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응급실, 그리고 정전사고
B병원 응급실은 북새통이었다.
정신을 잃은 노파를 보고 겁을 먹은 지민은 아까부터 두 손을 깍지 끼고 있었다. 민기가 자판기에서 따뜻한 율무차를 빼와 지오에게 건넸지만, 희미하게 잠깐 웃을 뿐 지오도 이내 말이 없었다. 아무도 노파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없었다. 접수증을 써야 한다는 간호사의 말에 연우가 조심스럽게 노파의 몸을 뒤졌다. 다행히 바지 주머니에서 천으로 만든 똑딱이 지갑과 함께 주민등록증이 나왔다. 김숙자. 1938년 7월 5일생.
“어? 주소지가 아현동이네? 희영 언니네 바로 윗동네야.”
연우가 갸우뚱 턱을 받친 채 응급 시트에 누운 노파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정신을 잃은 것과 잠자는 것은 어떻게 다른 걸까. 칠순 노파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가르마를 타 머리를 빗질해 묶은 노파는 왼쪽 다리를 약간 구부린 채 장작개비같이 사지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한바탕 난리를 치른 지오는 병원 복도 의자에 앉아 쉬고 있었다. 지민과 술래가 먼저 집으로 돌아가고 태연과 민기가 곁에 함께 있었다.
복도 벽에 기댄 채 지오가 눈을 감았다. 일흔 살의 저 할머니가 지금 사실상 열 몇 살짜리 소녀로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다는 걸 지오는 느낄 수 있었다. 도로 위에서 떨고 있는 할머니를 안았을 때 여리고 따뜻한 소녀의 심장을 느꼈던 것처럼. 그리고, 퓨즈가 나간 채 정전된 방들 몇 개가 할머니의 몸속에서 깜빡깜빡 흔들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의 심장에서 전해진 슬픔 때문에 물에서 막 건져내진 것처럼 지오의 몸이 축 늘어지며 힘이 들었다.
사람의 기억은 수수깡처럼 잘 부러지고 아교처럼 잘 들러붙기도 한다. 그러니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신비하기도 한 거겠지. 자는 듯 아닌 듯 눈을 감은 지오의 뇌리에 지난날의 한 풍경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것은 어찌된 건 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일곱 살에 사실상 한 살이 된 자신의 이야기이다.
내 기억의 시작점은 병원 침대다.
“깨어났어요!”
누군가 소리쳤고, 사람들이 달려왔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낙상사고를 당한 나는 일주일 동안 잠만 잤다고 했다. 그리고 태어나서 일곱 살까지의 삶이 깜깜하게 정전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우리 식구들의 존재 정도였다. 할머니, 조안, 엄마가 누구인지는 다 알겠는데, 그 외의 것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데, 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내 눈에 보이는 사물들의 명칭이 잘 생각나지 않았는데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침대라는 이름이 생각나지 않고, 문, 꽃병, 의자, 이런 일반명사가 생각나지 않았다), 할머니가 내 뺨을 부비며 하는 말이 불어라는 것은 알 수가 있었다. 의사와 엄마가 나누는 말이 영어라는 것도 알 수가 있었다. 영어나 불어로 호명할 수 있는 단어들은 기억나지 않거나 기억난대도 뒤죽박죽인데 말이다. 갑자기 내 머릿속 한쪽이 검은 건반이 몽땅 빠져버린 바보 같은 피아노가 되어버렸다.
갑갑한 혼돈 속에 내 발치에 웅크리고 있는 조그만 동물이 보였다.
“밍쯔!”
내가 불렀다. 그냥 그렇게 발음해보고 싶었다. 조그만 그것이 등에 잔뜩 빳빳한 털을 세우고 내 옆으로 기어왔다. 나는 그것이 고슴도치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덥석 그 녀석을 안았다가 꺄,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엄마와 할머니와 조안이 동시에 내게 달려왔다.
그 고슴도치를 왜 내가 ‘밍쯔’라고 불렀는지 나도 모른다. 조안은 밍쯔가 중국어 발음인 것 같다고 했지만, 나는 일곱 살 때까지 중국어를 배운 적이 없다(고 했다).
