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이매진, 사과의 말
나는 사과. 하지만 내 원래 이름은 보리. 숙자씨가 내게 붙여준 이름이다. 하지만 나는 다른 보리, 진짜 보리를 알고 있지. 숙자씨가 늘 내게 말해준 숙자씨의 송아지 보리.
숙자씨는 내가 인정하는 유일한 내 주인. 희영이, 연우, 수아는 내 친구들. 사랑스러운 그 아이들이 보고 싶으니 어서 마지막 인사를 해야지.
나는 버려졌던 개. 내가 태어난 곳은 상계동. 상계동이 개발되면서 운 좋게 아파트에 들어가게 된 주인은 날 버렸다. 잠깐 머뭇거리는 눈치였지만, ‘데리고 가지 못해서 미안하다’ 고 주인은 가볍게 말했지. 그리곤 뒤돌아서 하하 웃으며 전화기에 대고 새 아파트에 대해 누군가에게 떠들었지. 두 아이들도 마찬가지. 내가 갓 태어나 그 집에 갔을 때 나는 귀여움을 받았다. 하지만 잠깐이었다. 내 몸집이 커지고 얼굴이 미워지자 그 애들은 곧 시큰둥해져 더 작고 귀여운 꼬마 강아지를 볼 때마다 사고 싶다고 졸랐다. 내 의문은 오래 거기서 머물렀는데, 왜 인간들은 작고 예쁜 것에만 끌릴까. 글쎄. 개를 장난감으로 생각하기 때문일까. 난 한때 사랑 받았지만 버려지고 나니 그 사랑이 가소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난 질질 짜는 종류의 개가 아니다. 난 자부심 강한 개다. 이삿짐을 모두 실은 후 두 아이가 아주 슬픈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이미 그들에게 혹 같은 존재라는 걸. 게다가 난 그때 피부병이 생겨 아주 못생긴 개였다. 나는 조용히 그 애들을 보냈다. 따라가며 짖지 않았다.
“어쩜, 슬퍼하지도 않고 따라오지도 않아. 쳇. 그동안 길러줬더니 다 헛일이야. 귀여운 새 강아지 다시 사자.”
이런 말을 주인 내외와 아이들이 주고받았다. 컹! 하고 내가 한번 짖은 건 혼자 남는 게 두렵지만 네 다리로 굳건히 버티자는 다짐의 소리였을 뿐이다.
두 번째로 주인이 된 사내는 개천 주변을 혼자 헤매던 나를 그의 트럭에 태웠다. 아주 추운 날이었다. 나는 새 주인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에게 내 용도는 음식물 찌꺼기를 뒤처리해주는 쓰레기통이었다. 그가 나를 데려간 곳은 염천교 근처의 보신탕집이었다. 보신탕집 여자 주인은 사내의 애인이었다. 여자는 식당에서 버려지는 음식물 찌꺼기를 내게 주었다. 참을 수 없는 동족의 냄새야말로 지옥이었다. 하지만 꾹 참았다. 바람 부는 추운 날 나를 트럭에 태워준 그에게 의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속내는 다른 것이었다. 내 눈에 눈곱이 끼고 목소리마저 갈라지자 나를 보는 그의 눈빛이 수상했다. 그는 트럭운전사이지만 개 잡는 사람이기도 했다. 나는 곧바로 그 집을 떠났다.
그녀. 숙자씨는 세 번째 만난 사람. 내가 인정하는 유일한 내 주인. 내가 숙자씨를 만났을 때 그녀는 이미 할머니였지만 그녀는 영원한 나의 숙자씨.
서울에서 살 부비고 살 만한 동네를 찾아 무허가 집 층층인 달동네 아현동을 찾아든 그녀와 떠돌이 개인 나는 처지가 비슷했다. 숙자씨는 아현동시장 뒷골목에 함지박을 하나 놓고 사과를 팔았다. 시장이 파하면 폐지도 주웠다. 홍씨 영감님과 고물상의 고물을 정리하는 일도 함께 하곤 했다.
숙자씨는 나에게 자기 이름을 말해준 유일한 사람. 내겐 그게 정말 중요하다. 자존감 있는 삶이야말로 정말 중요한 거니까. 사람들은 모두 자기들 멋대로 내 이름을 불렀다. 상계동에서 내 이름은 루루. 어린 형제가 저희끼리 투닥거리다가 자기들 맘대로 결정한 이름이다. 두 번째는 입에 담고 싶지도 않은 치욕적인 이름이었다.
“돼지야. 이리 와라. 이거 먹어치워라.”
보신탕집 여자와 사내는 나를 그렇게 불렀다.
숙자씨도 그녀 마음대로 내 이름을 부른 거긴 하지만, 중요한 단계가 있다. 그녀는 먼저 자기 이름을 내게 말해 주었다. 그런 사람은 처음이었다.
