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하늘나라 숙자씨
끔끔찍한 얘기를 마저 할게. 나도 오늘 동이 트는 시간에 들은 얘기야. 여대생 사망설이 돌고 있어. 누군가 인터넷에 올린 글인데, 이삼십대 젊은 여성이 시위 진압과정에서 사망했다는 거야. 글을 올린 사람은 현장에서 보았다 하고, 경찰은 근거 없는 허위사실을 악의적으로 편집해 네티즌을 선동했다며 그이를 구속 수사하겠다고 해.
경찰의 말처럼 글을 쓴 사람이 사실과 다르게 썼을 수도 있어. 동일한 사건을 판독할 때에도 인간의 눈은 몹시 주관적이니까. 확실한 건 ‘뭔가 일어났다는 것’인데, 일어난 그 ‘무엇’에 대해서 언론은 냉담하고 괴담만 떠돌아. 이상하지 않아? 무언가 일어났는데 그 무언가를 처음부터 괴담으로 치부하는 거야. 왜들 그러지? ‘괴담 같은 사실’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뭔가 일어났다면 사실을 취재하려고 해야 하잖아. 의혹이 있으면 조사를 해야 하고.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여러 가지 추측이 나오는 거야 당연한 일이니까, 특히 언론은 진실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건데, 그런데 사실은 뺀 채 사실에 대한 해석만 써대. 양아치들 같아(‘양아치’는 ‘거지’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야.)
숙자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야. ‘누렁소 할머니 사망설’이 떠돌기 시작한 이후로 연우 언니가 몇 차례 경찰에 불려가서 조사를 받았어. 경찰은 누렁소 할머니 사망설이 만에 하나 촛불을 폭발하게 하는 뇌관이 될까 봐 조심하고 있는 것 같아. 정부 입장에서야 당연하겠지. 그런데 문제는, 왜 경찰에게 맡기지 않고 경찰보다 먼저 할머니를 병원으로 옮겼느냐. 그 이유가 뭐냐. 이런 똑같은 질문을 여러 날째 추궁받고 있다는 거야. 현장에서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고, 가장 가까이 있던 우리가 가장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정신을 잃은 할머니를 옮겨드린 것인데 도대체 뭐가 문제가 되는 걸까.
실은 나도 조사를 받았어. 숙자씨가 실신한 건 내 품안에서였으니까. 근데 나는 국적이 캐나다고 한국 기준으로 미성년자니까 조사는 금방 끝났어. 경찰은 사실을 밝히려고 한다기보다 뭔가 배후를 만들고 싶은 눈치야. 그런 점에서 ‘여학생 사망설’을 대하는 네티즌의 태도도 비슷한 점이 있어. 한국에선 뭔가 사건이 터지면, 사건 자체가 아니라 마치 사건의 배후부터 생각하는 것 같아. ‘누렁소 할머니 사망설’은 경찰 쪽에서 뭔가 배후를 만들고 싶어하고, ‘여대생 사망설’은 사실 입증이 석연치 않으니까 자꾸 소문으로 무성해져. 한국에선 뭐든 재빨리 색칠이 되고, 배후가 많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어. 사실을 조사하면 되는 건데 왜 다들 괴담을 만드는지 이상해.
아무튼 여러 사망설이 떠돌고 있는 중에 내 앞에서 진짜 사망한 건 숙자씨야. 음, 이건 최대한 간결하게 말하고 싶어. 누렁소 할머니 숙자씨가 하늘로 돌아갔다고.
경찰이 중환자실을 지키는 바람에 우린 첫날 말곤 할머니 얼굴을 자주 보지도 못했는데, 할머니 상태가 안 좋다고 의사가 우릴 불렀어. 막 출발하려는 버스에 날쌔게 올라타듯이 나는 가방을 들쳐 메고 정신없이 병실로 뛰어든 것 같아. 나와 연우 언니가 중환자실에 들어갔어. 경찰 두 명이 함께 있었지.
할머니, 아니, 숙자씨는 눈을 멍하니 뜨고 천정을 보며 아주 하얀 얼굴로 힘들게 숨을 쉬고 있었는데, 나랑 연우 언니가 들어가자 내가 온 걸 느끼는 것 같았어. 숙자씨의 눈동자가 움직였어. 나도 몰래 마음이 다급해지고, 나는 할머니 옆에 바짝 다가섰어. 할머니는 뭔가 말을 하고 싶어했어. 갑자기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 같더니, 집게손가락을 아주 힘들게 움직이는 거야. 나를, 아니, 꼭 나라기보다 말을 들어줄 누군가를 부르고 있는 거 같았어. 할머니 얼굴에 귀를 바싹 가져다 댔지.
“나는…숙자씨야.”
"알고 있어요."
“내 이름을 써줘.”
“네?”
나는 무슨 말인지 얼른 알아듣지 못했는데 연우 언니가 재빨리 메모지를 죽 뜯어 검은 사인펜으로 할머니 이름을 썼어. ‘김 숙 자’. 내가 메모지를 할머니 눈앞에 보여드렸어. 할머니가 가느다란 팔목을 들어 검지를 편 채 글자를 하나씩 짚었어.
“그래. 김숙자.”
할머니가 흐음, 숨을 내쉬셨어.
“그래. 내 이름. 나는 이름이 없는 사람이 아냐.”
할머니 입가에 살짝 미소가 떠오르는 것 같았어.
“그 사람이… 처음으로… 이름을… 불러줬어. 그 사람이. 아주 예전에.”
나는 어떻게 된 일인지도 자세히 모르면서 그만 눈물이 핑 돌고 말았어. 그 사람…… 자초지종을 알 수는 없지만, 할머니의 기억의 방들이 정전되고 난 뒤에도 끝까지 정전되지 않는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숙자씨’ 라고.”
할머니가 덧붙여 말한 후 미소 지으며 말했어.
“내 이름을 보리도 알고 있는데….”
그 순간 눈 뜨기 힘들만큼의 밝은 빛이 쏟아지는 듯 할머니의 눈이 실눈으로 변하고 호흡이 힘들어졌어. 할머니의 목소리가 아주 작아졌어. 그리곤 알아듣기 힘든 발음으로 할머니가 마지막 말을 이었어.
“박각시를…… 부탁한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아주 크게 고개를 끄덕였어. 그래야 할머니가 안심하실 것 같았거든.
“염려마세요. 박각시는….”
그렇게 할머니, 아니, 숙자씨는 하늘로 돌아갔어. 사람이 눈앞에서 죽는 걸 처음 봤어. 두렵고 신비했어. 할머니를 포옹했던 느낌이 이렇게 선명한데, 포옹을 하면 왼쪽과 오른쪽에서 모두 심장소리가 들리는데, 두 개의 심장이 몽땅 사라진 것처럼 갑자기 세상이 조용해졌어. 손끝에 그러잡은 마지막 한줌의 공기마저 풀어놓은 채. 죽는다는 게 이렇게 가벼워도 되나 싶게. 가볍게. 너무도 가볍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