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연우와 수아
사과는 밖에서 자란 개 같았다. 좁은 방안을 답답해했다. 희영은 개집 지붕을 푸른색으로 다시 칠해주었다. ‘사과의 집’. 문패도 달아주었다. 문패를 달아주고 나니 느낌이 이상했다. “사과에게 사과할 짓은 하지 말아야지.”
희영이 혼자 다짐했다.
사과는 나름대로 바빴다. 윗동네에 살던 개인지, 낮 동안엔 늘 언덕배기로 올라가 놀았다. 이 동네 길들을 익숙하게 아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희영이 출근할 땐 대로변까지 꼭 따라 나와 배웅했고, 퇴근할 땐 희영의 발자국 소리만 듣고도 골목 어귀까지 나와서 꼬리를 흔들었다. 간혹 희영의 퇴근이 아주 늦어져도 그녀가 돌아올 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기다렸다. 그럴 때마다 희영의 가슴이 따끔거리듯 더웠다. 희영에게 새로운 식구가 생긴 것이다.
사과와 식구가 된 지 한 달쯤 지난 8월 초. 열대야가 계속되던 날이었다. 골목 어귀부터 사과의 소리가 들려야 하건만, 사과는 퇴근하는 희영을 반기러 나오지 않았다. 희영이 개집 앞 막대에 걸어 둔 램프에 불을 켜자 안에서 사과가 사납게 크르릉 거렸다. 사과를 맨 처음 보던 날 같았다. 희영이 사과의 집 쪽으로 고개를 좀 더 수그리자 피비린내가 훅 끼쳐왔다.
회사를 결근한 다음날, 희영은 하루 종일 가까운 동물병원을 전전했다. 약속이라도 한듯 의사들은 하나같이 사과의 안락사를 권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순종도 아니고 잡종 개인데 거금 들여 뭐 하러 수술까지 하느냐는 거였다. 싸가지 없는 말본새에 처음엔 한 대 얻어맞은 듯 우두망찰했지만, 그들이 잡종 개를 들먹일수록 희영은 오기가 생겼다. 신촌의 한 병원에서 개를 다루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눈곱만큼도 들지 않는 젊은 의사의 눈동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희영은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동물 병원을 알려달라고 했다. 안락사를 시키게 되더라도 최고 좋은 병원에서 하고 싶었다.
그렇게 찾아간 신사동의 애견병원. 전등갓이 밝혀진 진찰실에서 젊은 여자 의사가 사과를 검사해보더니 치료는 가능하지만 상처가 깊고 여러 부위라 비용이 많이 든다고 했다. 게다가 개들에겐 치명적인 심장사상충 2기란다. 개를 키워본 적 없는 희영으로서는 처음 듣는 병이었다. 모기를 통해 감염되는데 심장에 애벌레가 점점 많아져 죽는 병이라 했다. 결국 상처 치료도 치료거니와 사과를 살리려면 심장사상충 치료도 해줘야 한다는 것이고, 2기면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거다. 비용 얘기를 끝으로 의사가 희영을 빤히 쳐다봤다.
한 달 치 월급을 몽땅 털어 우선 상처 수술부터 했다. 이것저것 떼고 100만 원 조금 넘는 월급을 받는 희영이지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만 있었다. 외상부터 치료하고 심장사상충 치료는 일단 사과의 운명에 맡겨보기로 했다. 희영을 쳐다보는 사과의 눈은 경련이 일고 얼굴은 쑥 들어가 있었다.
사과의 수술 부위는 빠르게 회복되었다. 그런데 보름 정도 지난 후부터 사과의 한쪽 눈이 심하게 충혈되기 시작했다. 때가 왔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 다시 찾아간 병원 의사는 이미 한 달 치 월급을 고스란히 쏟아 부은 상태여서 더 이상의 지출이 무리인 희영의 처지는 아랑곳없이 “이 개를 살리려면 심장사상충 치료를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합니다” 하고 짤막하게 말했다. 당장이라고? 치료비가 100만 원이나 든다면서? 사과를 받아 안으며 의사에게 조금 생각해보겠노라고 말한 뒤 희영은 병원 복도에 망연히 앉아 있었다. 사과는 기운이 없는 건지 희영의 눈치를 살피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조용히 희영의 무릎에 턱을 대고 앉아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감당이 안 되었다. 결국 동네병원 의사들의 말처럼 안락사를 시켜야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주르룩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희영은 좁은 병원 복도에 우두커니 앉아 맞은편 벽에 걸린 복사판 모나리자 그림을 멍하니 바라보며 울었다.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것 같기도 하고 사악하게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한 어두침침한 모나리자가 희영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치료하면 낫는대요?”
울고 있는 희영 옆에서 누군가 물었다.
“네.”
훌쩍이면서 희영이 대답했다.
“치료하면 나을 수 있다는데, 치료해야죠.”
“그걸 누가 몰라요? 돈이 없는 게 문제죠!”
화가 치민 희영이 한 손으로 눈물을 쓱 닦으며 옆자리를 노려봤다. 긴 생머리를 귀 쪽으로 비스듬히 묶은 계란형 얼굴의 여자애가 희영을 보았다. 마스카라가 번져 얼룩덜룩 한심한 얼굴이었다.
“전 조금 전에 안락사 시켰어요. 나을 수 없다고 해서. 이름이 송이였어요”
누가 물어봤니? 내 앞의 불도 끄기 힘든데 웬 신세타령? 짜증이 솟구친 희영이 건조하게 입을 뗐다. 다 귀찮았다.
“그래서요?”
“얘, 이름이 뭐예요?”
“사과.”
얼굴을 돌리며 희영이 차갑게 대답했다.
“사과……, 함께 살려보면 안될까요?”
“뭐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