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자정의 광장으로. 3
세종로 광화문 네거리는 시위대와 경찰이 뒤엉긴 채 아수라장이었다. 차벽으로 쳐놓은 경찰버스 안에 대기하던 전경들이 본격적으로 해산 작전을 개시하기 시작했다. 경찰이 살포한 소화기 분말을 하얗게 뒤집어쓴 사람들이 멀리 보였다. 전경들이 군화와 방패 소리를 내며 전진 배치되고 있었다. 시위대는 앞과 좌우가 모두 막혀 있고, 그 속에서 동요하는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아, 씨발. 어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쳤는데, 오늘도 심상찮겠군. 미친 새끼들. 진짜 시민을 상대로 싸우겠다는 거잖아, 이건!”
태연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흥분하는 태연의 옆에서 민기가 슬픈 눈으로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민기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지오가 그런 민기를 슬쩍 바라보았다.
“잘못하다 맨 앞이 고립되겠다. 사람들이 많아야 함부로 건들지 못해. 앞으로 좀 더 가자. 민기야,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넌 지오 데리고 여기 있어.”
지오가 고개를 도리질하며 얼른 연우의 손을 잡았다.
“같이 갈래요.”
지오의 표정은 단단했다. 연우가 카메라를 꺼내 든 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위대 맨 앞의 시민들은 바로 코앞에 전경들을 마주보고 있는 형국이었다. 연우, 지오, 태연, 민기가 앞쪽으로 움직여 가는 동안, 경찰들이 방패로 시민들을 밀치며 압박을 시작하자 노랫소리는 끊어지고 여기저기서 고함소리, 호루라기 소리가 귀를 때렸다. 그리곤 순식간에 충돌이 일어나 사방에서 연행되는 시민들과 경찰이 한데 얽혀 진흙 속에서 철벅거리는 것처럼 아수라장이 되고, 넘어지고 끌리고 짓밟히는 사람들의 신발이나 안경이 굴러다녔다. 머리 위로 올린 연우의 카메라가 공중에서 빠르게 터졌다. 뒤쪽에서 소화기가 난사되기 시작하고, 경찰 방패에 의해 밀어붙여져 고립된 시민들은 바로 연행이었다. “고립되면 안 됩니다. 혼자 떨어지지 마세요!” 군중 속에서 다급한 외마디 말들이 터져 나왔다. 처음엔 공중으로 조준되던 소화기 분말이 이제 시민들의 얼굴을 향해 정면으로 발사되고 있었다. 엄청난 속도로 경찰의 압박이 계속되고, 툭탁거리는 방패 부딪는 소리가 전쟁터에서 다가오는 적군의 공격 소리처럼 위협적이었다. 시민들은 속수무책으로 뒤로 밀렸다. 열심히 앞으로 걷는데 사실은 뒤로 떠밀리는 판국이었다. 한바탕 소화기 분말이 지나가고 방패 소리, 군화 소리, 산발적으로 터지는 외마디 비명 소리 뒤쪽에서 몇몇 대열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그 바람에 연우도 넘어지면서 어깨에서 카메라 가방이 벗겨져 나갔다.
“누나, 괜찮아요?”
태연이 연우의 카메라 가방을 주워 얼른 자기 어깨에 멨다.
“응, 나는 괜찮아. 너희가 이 꼴을 다 봐야 하다니.”
넘어지면서 도로에 부딪힌 카메라의 렌즈 상태를 재빨리 확인한 후 연우가 카메라를 꼭 끌어안았다.
“아, 돌겠네 진짜. 국민 대접 제대로 하네! 이러면서 매일 아침 하나님 사랑과 은총 운운하며 모여서 조찬 기도들을 하시겠지! 젠장!”
흥분한 연우가 밀리는 중에도 비명처럼 종알거렸다.
떠밀리는 중에도 누군가 맞장구를 쳤다.
“나는 목사요. 난 죽어라 촛불 들 겁니다. 그게 내가 MB 장로님을 사랑하는 방식이오. 복수혈전이오. 상대가 한심하니까, 사랑이란 걸 도무지 모르니까, 빡세게 사랑해주는 겁니다. 사랑으로 복수하는 겁니다. 손가락이 오그라들도록!”
