는 알겠다. 다시 태어나기 위해 선택한, 죽음 같은 잠. 일곱 살의 나는 어떤 아픔을 치유하려고 했던 걸까. 연우도 지오처럼 돌연 깨어났다. 지오는 식구들 외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지만 연우는 모든 걸 기억한다고 했다.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또 다른 ‘나’가 어디엔가 있을 것만 같았다. 시인 할아버지처럼 이웃들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누군가가 오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사과의 잔등이에 손을 얹은 채 잠과 꿈과 죽음에 대해 골똘해지는 지오의 머릿속에 있는 세상은 질서 정연한 것은 아니었다.
사과는 아주 가느다랗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이제 시간이 많지 않았다. 지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분꽃이 피는 시간에 숙자씨는 떠났다. 꽃이 피고도 한참이 지났으니 사과는 많이 견딘 것이다.
“사과야 염려 마. 우리가 지켜줄게, 숙자씨” 라고 지오가 사과의 귀에 속삭였다. 옹이 말이야. 삭정이가 떨어져야 새 가지가 나거든. 옹이는 상처인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상처인데… 삶도 죽음도 고독한 것이 아닐까.
삭정이가 떨어져나가듯 덜컹, 문이 열렸다. 헉헉 숨을 몰아쉬며 희영이 들어왔다.
“사과야!”
풍경이 딸랑,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