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이상한 언어 능력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 흥미진진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침대 옆에서 할머니가 불어판 책을 읽기 시작하자 갑자기 그 말들이 머릿속에서 환하게 반짝거리기 시작하고 할머니가 읽고 있는 불어 문장이 통째로 머릿속에 글자로 나타나는 거다. 나는 곧 읽은 책 속에 나오는 모든 문장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외출했다가 돌아와 손 씻고 식탁에 앉은 식구처럼 어느 날 아무렇지도 않게 내 안에 살게 된 이상한 능력. 혼돈의 시기가 지나자 더 크고 새로운 능력이 나타나 내 안에서 새로운 두뇌 운행을 시작한 셈이었다.
얼마 후 몸집이 크고 얼굴이 검붉게 탄 마노 아저씨가 병문안을 왔다. 나랑 친했던 스페인 사진작가라는데 나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하바나에 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내 상태가 궁금해 일부러 캐나다에 들렀다고 했다. 챙이 짧은 가죽 모자를 오른손으로 만지며 마노 아저씨가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기에 내가 대뜸 말했다.
“스페인 말로 노래를 불러주세요.”
마노 아저씨의 손에 내가 할머니의 기타를 쥐어주자 그가 노래를 시작했다. 그라시아스 아 라 비다 께 메 아 다도 딴또…. 그런데 나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름다워요.”
노래가 끝나자 연갈색 벨벳소파에서 일어나며 내가 영어로 고마움을 표했다. 아저씨는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금빛 중국 호두 두 알을 내 손바닥에 올려주고 돌아갔다.
그런데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웠는데, 마노 아저씨가 어설프게 기타를 치며 불러준 그 스페인 노래의 가사가 고스란히 떠오르는 거였다. 영화의 자막처럼, 뜻까지 몽땅!
그라시아스 아 라 비다! 정전사고로 내 기억 창고가 한 살배기가 된 대신, 이상한 언어 능력이 생긴 게 틀림없었다. 영어와 불어를 기억하는 거야 정전 사고 전에 쓰던 말이라지만, 스페인어는 배운 적이 없다는데 두 달 정도 스페인어를 공부하자 기본적인 말을 하고 쓸 수 있게 되었다. 문장들이 통째로 머릿속에 떠오르며 힘들이지 않고 뜻이 이해되는 희한한 학습 구조였다. 몇 달 후엔 돈키호테를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었다. 나는 닥치는 대로 여러 나라 말로 된 책들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유달리 이해가 빨리 되는 말들이 있었다. 흠. 이 정도라면 정전사고도 나쁘기만 한 건 아니군. 나는 바스락거리는 그림자처럼 내 뇌리를 스치는 세상의 언어들이 너무 궁금했던 것인데, 궁금증을 풀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건 근사하지 않은가 말이다. 여러 가지 언어로 독서가 가능해지면서 나는 매일매일 너무 행복해서 아침마다 꺄! 꺄! 꺄! 소리를 질러댔다.
아, 젬병인 것에 대해서도 말해둬야겠다. 이런 건 자주 말하기 싫으니까.
독서와 언어학습에 있어서 내 두뇌는 내게 퍽 협조적인데, 수리 능력은 정말이지 형편없다. 심지어 나는 곱셈을 이해하는 데 일 년이 걸렸다. 솔직히 말하면 이해는 했지만 아직도 활용은 자유롭게 안 되는 상태이다. 나는 아직도 덧셈과 뺄셈을 할 때 손가락 발가락을 다 쓴다. 손가락 발가락이 모자라는 건 그래도 괜찮다. 1+1=2라야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1+1=1이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 어딘가에 석기시대 돌망치처럼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다. 정말이지 넘기 힘든 장벽인 셈이다. 물 한 잔을 큰 그릇에 붓고 물 한 잔을 또 그 그릇에 부으면 물 한 그릇이 되지 않는가. 어미 새 두 마리가 한 둥지에서 네 개의 알을 낳는다. 그러면 1+1=4가 되거나 6이 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뭐 이런 질문들이 끊임없이 내 덧셈과 뺄셈을 방해한다. 숫자를 생각하면 아, 정말이지 머릿속이 뒤죽박죽되어 쥐가 날 것 같다. 수리 능력이 이렇게 떨어지는 것도 '정전 사고' 때문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사고가 난 일곱 살 때까지 나는 책을 무지 좋아하는 아이였다고 하지만, 셈하는 걸 좋아했다는 소리는 못 들었으니까.
사람의 언어 못지않게 내가 좋아하는 건 동식물과의 대화다. 나는 나중에 수천 가지가 넘는 사람의 언어를 보존하는 일을 하고 싶고, 동물과 식물의 언어 사전도 만들고 싶다. 사람의 언어는 물론 동물과 식물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 정전사고 때문인지 조안 덕분인지는 꼭 집어 말하기 힘들다. 하지만 가끔 조안이 알아듣지 못하는 동물과 식물의 말들을 내가 먼저 알아들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조안은 내 어깨를 반듯하게 세우고 내 눈을 바라보며 한쪽 가슴에 주먹을 얹은 채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노래해 주곤 했다.
“나무처럼 높이 걸어라. 물처럼 깊이 대화하라. 사랑이 많으면 슬픔이 많다네. 두려워 마라, 대지의 딸아. 큰 슬픔을 통해 기쁨으로 나아가라.”
조안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기쁨과 슬픔이 언제나 한 몸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인생처럼, 그것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다. 그냥 한 몸인 거다. 조안의 노래는 나를 이끌어주는 별처럼 내 가슴속에서 언제나 빛난다. 슬픔이 정말 슬픈 것만이 아니란 걸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된다면 좋을 텐데! 우리는 슬픔을 통해 기쁨으로 나아가는 거라는 걸!
내가 정전사고 때문에 슬픔을 느낀 건 갑작스럽게 내 꿈에 나타난 그 애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일곱 살 이전까지 내 존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거라고 생각되는 그 애에게 이끌려 한국에 와 있다. 이곳에서 나는 예쁜 촛불을 수없이 만나며, 촛불에 담긴 사람들의 희로애락 또한 만나며 어디론가 나아가고 있다. 나는 방금 전까지 촛불집회가 열린 도심에서 누렁소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고 지금은 한 할머니, 몸속에 깜깜하게 정전된 방을 여러 개 가진 할머니가 지금 저 문 안쪽에 있다. 내 친구들과 함께. 이 모든 일들이 우연이 아니다. 열 개 중 최소한 여덟 개는 우연이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조안의 노래는 세상의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내게 알려주었다.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슬픔은 기쁨이 되고 싶은 인생의 선물인 거다.
갑자기 지오 눈앞에 부드럽고 환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빛나는 돌들이 깔려 있는 기다란 한 줄기 길 위에 누군가 서 있었다. 지오는 머리 위로 손을 뻗쳐서 그림자를 붙잡으며 말했다.
“나는 지금 엄마와 같이 있는 거야, 엄마. 엄만 알고 있었지? 이곳에서의 일들이 쉽지만은 않을 거라는 거. 그래도 엄마, 나 잘하고 있지? 잘하고 있는 거지?”
잠결인 듯 아닌 듯 무거운 숨을 몰아쉬면서도 지오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던 것 같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속삭이듯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