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연우, 붉은 달의 거리
“가야겠어!”
“무리야.”
수아와 연우가 한동안 실랑이를 했다.
연우는 물어볼 것이 많아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가 광장으로 가겠다고 했다. 정확히는, 숙자씨를 처음 봤던 을지로 그 장소에 가야 한다고 했다. ‘가고 싶다’라거나 ‘가보고 싶다’라는 말과는 전혀 다른 말, ‘가야 한다’고 연우의 말이 반복되었지만 “안 돼.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수아의 말도 되풀이되었다.
“왜 이래, 연우야!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애가! 설령 걸을 수 있다 해도 그 할머니를 만났던 곳에 가면 할머니가 간첩이 아니라는 증거가 어서 오세요, 하고 기다리기라도 한대? 정신 차려. 숙자씨가 정말 간첩인지 아닌지 사실 난 잘 모르겠지만 이미 돌아가신 분인데 그게 중요해? 하지만 분명한 건 봐! 오늘이야. 6.10 오늘, 정말로 백만 촛불이 모일까 봐 두려워서 계속 간첩설을 흘리고 결국 오늘 이렇게 터뜨린 거라면 오늘 백만이 모인다면 우리가 이기는 거야. 다른 건 그 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아.”
수아가 숨도 쉬지 않고 연이어 말을 뱉었다. 그랬다. 수아의 말이 옳았다. 간첩 사건을 일개 시민이 그것도 심증만 가지고는 어째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숙자씨 간첩사건의 진실도 시간만이 해결해 줄 문제여서 정권이 바뀌고 바뀌고 또 바뀌면 어느 날 명백하게 드러나게 될까. 연우야, 오늘이 지나면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은 날이 오고 어느 내일엔 뛸 듯이 기쁜 날이 촛불을 이룰 거야.
간신히 연우를 달래 침상에 눕힌 후 수아가 간호사를 불렀다. 연우의 오른쪽 이마와 귀 밑 쪽 상처의 드레싱을 다시 하고 새 반창고를 붙였다. 뭣 하러 갑자기 드레싱을 하냐고 투덜거리는 연우에게 수아가 쓰으, 눈을 흘겼다.
“한연우! 너 지금 꼴이 어떤지 알아? 거울 보여줘? 쯧. 세상과의 재회인데 반창고라도 이쁘게 다시 붙이고 새 단장 새 마음! 수아의 베스트 프렌드 꼬라지가 이래서야 원!”
수아다운 채근과 세상과의 재회라는 말에 연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재회이긴 하네. 그런데 젠장! 재회가 이게 뭐니? 숙자씨를 간첩 만들어놓고! 저 컨테이너 장벽은 또 뭐고!”
YTN 채널 속 광화문의 컨테이너 장벽을 뚫어져라 보며 연우가 쯧, 혀를 찼다. 1987년 이후 최대 인원이 모이는 집회가 될 것 같다는 아나운서의 멘트가 흘러나왔다. 87년 항쟁의 거리에서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 열사의 초상이 연세대를 출발해 거리 행진을 거쳐 광화문에 도달하게 될 거라고 했다. 머리칼을 보라색 머리끈으로 묶은 연우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연우를 흘긋 바라보며 수아가 별말 없이 연우의 어깨에 자신의 숄을 둘러준 후 노트북을 가져다주었다. 연우가 침상에 비스듬히 기댄 채 노트북을 켰다.
밤새 생긴 해괴한 컨테이너 장벽은 집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시민들에 의해 ‘명박산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새로 생긴 명박산성 덕분에 세종로 네거리는 더욱 확실하게 거리이자 광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쪽이 자신의 진영을 꽁꽁 닫아걸자 역설적으로 다른 한쪽이 광활하게 개방되었다. 컨테이너 벽을 쌓아 지키려고 한 청와대는 그 벽으로 인해 되레 절해고도가 된 셈이었다. 두고두고 조롱거리가 될 희대의 ‘컨테이너 장벽’ 앞으로 촛불을 든 사람들이 끊임없이 밀려들고 있었다.
