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인터넷으로 촛불집회 생방송을 보던 희영 옆에서 멀뚱하게 모니터를 쳐다보던 사과가 갑자기 쿨럭거렸다. 처음엔 재채기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심상치 않았다. 목에 가시라도 걸린 것처럼 새된 소리로 깨갱거리기 시작하더니 방안을 이리저리 미끄러지면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간신히 붙들어 안으면 코와 입 주변에 경련을 일으키며 온몸을 떨었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개들도 간질 발작을 한다고 하던데 혹시… 희영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벽을 긁으며 낑낑거리고 마구 뛰다가 여러 번 곤두박질치던 사과가 온몸에 경련을 일으킨 끝에 맥을 놓았을 때 입가에 흐른 거품에서 독한 냄새가 풍겼다.
“뭐야, 왜 이러니?”
겁이 난 희영이 중얼거리며 서둘러 연우에게 전화를 했지만 이 시간에 연우가 전화를 받을 리 없었다. 수아에게 전화를 해볼까 하다가 관뒀다. 수아를 향한 희영의 마음은 언제나 들쭉날쭉했다. 어느 날은 좋다가도 어느 날은 영 거리감이 생길 때가 있다. 사과에게 문제가 생기면 희영은 늘 연우에게 전화를 했고 그러면 약속이나 하듯 어느 틈엔가 연우와 수아가 함께 오곤 했다. 책상 위의 모니터가 흘긋 눈에 들어왔다. 오늘도 3만여 명. 저 인파 속에 연우도 카메라를 들고 분주히 오가고 있을 테니 전화벨 소리를 못 들을 게 뻔했다.
한 바탕 발작 후 제 풀에 지쳐 있던 사과가 갑자기 상체를 일으키더니 문 쪽으로 걸어가 문을 긁어댔다. 수구초심의 여우라도 되듯이 문 앞에서 고개를 길게 빼고 낑낑댔다. 얘가 정말 왜 이래! 짜증이 나려는 참이었다. 그런데, 이건 뭔가? 사과의 눈이 번들거리더니 눈물이 그렁하게 고이는 게 아닌가. 눈물까지 고여서 어딜 향해 이렇게 우는 걸까? 능금이와 홍옥이가 사과 옆으로 기어 나와서 함께 끙끙거렸다. 쌩 난리다, 정말! 희영이 먼지떨이를 들고 사과를 위협해봤지만 소용없었다. 문밖에서 누가 부르기라도 하듯이 발톱을 세워 사과가 문을 긁었다. 성질 같아선 문을 확 열어주고 싶었지만, 열어주면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어……? 저건?”
컴퓨터 모니터의 흔들리는 동영상 속에서 누군가의 얼굴이 지나간 듯했다. 정확하게는, 아는 얼굴이라기보다 아는 몸짓, 그러니까 희영의 눈에 익숙한 한 사람의 등이 보였다.
“설마, 연우?”
모니터 앞에 바싹 붙어 얼굴을 들이대보지만 핸드핼드 카메라는 이미 다른 사람 쪽으로 프레임을 옮겨버린 뒤였다. B병원 앞에 기자들이 모여 있고 연노랑빛 깃발을 든 촛불집회 참석자들의 모습도 보였다. 휙 지나친 그 뒷모습이 희영의 가슴을 내리눌렀다. 연우라고 여겨지는 사람이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인터넷 동영상에 나타난 것 자체가 희영을 불안하게 했다. 쳐다보고 있는 동영상 속의 소리가 갑자기 지워진 듯 일순, 적막이 공포처럼 찾아왔다.
다행히 사과는 발작을 멈춘 채 쪽잠이 들었다. 발작을 한 건 사과인데 희영의 입에서도 단내가 풍기는 것 같았다. 희영이 금잔화 꽃잎을 띄운 물을 한 모금 물고 입 안을 헹구며 운동장이라도 한바탕 돌고 온 듯 맥이 풀린 눈으로 멍하니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있는 사람들. 그 속에서 보게 된 연우. 새삼스러웠다.
연우가 촛불집회에 꼬박꼬박 나가고 수아도 종종 합류하는 걸 알지만 희영은 아직 광장에 나가지 않았다. 촛불에 대해 마음으로 동의하지만 내 일은 아닌 듯한 느낌 때문이었다. 그래도 대통령인데 국민들 죽으라고야 했겠어, 싶은 마음도 있었다. 고소영이니 강부자니 말들이 많지만 대통령이나 되어서 정말로 상위 10퍼센트만을 위한 정치를 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는가.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대통령이 되고 싶은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러겠냔 말이다. 그러니 이 정부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라고 희영은 믿고 싶었다. 지난 대통령 또한 마찬가지 아니던가. 한다고 하지만 언제나 불만은 높고 반대세력으로부터 끊임없이 공격을 받은 건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그런데 엊그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문을 보고 나니 정말이지 한심한 생각이 들긴 했다. 한심하지만, 굳이 광장에까지 나가보게 되지 않는 것이 게으름 때문일까 소심함 때문일까, 사과가 흘려놓은 침 자국을 걸레로 훔치며 희영이 자신에게 물었다.
어릴 땐 9시 뉴스가 정말 싫었다. 왜 어른들은 저렇게 재미없는 프로를 보며, 9시에 왜 다른 프로는 올 스톱해야 하는지 희영은 알 수 없었고 그 때문에 늘 불만이었다. 9시 뉴스가 사라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치가들의 권력 싸움과 재벌들 재산 싸움 같은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들을 왜 전 국민이 일제히, 9시에, 알아야 한단 말인가. 크면서는 슬슬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른과 아이의 차이는 9시 뉴스를 보느냐 아니냐에서 결정 난다고. 어느 날부터인가 9시 뉴스를 챙겨보기 시작했지만, 희영은 여전히 9시 뉴스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렇담 나는 아직 어른의 세계에 편입하지 못한 걸까? 서른 살을 목전에 둔 피터 팬이나 웬디? 허걱이다, 증말! 하지만 피터 팬이나 웬디를 입에 올리기엔 그 애들에게 미안하지. 꿈도 의욕도 없이 하루하루 늙어가는 피터 팬이라니.”
그래서인지 희영은 매사에 열정적인 연우를 보고 있으면 은근히 부러웠다. 난 왜 이렇게 겉늙어버린 걸까. 회사와 집. 오직 두 개의 세계를 시계추처럼 오가며, 시계추처럼 반복되는 생활이 지겨워서 어느 날 갑자기 비타민을 응급 처방하듯 공항에 드나들며, 똥 묻은 사과의 발자국을 닦으며…….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희영이 추가근무를 하며 출제를 마무리한 다음 달 문제지의 밑줄 쳐진 지문이 눈에 들어왔다. 눈물이 핑 돌았다. 희영이 좋아하는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 중의 일부였다. 왜? 도대체 왜 이런 시를 보여주고 ‘다음 중 이 시인의 작품이 아닌 것은?’ ‘이 시의 주제는?’ ‘바람벽의 의미로 옳지 않은 것은?’ 따위를 객관식 문항으로 물어야 한단 말인가. 눈물이 핑 돌면 그뿐 아닌가.
사과는 행어 밑에 둔 지오의 배낭에 코를 묻고는 축 늘어져 있다.
그리고 인터넷 동영상엔 취재 기자가 내민 마이크를 입 가까이에 댄 연우의 얼굴이 선명히 클로즈업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