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유월에 부르는 오월의 노래. 1
6월 1일. 일요일. 오후 4시. 분꽃이 피는 시간. 숙자씨가 하늘나라로 갔다.
지오와 연우가 B병원 현관을 나오자, 한낮의 열기를 살짝 머금은 채 몸을 저녁 쪽으로 기울인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왔다. 저녁을 향해 가는 데 아직 저녁은 아닌 시간. 낮도 아닌 시간.
“경계의 시간이야.”
지오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지오의 발목에서 상앗빛 뼛조각들이 응답하듯 달그락거렸다.
경계에 있는 시간이니 이편에서 저편으로 폴짝, 건너가기 좋을 것이다. 숙자 할머니는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처럼 아주 야윈 몸을 가졌으니까 이런 시간이 좋긴 하겠다. 치맛단을 살짝만 걷어 올리면 어렵지 않게 저편으로 건너갈 수 있을 것 같은 시간…….
지오도 연우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가슴에서 여러 개의 문장들이 몸을 일으키다가 사라졌다. 이런 경계의 시간에는 문장도 몸 같은 건 가지고 싶지 않을 것이다. 병동 앞 벚나무 아래 벤치 위에 악보를 놓고 기타를 튕기고 있던 민기와 태연이 지오와 연우를 보더니 사정을 알아챘다. 키가 껑충한 민기가 말없이 기타를 가방에 넣어 메고 태연이 카메라 가방을 든 채 지오와 연우의 뒤를 따라 걸었다.
경찰은 할머니를 부검할 거라 했다. 정확한 사인을 규명해 한 점 의혹도 남기지 않겠단다. 좋으실 대로. 연고가 없는 할머니의 주검에 대해 경찰이 그러겠다면 그러는 것이다. 흰 시트로 할머니의 얼굴을 가리는 순간 부검을 운운한 뚱뚱한 경찰은 할머니의 주검이 마치 자기 소유의 가죽 백이라도 된다는 듯 거만하게 말했다. 지금쯤 할머니의 시신은 차디찬 냉동고로 옮겨지고 있을 것이다. 연우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할머니의 죽음을 가지고 제발 이상한 짓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연우는 생각했다. 그동안 경찰이 보여 온 품새를 보면, 영 느낌이 불길했다.
병원 밖을 나서니 어디선가 훅, 꽃향기가 풍겨 오는 듯했다. ‘라일락인가?’ 연우가 순간 생각했다. 동시에, 라일락 잎사귀를 씹은 것처럼 쓰디쓴 침이 입안에 고였다. ‘하긴, 라일락은 벌써 피었다 졌겠지. 벌써 유월인걸. 그러고 보니 올핸 꽃이 언제 피는지도 모르고 지나간다……’ 연우가 하늘을 쳐다보며 이마를 짚었다.
“수수꽃다리.”
“응?”
“이거. 수수꽃다리 향기. 라일락의 한국 이름. 예뻐서 특별히 기억하고 있는 이름인데. 갑자기 왜 이 향기가, 어디서 풍기는 거지? 음…… 할머니 냄샌가?”
지오가 공중으로 얼굴을 쳐들더니 흠흠 냄새를 맡았다.
“연우 언니. 하늘나라 가면서 할머니가 우리한테 인사하나 봐요.”
아, 지오야. 지오의 말이 신호라도 된 것처럼 연우의 눈시울이 더워졌다. 병실에서 지오는 처음엔 새하얗게 얼굴이 질린 채였다. 너무 하얗게 질려서 부축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의연하다. 어느새 훌쩍 침착하고, 현실 같지 않게 해맑다. 한동안 공기 중의 향기를 맡고 있던 지오가 입술 끝에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미소 같기도 하고 마음을 다잡기 위해 침을 꼴깍 삼키면서 생긴 표정 같기도 하다.
“가요, 어서. 우리, 할머니 보내드려야 하잖아요!”
지오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연우는 금세 알 수 있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해?”
“응!”
지오가 힘있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연우가 한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잰 걸음으로 도로로 나가 택시를 잡았다. 누구라도 그렇지 않겠는가. 지상에서의 마지막이 오면 자신이 살던 집에 안녕을 고하고 싶은 게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할머니의 주검은 경찰에 의해 냉동고에 들어 가겠지만, 할머니가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머물고 싶은 곳은 언덕 위의 호박 넝쿨 집일 것이다.
시트를 덮고 시신 처리를 하라고 지시를 내린 뚱뚱한 경찰이 크게 하품을 하며 귀를 후비면서 말했었다. 친척도 아닌데 뭘 그렇게 신경을 쓰냐고. 연우는 순간 하품하는 경찰의 턱을 날카롭게 쳐다보았다. 알 수 없는 분노가 일었다. 지오 또한 세상에 우연은 없는 거며, 만남이란 이유를 다 알 수는 없어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레인보우의 여신들에게서 배운 말을 해주고 싶은 심정으로 경찰을 쳐다보았다. 복잡하고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다. 그게 인간에 대한 예의니까.
택시의 앞좌석에 앉자마자 연우가 기사에게 라디오 볼륨을 올려달라고 했다. ‘호텔 캘리포니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연우가 입술을 꼭 앙다물었다. 연우의 마음 한 구석은 자꾸만 쿨럭거렸다. 지상에서 떠나는 한 목숨이 이렇게 쓸쓸해도 되는 것일까. 때는 2008년. 광장이 소녀들로 환하게 열릴 때, 외할머니 냄새를 풍기던 이름 없는 여인의, 죽어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삶. 죽어도 경찰밖에 모르는 삶. 자신의 숨결로 인간을 지었다는 분은 알고 있을까. 우연히 알게 된 우리가 아니었다면 누렁소 할머니의 죽음을 또 누가 기억할까. 이런 삶이 비단 숙자 할머니만이 아니라는 걸 카메라를 메고 찾아다닌 서울 변두리의 그 숱한 곳들에서 연우는 봐 왔다. 늙고 병들고 연고 없는 사람들의 셀 수 없이 많은 주름진 얼굴을. 연우는 저녁 안개가 감싸는 어느 작은 섬 위에 누워 잠겨드는 사람처럼 시트에 몸을 기댔다.
세상이 그만 슬퍼질 수 없을까…그럴 수…있기는…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