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아버지를 구해줘
“여러분끼리도 통제가 안 되십니까? 이탈자가 생길까봐 서로 팔짱 끼고 있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경찰 선무 차량 여경의 자극적인 멘트가 점점 도를 더하고 있었다. 귀를 막고 있던 시민들 속에서 “노래해, 노래해” 구호가 울려 퍼졌다. 잠깐 멈추었던 방송차량이 다시 확성기를 잡자 이번엔 “개인기, 개인기” 구호가 퍼졌다. 하나의 구호가 네 번쯤 되풀이 되고 나면 또 다른 구호가 네 번쯤 외쳐지는 식이었다.
“경찰은 건전한 시민들의 안전을 지킵니다. 시위 현장의 당신들은 국민이 아닙니다.”
대치해 있던 시민들 속에서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노래해!” “개인기!”를 외치며 최대한 충돌을 자제하던 시민들 속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폭력이냐 비폭력이냐. 오래된 논쟁이 되풀이되기 시작했다. 시민들이 비폭력 평화시위를 고수해도, 경찰이 시위 자체를 불법폭력시위로 몰아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노래는 무슨 노랩니까? 개인기는 또 뭡니까? 새벽마다 물대포, 소화기 세례가 지겹지도 않습니까? 저는 이제 아주 지겹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노래하고 춤춘다고 청와대가 눈 하나 깜짝합니까? 어제 새벽에도 제 친구가 안국동에서 부상당한 채 질질 끌려서 연행됐습니다. 저들이 시민에 대한 최소한의 두려움이라도 있다면 날마다 이렇게 과격 진압을 하고 날마다 시민들을 연행해 가겠냐구요!”
날카로운 목소리가 시민들 한가운데서 터져 나왔다.
“옳습니다. 우리도 보다 강력하게 저항해야 합니다. 저들에게 두려움을 보여줘야 합니다.”
“진정들 하세요. 진정한 두려움은 폭력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대열이 혼란스러워졌다. 시민들의 대세는 비폭력 평화주의를 견지하는 것이었지만, 날마다 계속되는 무차별 진압과 연행은 비폭력 저항에 대한 무력감을 동시에 높여가고 있었다. 이윽고 시위대 편에서 과격한 대응을 하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두 부류였다. 경찰이 시위대를 자극하기 위해 시민들 속에 심어놓은 사복 경찰 프락치들이 그 한 부류였고, 또 한 부류는 정말 무력감을 이기지 못하고 흥분한 시민들이었다. 경찰 수뇌부에게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은 소탕해야 할 ‘적군’일 뿐이었다. 집회의 보호나 시민의 안전 같은 것은 뒷전이었다.
“채증하면 시비 걸 거야. 그런 놈은 검거해.”
마치 누군가 들으라는 듯 무전기에 대고 큰소리로 떠들어대는 현장 지휘관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현장지휘자들끼리의 경쟁심이 불붙으면서 관할구역에서 더 많은 인원을 연행하는 데 혈안이 되기도 했다. 젊은이들은 분노했다.
닭장차가 밀리고 있었다. 광장 가운데로 질질 끌려나온 전경버스 한 대가 순식간에 집회 참가자들에게 둘러싸였다. ‘MB아웃’이라고 쓰인 머리띠를 한 중년아저씨가 “엎어버립시다!” 라고 외치기 시작하자 젊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맨손으로 버스를 밀기 시작했다. 뒷바퀴 쪽에 붙어 힘을 쓰고 있는 태연과 민기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부러진 막대를 지렛대 삼아 차량 하체에 밀어 넣는 사람도 있었다. 버스는 몇 번 한쪽으로 들렸다 말았다 하다가 이내 사람들의 구호 속에서 ‘쿵!’ 하고 쓰러졌다. 쓰러지는 순간 차체 왼쪽으로 먼지가 피어올랐다. 순간 기자들의 사진기 플래시가 여기저기서 터졌다. ‘경찰차를 망가뜨리고 있는 촛불 폭도들’ 따위의 기사거리로 제격인 사건이었다. 넘어진 버스의 들여다보이는 차체 하부와 바퀴들이 삭막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민기의 바로 옆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잠깐 눈을 감았다 떴다. 그 순간 누군가 민기의 팔목을 거칠게 잡아채더니 대열 후미로 끌고 갔다.
팔목을 잡아 끈 것은 민기의 아버지였다. 얼마나 거칠게 잡아끌었는지 민기의 팔목 뼈에서 소리가 날 정도였다. 아버지의 다른 한 손엔 취재용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냐.”
“제 삶의 주인으로 사는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슨 시건방진 소리야! 당장 돌아와!”
“그럴 수 없습니다.”
“네가 뭘 안다고! 이 사람들한테 속고 있는 거야. 너는 아무것도 몰라.”
“이 상황에 대해선 제가 아버지보다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놈!”
이지훈의 입술 끝이 가늘게 떨렸다.
“팔은 그게 뭐냐?”
붕대를 감은 민기의 한쪽 팔을 보며 아버지는 입술만 떨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의 손끝도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었다. 민기가 그런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민기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떨고 있는 아버지를 처음 보았다.
아버지가 다니는 신문사의 한 인물이 최근 떠들어대는 말들이 떠올랐다. 촛불광장이 포르노 영화관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상상력을 펼치는 극우 보수논객. 촛불집회에 참석한 청소년과 그 학부모를 향해 포르노 영화관이나 호스티스가 있는 술집으로 데려간 격이라고 분개하던 그는 각종 배후론, 음모론, 색깔론, 괴담론, 불법시위론, 촛불변질론, 폭력집회론의 제조자이자 신봉자였다. 촛불집회에 아이를 데려오는 사람들이 어린이 성추행범보다 더 나쁘다면서 시위 진압에 최루탄을 사용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국가 수호를 위해 경찰이 아니라 군대가 나서야 한다고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아버지의 목덜미가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것을 바라보다가 민기가 가만히 뒤돌아 성큼성큼 촛불대열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갔다.
“아버지를 구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그러나 아버지는 민기를 구하고 싶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