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청와대가 고립되었다
경찰은 서울 시내의 치안을 전부 포기한 채 오직 청와대 방어만을 목적으로 삼은 것 같았다. 모든 경찰병력이 광화문과 시청에 집중되었고, 독립문에서 인사동까지 청와대로 통할 수 있는 모든 길은 완전히 차단되었다. 대로 뿐 아니라 종로의 좁고 복잡한 뒷골목까지 빼곡히 전경들이 배치되었다. 시위대는 어떻든 차벽을 돌파해보고자 했지만 힘겹게 전경버스 한 대를 끌어내면 그 뒤에는 더 많은 수의 전경들이 새카맣게 포진해 있었다. 청와대는, 완벽하게, 고립되었다.
촛불 시민들을 ‘타도 대상’으로 상정한 청와대의 입장은 경찰 수뇌부에 의해 철통 수호되었고 애꿎은 전경들마저 상급 기관에 잘 보이기 위한 현장 지휘관들의 과도한 경쟁열로 최소한의 기본권마저 챙기지 못한 채 소모되기 일쑤였다. 어떻게든 차벽의 약한 곳을 뚫어보려는 시위대의 몸짓과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 애꿎은 어린 전경들이 몸과 몸을 부딪쳤다. 슬픈 풍경이었다. 누구를 위해? 차벽을 지키는 이들은 질문을 지워야 했다.
아버지를 등지고 시위대로 막 돌아온 민기의 눈앞에 번뜩이는 불빛이 쏟아졌다. 태연은 가까이 있었지만 한 발짝 뒤에 있었다. ‘쐐애애’ 하는 파찰음이 공중을 갈랐다. 순간 민기가 몸을 휘청거렸다. 정조준 되어 쏘아진 소화기 분말이 민기의 눈으로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캄캄하게, 세상이 화이트 아웃 되었다. 두 눈을 감싸 쥔 채 민기가 쿵,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태연과 몇몇 남자들이 민기를 부축하며 '의료진!'을 연호했다. 하지만 구호는 후방으로 전달되지 않았다. “의료진! 의료진!” 태연이 주위를 돌아보며 절박하게 외쳤다. 촛불 대책회의가 준비해 나온 대형 트럭의 확성기에서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어린이들의 목소리로 낭랑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최전방의 시위대가 소화기 분말에 휩싸여 쓰러지는데 광장에선 노래와 춤이 한창이고, 피해가는 사람도 떠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바닥에 엎드려 민기가 숨을 헉헉 몰아쉬며 괴로워하고 있을 무렵, 한 남자와 여자의 구두가 민기의 발목을 넘어갔다.
“아, 씨발!”
태연이 욕을 씹어뱉는 순간이었다.
확성기 차량에서 들려오던 노랫소리가 툭 끊겼다. 그리고 마이크 방송이 날아왔다.
“현재 분말로 인해 방송 장비에 손상이 올 수 있습니다. 차량을 후진시켜야 하니 시민 여러분은 비켜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삐이이이~’ 귀청을 찢을 듯 날카로운 마이크 소음이 광장에 가득해지더니, 잠시 실랑이를 벌이는 듯 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그리고 다시 ‘삐이이~ ’소리가 몇 초간 들리더니 어눌하고도 느릿한 목소리가 확성기 차량의 마이크를 통해 흘러 나왔다.
“저 앞에 얼라 쓰러진 거 아이 보임니? 의료진 찾고 있으니 봉사대 얼른 시위대 전방으로 가기요!”
남쪽 말과 뒤섞인 어눌한 이북 사투리가 마이크를 통해 의료진을 호명했고 노랑조끼의 의료봉사대가 바삐 시위대 앞쪽으로 움직여 가는 것이 보였다.
“내 가마이 보이까네, 이래 개지곤 아이 되게씀둥! 얼라들 쓰러지는데 방송 장비가 아깝씀메? 이 확성기 트럭은 무시기 이리 큼메? 스삐까 소리는 또 왜 이리 큼메? 뭐이 하나 과하게 크면 작은 것들을 다 잡아먹씀둥. 풍짝풍짝 울려대는 이 스삐까 소리가 이래 커개지고 저기 모인 저 많은 사람들 목소리를 어째 일일이 들을 수 있겠씀둥? 말 나온 김에 한마디만 더 하지비. 바로 코앞에서 애기들이 경찰한테 밀리면서 피터지게 싸우는데 멀찌가니 서개지고 풍짝풍짝이나 하기요? 얼라들이 아프면 함께 보살펴야 하지를 않겠씀둥? 뒷짐지고 구경만 하다 한 세월 가겠씀메!”
일순, 광장이 조용해졌다. 그랬다. 언젠가부터 자발적인 구호 대신 대책회의 차량이 주도하는 구호를 그저 편하게 따라하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옆 사람이 연행되면 온몸으로 가로막으며 함께 매달리던 안타까운 동료애는 어디로 간 걸까. 대열 앞쪽의 사람들이 소화기 분말 속에서 쓰러지는 것을 멀찌감치 서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은 촛불이 벌써 타성에 젖기 시작했다는 것일까. 이 축제의 주인으로 즐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어느 틈에 관람객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차려놓은 밥상을 즐기면 되는 관람객이 언제나 가장 편한 법 아니겠는가. 순식간에 광장과 거리에서 보이지 않는 물음표들이 던져지고 있었다. 확성기 차량에 올라와 느릿느릿 말을 이어가는 사람은 자그마한 체구의 은발 노인이었다. 술을 한잔 하셨는지 얼굴이 진달래 빛이었지만 눈빛만은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기이한 노인을 향해 시민들의 눈빛이 붙박였다.
“왜 이리 조용한 거임메? 이리 조용해지라고 내 떠든 게 아임둥. 더 시끌벅적해져야 한다는 말임메! 우린 쥐죽은 듯 엎드려 한 가지 말밖에 못하는 청와대처럼 되면 아이 되지 않게씀둥?”
조용해졌던 광장에 웃음과 박수가 돌아왔다.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 나오며 누군가는 휘파람을 불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외치기 시작했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래는 그만 틀었으면 좋겠어요! 노래는 좋은 걸로 우리가 직접 하면 되는 걸요!”
“맞습니다! 스피커 노래 나오니까 그냥 따라만 하게 됩니다!”
“구호도 그냥 우리가 외치면 좋겠어요!”
“자유발언대 다시 시작하면 좋겠어요!”
들쭉날쭉 사람들이 손나팔을 만들어 소리치는 사이, 진달래 빛 얼굴의 은발 노인이 그 소리에 맞추듯 갑자기 팔을 벌리고 주먹을 쥐어 보이면서 확성기 차량에서 내려왔다. 북한 사투리를 섞어 쓰는 자그마한 은발의 노인을 향해 그제야 언론사 카메라 플래시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민기를 뒤쫓아 시위대로 돌아온 이지훈의 카메라도 노인을 향해 있었다. 그는 소화기 분말에 쓰러져 의료봉사대의 치료를 받고 있는 민기는 보지 못한 듯했다. 이지훈의 눈빛이 기이하게 반짝이며 카메라 렌즈를 통해 노인을 쏘아보았다.
“시인 할아버지!”
노인이 확성기 차량 뒤쪽으로 내려온 순간, 연우 식탁에서부터 달려온 지오가 발그레한 얼굴로 숨을 헐떡였다. 노인이 지오를 향해 함빡 웃었다.
“오, 우리 숙자씨 임종 지켜준 고운 아기씨구만. 기레 그동안 잘 있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