시민들 속에서 수염을 기른 한 남자가 팔을 걷어붙인 주먹을 높이 들면서 말했고, 밀리면서도 “와아!” 하는 환호소리가 들렸고, 어디선가 간헐적으로 맑은 목탁 소리가 빗방울 소리처럼 들려왔다.
한바탕 아수라장이 지나가고 나자 새벽 1시였다. 이제 광화문 사거리를 독차지한 것은 경찰이었다. 경찰에 밀리고 연행되면서 시민들은 너덧 군데로 흩어져 있었다.
“우리가 여기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목 터지게 외친다는 게, 그게 결국 뭐냐?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 아니란 거지. 형식은 민주공화국인데 내용은 경찰국가라는 거야.”
“경찰 독재!”
“껍데기 법치!”
“저 전경차들 전부 불법 도로 점거! 불법 주차!”
여기저기서 울분에 찬 시민들의 외침이 마구잡이로 들려왔다. 불안한 긴장이 감도는 소강상태가 지속되더니 경찰이 방송을 시작했다. 지겨운 그 여자 경찰의 목소리다.
‘여러분의 불법 시위로 선량한 시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으으, 저 목소리. 으, 소름 돋아.”
연우가 귀를 막으며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헐, 광주 때도 그랬다면서요. 시민이 아니고 폭도라고. 폭도는 시민이 아니니까 총칼로 죽여도 된다고.”
태연이 기막힌다는 듯 ‘헐’을 반복했다. 지오가 연우를 따라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때였다. 내내 조용하던 민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여자 경찰 말예요…. 설마, 정말 저렇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죠? 그냥 직업이 경찰이니까… 어쩔 수 없이 저러는 거겠죠? … 위에서 시키면 해야 하는 걸 테니까.”
연우가 민기를 보았다. 민기의 미간이 울음을 참는 사람처럼 찡그려진 채였다. 간신히 슬픔을 참고 있는 얼굴이었다. 태연에게서 얼핏 들은 민기의 가출 이유 중 하나가 문득 떠올랐다. 민기의 아버지가 보수언론에 오래 몸담고 있는 기자라는 사실. 태연도 그 이상은 자세히 말하지 않았고 연우도 금세 잊고 만 사실이었다. ‘민기 너, 아버지를 정말 사랑하는구나.’ 생각한 순간 연우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보수언론의 작태를 야유하고 욕할 때 이 아이는 혼자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또래의 아이들이 보이는 부모에 대한 이유 없는 반항이 아니라, 아버지를 진심으로 좋아하기 때문에 생기는 갈등이라면 아마 홀로 감당하기 더 힘들 것이었다.
“기자 분들은 모두 자리에서 비켜주시기 바랍니다."
경찰 차량의 선무방송이 기자들의 철수를 요구하고 있었다. 내용은 협박인데 말은 경어체였다. 이어서 노약자와 여성도 철수하라고 종용하기 시작했다. 무언가 곧 닥칠 거라는 먹구름 같은 긴장감이 시위대에 감돌기 시작했다. 경찰 방송은 더 이상 폭력을 방치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왜 도망을 다니십니까? 밤이 늦었으니 어서 안전하게 귀가하세요” 라고 덧붙였다.
“저런, 개자식!”
누군가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오고 잠시 조용하다 싶더니 시민들 사이에서 이번엔 새벽까지 수고하는 전경들에게 박수를 보내자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어리둥절한 채 두리번거리던 시민들이 박수에 동참하며, 마치 두려움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 쓰듯이 힘차게 박수를 쳐댔다.
“아, 젠장!”
태연이 욕을 뱉으며 발끝을 도로에 슥슥 문질렀다. 곧 자신들을 향해 몽둥이를 들고 덤빌 경찰들에게 박수라니?
“내 동생도 전경이다. 전경들을 석방하라! 전경에게도 선택권을!”
목 터지게 외치는 누군가의 갈라지는 목소리를 쓰러뜨리며 툭탁거리는 방패 소리, 군홧발 소리가 다시 도로를 자욱하게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