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자정의 광장으로. 4
새벽 2시. 수천 명의 시위대가 "고시 철회", "평화 시위, 보장하라", "폭력 경찰, 물러가라" 구호를 외쳤지만, 광화문 네거리 주변에 밀집해 있던 전경 병력들은 시민들을 향해 다시 밀어닥쳤다. 디카나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시민들은 연행의 집중 타깃이 되었다. 경찰이 청계광장 쪽으로 밀어내던 대열 속에서 피 흘리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방패에 찍혀 얼굴 여기저기 찢기고 이가 부러지고 팔이 꺾인 사람들이 늘어진 채 질질 끌려갔다.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지만 경찰의 압박은 아랑곳없었다. 특공대가 사선대형으로 투입되었다. 연행되는 시민들의 수도 계속 늘어났다. 후퇴하는 시민들의 등을 향해 방패가 날아왔다. 이십대 여성의 뒤통수에 방패가 내리 찍히자 억! 하는 단말마의 비명이 터졌다. 쓰러진 여자의 얼굴을 군홧발이 다시 짓밟았다.
“갑자기 밀면 사람들이 다쳐요, 뒤로 빠질 테니 제발 좀 천천히!”
삼?사십대의 남자 몇이 경찰 부대를 향해 사정하며 부상자가 생기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보였다. 목이 졸린 채 연행되어 가는 여자를 구하려고 달려드는 여자들도 보였다. 사방에서 “비폭력!” 구호가 터졌지만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경찰의 폭력은 안하무인이었다. 화가 난 몇몇 남자들이 경찰의 방패를 걷어차기 시작했다. 일부의 사람들이 다시 그들을 말렸다.
“저들과 똑같아지면 우리가 지는 거예요!”
한 여자가 거의 울부짖듯 소리쳤다. 어디선가 피 냄새가 나고 똥 냄새도 났다. 구역질이 날 것 같은 썩은 냄새도 났다. 자원봉사 의료진이 거리를 누비며 쉴 새 없이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이곳은 날이 밝으면 출근하는 사람들로 미어터질, 거짓말 같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 광화문 네거리였다. 자원봉사를 나온 사십대 여자가 방패에 맞아 이마가 찢어진 이십대 여자의 얼굴 상처를 닦아주며 덤벼드는 경찰을 향해 “아, 제발 그만…… 제발 그만……!” 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소독 솜을 갈았다.
한 손으로 넘어지는 여자를 일으켜주며 한 손으로 카메라를 챙기는 연우의 모습을 본 것이 태연이 지켜본 시위대 속 연우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신발을 잃어버린 지오를 민기와 함께 데리고 대열 후미에 데려다 놓은 후 앞쪽의 연우를 다시 찾았을 때, 멀리 보이던 연우의 흰 티셔츠가 휙, 사라지는 것이 보였던 것 같다. 뿌옇게 분사된 소화기 분말로 흐려진 시야에 곤봉을 치켜들고 있는 경찰의 모습이 엔딩 컷처럼 연우의 흰 셔츠 위로 오버랩 되었다.
“공공 안전의 유지를 위해 잠시 후 검거작전을 시작하겠습니다…”
경찰 방송이 다시 시작되었다.
“우리 차도로 안 내려갈 테니, 너네! 인도로 올라오지 마!”
젊은 남자가 소리쳤다.
“검거라니! 우리가 범죄자니? 이 무식한 깡통 히틀러 새꺄! 공공안전을 위해서? 지랄하고 있네. 너네 때문에 우리 공공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거든? 아주 전 국민을 범죄자 만들어서 대한민국 전체를 감옥으로 만들어라! 썅 호로새끼! 야! 나, 국민 안 해! 나 너 국민 아니니까 내 몸에 털끝 하나 손대지 마! 이 더러운 새끼야!”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가 새되게 솟구쳤다. 소리 나는 쪽으로 지오가 목을 뺐다. 수아였다. 태연이 잽싸게 수아 쪽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태연과 함께 나타난 수아는 분해서 씩씩거렸다. 세련된 보트넥의 보랏빛 실크 원피스는 소화기 분말 액으로 등 쪽이 희게 얼룩져 있었고, 오른쪽 소매의 어깨가 4분의 1쯤 뜯겨진 채였다. 한 손엔 밟힌 듯 중간이 푹 꺼진 종이가방을 들고 한 손엔 굽이 부러진 구두를 든 채였다. 놀라는 아이들을 보자 수아가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내 꼴 웃기지? 저 호로새끼들 때문에 공주님 일상이 지장이 많다. 에잇, 열 뻗쳐!”
상황은 심각하게 돌아가는데, 일단 아이들은 웃음이 터졌다.
“근데 연우는?”
“연우 언니 안 보여서 우리도 지금 찾는 중이에요.”
대답하는 지오의 낯빛이 왠지 불안했다.
“괜찮을 거야. 연우는 달리기 열라 잘하거든. 저런 꼴통들한테 잡힐 애가 아냐. 근데 이 새끼들이 내 샌드위치를 이 모양 만들어 놨어. 나눠 먹으려고 일부러 챙겨온 건데. 아 진짜 확!”
종이 가방을 열어보며 인상을 찡그리는 수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시 소화기가 살포되고 동시에 언론 통제용의 조명등이 내리 꽂혔다. 사진도 동영상도 찍어봐야 온통 백색으로 밖에 나오지 않는 강렬한 조명등을 쏘며 전경들이 밀어닥쳤다.
"비폭력! 비폭력!"
"때리지 마요, 때리지 마요."
아우성 속에 시민들의 구호는 처절하기만 했다. 수아가 지오의 손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