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1. 구원투수
서울광장에 촛불 대신 위패가 빼곡히 들어섰다.
시민들은 목, 금, 토요일로 이어지는 삼 일을 72시간 릴레이 촛불집회로 계획해 놓은 상황이었다. 삼 일에 걸친 릴레이 촛불집회는 자연스레 6.10 촛불대행진의 전야제가 되는 셈이었다. 그런데 위패가 출현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광장 주변에 모여선 사람들이 수런거렸다.
북파공작원들의 모임인 ‘특수임무수행자회’에서 5일 저녁부터 현충일인 다음날까지, 1박 2일에 걸쳐 북파공작원 희생자 위령제를 연다는 것이었다. 서울광장에 7726명의 이름이 적힌 위패가 가득 들어찬 것은 그 때문이다. 위패마다 태극기가 하나씩 꽂혀서 펄럭거렸다. 광장 주위는 천막으로 둘러쳐져 일반 시민의 출입마저 통제되었다. 잔디 위에 햇살은 무람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북파공작원이라면 북쪽에 보낸 남한의 간첩이라는 거야?”
“북한에서 간첩활동을 하다가 희생된 분들을 위한 위령제라…, 저런! 그런데 왜 갑자기 서울광장이야. 현충원 같은 데서 해야 하는 거 아냐?”
“애초 정보사령부에서 위령제를 열기로 했는데 장소를 바꾸었대.”
“못 들었어? 그 얘기? 어제 대통령과의 오찬 후에 장소가 갑자기 시청 앞으로 변경됐다잖아.”
“MB의 구원투수 종류도 참 가지가지네. 경찰력도 모자라서 이제 민간인까지 동원해! 촛불이 광장에 모이는 걸 어떻게든 막겠다는 건데 쯧쯧, 꼼수하곤!”
“MB가 서울 시장할 때도 그랬어. 서울 광장 ‘노점상 통제 특명' 받고 북파공작원들이 광장을 장악한 적 있었지. 그때 우리 동호회에서 서울광장 출사 나왔던 거 기억 안나?”
“말하면 무엇 해.”
광장 주변에 빙 둘러선 채 팔짱을 낀 사람들이 저마다 두런거리며 쯧쯧, 혀를 찼다. 돌에 구멍을 내어 등을 넣은 벽부등을 머리통처럼 만지며 앉아 있던 여자가 일어나면서 말했다.
“북파공작원들, 참 비극적인 삶을 산 사람들인데, 필요할 때 써먹기만 하고…… 정작 그분들 인권문제는 나 몰라라 하는데…… 가슴 아프게 왜 아직도 이런 데 동원되는지 몰라…….”
가냘프지만 단호한 목소리의 사십 대 여자였다. 그녀가 라이터를 켰다. 촛불에 불을 밝히려고 여자의 붉은색 라이터가 불똥을 몇 번 튀겼지만 가스가 다 되었는지 불이 붙지 않았다. 곁에 서 있던 남자 둘이서 거의 동시에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한 남자가 라이터를 먼저 내밀자 한 남자는 손으로 바람을 막아주었다. 여자의 뒤쪽에 지오가 서 있었다. 광장과 바로 연결되는 시청 정문을 통해 사람들이 드나드는 것이 보였다. 광장 밖의 풍경은 여느 날과 다름이 없었고 광장 주변엔 낮부터 촛불을 켠 채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북파공작원 위령제와 충돌을 원하지 않은 시민들은 오후 7시에 열리기로 예정된 72시간 릴레이 촛불문화제를 광장 옆 태평로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광장 주위로 모여들던 시민들이 천천히 덕수궁 쪽으로 이동하는 동안, 지오는 꼼짝을 하지 않은 채 위패로 가득 찬 광장에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한가롭게 이리저리 오가는 풍경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한국 사람들에게 ‘6월 항쟁’이 어떤 의미인지는 마리를 통해서도 들은 바 있었고 책을 통해서도 읽은 적이 있었다. 지오는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고시철회’와 ‘전면재협상’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와 소망의 표출이 ‘6.10 촛불대행진’에서 빛나는 절정을 맞게 되기를. 눈귀 다 막은 채 경찰력만 동원해대는 이 정부도 민주화의 상징인 6.10을 지나면서는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한국 속담에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으니까, 천심을 보고 나면 아무렴 좀 변하지 않을까 싶었다. 제법 낙관적인 지오의 예측은 인사동 입구 비닐 포장을 덮은 인도변 점집에서 ‘6월에 귀인이 나타날 운’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의 심정과 비슷한 것이었다.