“쯧쯧, 저런 미친 것들! 엄마, 저거, 저거, 영구 보존해야겠다. 그지? 영원히 쪽팔리게.”
6인실 병동의 건너편 침상에 연우와 마찬가지로 다리를 깁스한 채 누워 있던 40대 아주머니가 텔레비전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참외를 아작아작 깨물어 먹으면서 말했다.
“근본부터 사기꾼인 놈들을 정치하라고 뽑아 앉혀놓은 백성들 잘못이 크니라. 무지렁이 백성들도 속 차려야지, 암.”
40대 아주머니에게 참외를 깎아 내밀며, 허리가 꼿꼿한 70대 할머니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사람들은 이제 분노하지 않았다. 베를린 장벽조차 사라진 시대에 도심 한가운데 컨테이너를 첩첩 쌓아 고립무원이 된 자신들이 뽑은 대통령을 차라리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당신을 찍은 내 손이 부끄럽습니다.”
연우가 들여다보는 인터넷 생중계 화면 속으로 손팻말들이 지나갔다. 분노 한 스푼에 조롱과 풍자 세 스푼이라고 할까. 분노도 맞장을 뜰 만해야 생기는 것인지 컨테이너 장벽을 바라보는 사람들 열에 일곱은 분노보다 먼저 쯧쯧, 혀를 찼다.
어느 틈에 컨테이너 장벽 위에는 <소통의 정부, 이것이 MB식 소통인가>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거리고 있었다. <경☆ 08년 서울의 랜드마크 명박산성 ☆ 축> 현수막이 컨테이너 장벽 앞면에 붙었다. 컨테이너 장벽에 대응하는 시민들의 기지는 눈부셨다. 시민들이 명명한 ‘캐슬MB’를 장식하러 시민 예술가들이 속속 장벽 앞으로 모여들었다. 색색의 락카로 그려진 '꺼지지 않는 촛불'이 컨테이너 장벽에서 타오르기 시작했고, 컨테이너 박스 전면을 채우며 타오르는 촛불에서 흘러내리는 촛농이 눈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모여드는 사람들이 저마다 장벽 여기저기 자기 마음에 드는 곳에 청와대에 보내는 메시지를 적으며 낙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광화문 네거리 이층으로 쌓여진 ‘먹통의 벽’ 앞에서.
컴퓨터를 대기모드로 전환해놓고 연우가 잠시 눈을 감았다. 잔뜩 울고 난 것처럼 눈이 뻑뻑했다. 왜 숙자씨를 만났던 곳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연우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깊고 캄캄한 잠이었다. 그런 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캄캄해서 오히려 평안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합천 외할머니를 잠깐 보았던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연우는 깨고 싶지 않았다.
“아파. 여기가. 할머니.”
가슴을 쿵쿵 짚어 보이며 “그러니 조금만 더 잘게” 라고 말했던 것 같다. 캄캄한 골목으로 연우를 포위하면서 달려오는 세 명의 남자가 보였다. 희미한 필름은 거기서 멈춰 섰다. 더는 기억나는 게 없었지만 분명히 “아파. 여기가 아파.” 누군가 아프다고 소리치는 메아리가 들렸다. 이번엔 연우가 아니었다. 꿈속의 누군가인지 현실 속의 누군가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캄캄한 꿈속에서 연우가 두리번거렸다. 누구… 숙자씨…? 그 순간 문밖으로 내밀쳐지듯, 문밖에서 누군가 연우의 손을 단번에 잡아챈 듯이 그렇게 잠에서 깨어난 길이었다.
연우의 외할머니는 억울한 영혼이 많아지면 세상이 무거워진다고 했다. 그러니 산 사람들은 억울한 영혼을 어루만져 가볍고 자유롭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숙자씨와 관련된 모든 기사를 차례로 검색해가던 연우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모니터엔 고물 라디오 같은 음성으로 열심히 떠드는 이지훈의 인터뷰 동영상 창이 떠 있었다. 다리 쪽에 진통이 시작되었지만, 그래도 노트북을 덮을 수 없었다. 탄원. 숙자씨를 만났던 곳. 증거. 몇 개의 단어들이 연우의 뇌리를 스쳐간 순간이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지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