말들이 맥락 없이 튀어나왔다. 나는 일곱 살 때까지 영어와 불어를 썼다는데, 갑자기 이상한 말들을 한마디씩 툭툭 던지기 시작한 거다. 할머니를 껴안고 불쑥 ‘티 볼리오 베네’ 라고 하기도 하고, 간호사에게 ‘스파씨바!’ 라고 말하기도 했다. 창가에 날아와 예쁘게 우는 노랑 새에게 ‘니니쿠펜다 웨웨!’ 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도 모르는 말들이었다. 나중에 조안은 그동안 우리 집에 놀러온 여행자들이 한마디씩 들려준 나라의 말들이 떠오른 걸 거라고 회상했다.
나의 퇴원 여부를 놓고 엄마와 할머니와 조안이 의논하는 것 같았고, 엄마의 얼굴은 눈에 띄게 수척했다.
“엄마. 왜 그렇게 슬픈 얼굴이야. 난 이렇게 멀쩡한데. 내가 이상한 말을 자꾸 해서 그런 거야?”
더듬거리는 영어로 나는 가만히 중얼거렸다.
집으로 돌아와 한 달이 지나도록 얼크러진 내 기억력은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살던 집, 레인보우 산, 마을, 모든 이름과 기억이 몽땅 가물거렸다. 할머니가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얘길 하자 나는 멍하니 할머니를 바라봤고 ―하이디는 내가 제일 좋아한 동화책 속 인물이었다는데― 소공녀 세라도, 십오 소년 표류기도, 내가 영어와 불어판으로 모두 세 번 이상 읽었다는 그 책들을 나는 기억하지 못했다. 할머니가 말했다.
“그런데도 우리를 기억한다는 게 얼마나 축복이야. 고맙다 우리 강아지, 지오!”
그때 나는 멍하니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지오…?! 그때 깨달았다. 나는 내 이름까지 까먹은 거였다.
몸은 일곱 살인데, 나는 막 태어난 거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할 줄 아는 것도 없었다. 내가 특히 서글펐던 건 일곱 살이 되도록 읽은 책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거였다. 나는 세 살 때부터 책을 읽었다는 데 기억할 수 있는 책이 하나도 없으니 안 읽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할머니, 엄마, 조안이 나를 위로했다. 한 생에 두 번의 탄생을 경험할 수 있다니 정말 멋지다고. 그러나 나는 깡충깡충 뛰고 싶도록 속이 상했다.
“그게 뭔가. 어서 말해 봐. 네가 생각하는 그것을!”
나는 스스로를 채근하며 흐릿하기만 한 사물들의 이름을 붙잡으려고 몸부림쳤다.
할머니에 의하면 네 살 때 나는 조안과 함께 인디언 달력을 그리고 달마다 어울리는 이름을 내식대로 새롭게 붙였다고 했다. 아주 시적인 이름들이어서 할머니는 내가 훌륭한 작가가 될 거라고 장담했다. 여섯 살 때는 오랜만에 엄마와 인근 도시에 나갔다가, 무슨 일인지 화가 잔뜩 나서 "이 돼지새끼 같은 놈" 하고 욕하는 식료품 가게 주인에게 돼지새끼라고 욕하는 게 돼지의 입장에서 얼마나 기분 나쁘겠냐며 다시는 그런 말을 쓰지 말자는 약속을 받아냈다고 한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엄마에게 치근거리는 도시 남자에게 "꺼져 이 부두교야" 라고 소리치고 남자의 무릎을 까버린 일도 있었다고 한다. 남자가 혀를 내두르며 사라진 후에 엄마에게 ‘부두교를 비하하는 것은 종교와 신앙의 자유에 대해 존엄성을 지켜주지 못하는 행위이므로 조심해야 한다’는 반격을 들어야 했지만 엄마는 그날 내내 자랑스럽게 어깨를 으쓱거렸다고 한다.
일곱 살에 이미 이렇게 성숙했던 내가 다시 아기가 되어버린 거다. 그러니 억울할 수밖에. 다 커서 다시 한 살이 되어버린 인생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