지금 촛불은 금지되고 광장엔 위패만 가득 차 있다. 광장을 보는 지오 얼굴에 여릿한 어둠이 스며들었다. 한국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처럼 속수무책의 막다른 풍경이 나타나고 도저히 추측이 안 되는, 어두운 비밀의 미로라 해야 할 사회적 배면들이 펼쳐지자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확실하게 들었다. 지오의 팔꿈치를 끌며 태연이 카메라 손잡이에 길게 늘어뜨려 매놓은 분홍빛 리본을 만지작거렸다. 리본에는 <연우 누나의 꿈공장>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냥, 어째 좀 으스스한 느낌이 들어서 그래. 남파 간첩에 이어 북파 간첩까지…….”
지오가 어깨를 치켜올리며 중얼거리자 민기의 눈빛이 빠르게 어두워졌다. 사람들에 떠밀려 지오가 두어 걸음 뒷걸음질 치자 민기도 지오 곁으로 따라붙었다. 세종로 네거리의 옥외 전광판에는 15분에 한 번꼴로 누렁소할머니 고정 간첩설 기사가 번쩍거리고 있을 터였다. 점멸하는 불꽃이 옮겨 붙은 것처럼 민기의 가슴속이 매캐하게 답답해왔다. 누렁소 할머니 고정간첩설이 6.10에 대한 맞불로 만들어낸 조작설이라는 얘기가 시민들 사이에는 이미 파다하게 퍼졌고, 민기의 아버지 이지훈의 이름도 심심치 않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대문짝만하게 뽑아놓은 기사 제목만 보면 남파 고정 간첩이라는 얘긴데, 자세히 읽어보면 ‘간첩으로 추정하고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이런 식이야. 혹세무민 언론의 전형적인 방식이지. 지겨워. 으휴, 으휴.”
한쪽에선 혹세무민해도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과 거리에서 토론하고 노래했다. 지나가는 사람의 발에 걸린 지오가 신발을 보려고 약간 고개를 숙였다. 발소리, 웃음소리, 소음, “뭐라고요?” 하는 소리, 팔에 끼고 있던 주간지가 떨어지는 소리, 움직임, 촛불, 촛불냄새, 머리칼 냄새, 앞에 가는 누군가 떨어뜨린 종이컵…… 굴러가는 종이컵을 주워 든 지오의 얼굴은 어둡고, 이내 한숨을 폭 내쉬었다.
“내가 살던 세계는 아주 단순했어. 거기엔 공기는 공기가 아닌 것처럼 자유는 자유가 아닌 것처럼 평화롭게 그냥 흘렀어. 그래서 공동체가 맞닥뜨린 슬픔에 대해서 난 잘 몰라. 그래서 혼란스러워.”
민기가 다시 지오의 팔꿈치를 끌었다. 광장 둘레에 깔린 화강석 보도블록 하나가 위로 삐져나와 지오가 비칠거렸다. 바로 그때 꽂아놓은 위패 하나가 바람에 끄덕이다 쓰러졌다.
군복을 입고 큰 걸음으로 광장을 어슬렁거리며 오가던 검은 베레모의 남자가 얼른 걸어가 위패를 바로 세우곤 툭툭 먼지를 털었다. 그리곤 제법 신중한 자세로 태극기를 다시 꽂았다. 무어라 이름 붙일 수 없는 상처 같은 초여름의 한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