거리를 떠돌던 내가 너무 추워서 그녀의 좌판 옆에 피워진 연탄 화덕 가까이 다가갔을 때, 사실 나는 날아올 발길질을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발길질 당할지라도 조금이라도 따뜻한 곳에 있고 싶었다. 그때 난 떠돌이 생활에 너무 지쳐 있어서 맞는 것에도 이골이 나 있었던 참이다. 피부병이 번져 털에 딱지가 앉은 채였고 그런 나를 개장수들도 쳐다보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숙자씨는 앉은 채 한쪽 다리를 옮기더니 내게 자리를 내주었다. 저런, 춥구나… 이리 온… 그때 숙자씨의 목소리, 죽어서도 잊지 못할 거다. 그때부터 숙자씨는 내 숙자씨. 숙자씨가 사과를 한 알 슥슥 닦더니 한입 베어내서 내 입에 대주었다. 그때의 사과 향기. 그것은 곧 사람의 향기. 당장 죽을 것처럼 힘들었는데, 사실 더 살고 싶지도 않았는데, 숙자씨가 건네준 그 사과 향기가 나를 살고 싶게 했다. 개들도 자살을 생각하냐고? 물론이다. 나처럼 자의식이 강한 개들은 특히나.
“난 숙자라고 해. 숙.자.씨.”
사과 향기를 깊이 들이마신 후 사과를 깨물고 있는 내게 숙자씨가 말했다. 내게 이름을 말해주다니! 천상의 목소리 같았다. 그리고 이름을 말할 때의 얼굴은 소녀 같은 동안이었다.
“네 이름은 뭐니? 으응, 보리가 좋겠다. 보리는 참 좋은 이름이야.”
난 보리가 좋은 이름인지 아닌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이름을 좋아하게 되었다. 숙자씨가 좌판을 거두고 함지박을 이고 일어설 때, 난 그녀를 따라 힘차게 걷기 시작했다. 숙자씨가 돌아보며 웃었다.
“그래, 가자, 보리야. 우리 보리도 너처럼 그렇게 나를 따라왔댔지.”
그렇게 아현동 고갯마루에 숙자씨와 함께 살게 되었다. 내게 정말 주인이 생긴 거다. 내 유일한 주인. 숙자씨.
숙자씨가 보리에 대해 말해주었다. 늦은 시간에 사과를 팔 때나 사과 철이 지나 소소한 야채들을 팔 때, 그녀는 주로 보리 얘기로 시간을 보냈다. 보리는 숙자씨의 영원한 친구. 그녀의 고향이라는 머나먼 파주 금촌의 누렁소라고 했다. 나는 아현동시장 좌판 옆에서 기나긴 숙자씨의 인생 얘기를 날마다 들었다. 누렁 송아지 보리가 태어나던 날. 보리와 함께 밭일 하고 돌아오던 날들의 저녁의 향기. 숙자씨의 말이면 무엇이든 알아들었다는 영특한 송아지 보리. 숙자씨가 결혼하여 외지로 나와 고생한 얘기. 남편에게 버림받고 보리를 찾아 고향에 돌아간 얘기. 고향에서 농사지을 터를 잃어버리고 보리와 다시 헤어진 얘기. 서울 변두리까지 쫒겨나와 공장에 다니던 얘기. 보리가 보고 싶어 고향 마을에 가보던 얘기. 암소가 된 보리가 팔려간 얘기. 보리를 되찾고 싶어 적금을 든 얘기… 끝나지 않는 보리의 얘기들….
보리 얘기는 숙자씨의 첫사랑 얘기. 숙자씨에게 숙자씨라고 처음 불러준 사람이 숙자씨의 첫사랑. 그 사람과의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숙자씨는 끊임없이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하는지도 몰랐다. 보리는 그 첫사랑과 함께 태어나고 자랐다고 했다. 이태 전부터 숙자씨가 자주 기억을 잃었고, 그때마다 그녀는 수줍은 스무 살 처녀처럼 얼굴이 달덩이가 되어 보리를 찾으러 간다고 말하곤 했다. 보리를 찾으러 간다는 게 첫사랑을 찾으러 간다는 말이라는 걸 알고 있는 홍씨 영감님. 그때마다 “알았음둥, 내 찾아 주게씀둥” 하며 숙자씨를 다독였지만. 숙자씨는 점점 자주 집으로 오는 길을 잃어 아현동 골목 어딘가에서 떨고 있곤 했다. 그러면 나와 홍씨 영감님이 숙자씨를 찾아 집으로 데려왔다.
허름한 무허가집을 반짝반짝 쓸고 닦고, 채소를 심고, 마당을 쓸며 바지런을 떠는 숙자씨가 가끔씩 나도 홍씨 영감님도 못 알아본 채 “우리 보리가 날 찾는데”라고 중얼거리는 날이 오면 홍씨 영감님은 술을 마시고 나는 달을 쳐다봤다. 그리고 결국, 숙자씨는 아주 멀리 가버렸다. 첫사랑을 찾아 파주로 갔는지도 모른다고 홍씨 영감님은 생각했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그녀가 없는 집에서 1년 동안 그녀를 기다렸지만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난 그만 홍씨 영감님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마을 아래로 내려오게 되었다. 그리고 희영과 만났다.
희영, 연우, 수아. 내 친구들이다. 실은 나보다 훨씬 어린 친구들이지만. 똑같이 1년을 살아도 나는 그 아이들보다 일곱 배는 빨리 늙는다. 그러니 그들보다 인생의 교훈이 많다. 나이 들면 점점 더 슬픔이 많아진다. 나는 아주 늙은 개고, 이제 그만 떠나고 싶어졌다. 내가 누군가를 기쁘게 하려고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제 그 아이들에게도 짐이 되고 싶지 않다.
아현동에 사람이 살았고 그리고 사과가 살았다. 기억해 줘라. 나는 사과. 멋진 개다. 일생을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