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캔들 플라워 - 치자빛
연우와 아이들이 을지로 입구에 도착했다. 롯데백화점 건물이 뒤편으로 보이는 버스정류장 도로 위였다. 직사각형으로 그어진 하늘색 버스 정차선 위에서 “으웡~” 하고 소가 울었다. 여기 서울 도심 한밤중 도로에 소가 나타났다. 6미리 카메라를 들고 다니기 시작하면서 사건 감각이 예민해진 연우의 직감이 ‘사건! 사건!’ 사이렌을 울렸다. 카메라 접안렌즈에 바싹 붙인 연우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뭐야? 웬 소야? 지나가던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고 한마디씩 했다. 소가 불안하게 발굽을 도로 위에 문질렀다. 정차할 장소를 소에게 빼앗긴 버스가 비상등을 켠 채 정차선 후미에 차를 세웠다. 그 뒤로 버스들이 길게 줄지어 서기 시작했다. 뒤에서 빵빵 클랙슨이 요란하게 울렸다. 그때마다 소의 흰 눈자위가 불안하게 번들거렸다.
“아니! 저 할머니!”
뒤이어 탄식이 터져 나왔다. 소 주위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노파를 발견하는데 시간이 걸린 것은 노파의 지나치게 작고 마른 몸피 때문이었을까. 누렁소 옆에 찰싹 붙어 마법에라도 걸린 듯 꼼짝하지 않고 서 있는 한 노파가 있었다. 렌즈에 바싹 눈을 붙인 채 아까부터 노파를 주시하던 연우가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게 만약 촛불과 관계가 있다면….”
흥분하는 바람에 침을 잘못 삼킨 연우가 사래 든 기침을 콜록, 뱉고는 얼른 카메라 렌즈에 다시 눈을 붙였다.
“오늘 밤 좋은 포도주 한 병을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다.”
소의 옆구리에 늘어진 그림자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만큼 깡마른 노파가 자기 덩치의 열배는 됨직한 늙은 누렁소 옆에 오도카니 붙어 서 있었다. 한눈에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고목에 간신히 붙어 있는 바싹 마른 겨우살이처럼, 두 손으로 소고삐를 꼭 쥔 노파가 멍하니 자기 발끝에서 30센티쯤 앞의 도로에 시선을 꽂아두고 있었다. 도로에 방기한 노파의 시선은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은 듯했다.
“한우 농가야?”
“광우병 쇠고기 수입 때문에 항의하러 소까지 데리고 나왔나봐.”
“데모는 저쪽에서 하던데 왜 여기서 저러구 있지?”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소가 발굽을 ‘탁탁’ 소리 나게 도로 위에 찍으며 ‘헉헉’ 거친 숨을 몰았다. 반대편에서 주행하는 자동차 불빛이 도로를 훑을 때마다 소의 흰자위가 희번덕거리며 코뚜레에서 번들거리는 액체가 흘렀다. ‘으웡~’ 소가 또다시 울었다. 자잘한 흰 거품이 침과 뒤섞여 입가로 흘러내렸다.
“뭐야, 미친 소야?”
소가 울 때마다 모여든 인도의 사람들이 움찔거렸다. 소와 노파와 둘러싼 사람들을 한동안 관찰하다 더러는 동행의 어깨를 추스르며 서둘러 길을 재촉하는 이들도 있었다.
“으웡~”
둔탁하게 울리는 종소리처럼 소 울음이 밤하늘로 퍼졌다.
보름을 며칠 지난 치자빛 하현달이 빌딩 숲 위에 떠 있었다.
“정말 미친 소인가봐. 경찰은 뭐하는 거야!”
빌딩숲 사이로 소 울음이 메아리로 쪼개지며 부딪혔다.
어느덧 차량의 정체와 클랙슨 소리가 심해지면서 소의 숨소리도 한층 격렬해졌다. 주먹만 한 눈동자를 굴리며 소가 꼬리를 탁탁 챘다. 흠뻑 젖은 코뚜레가 미끈거리는 액체로 범벅이었다. 소가 움직일 때마다 고삐를 잡은 노파의 상체가 소를 따라 휘청거렸다. 가냘퍼 보였지만 무슨 힘인지 양발은 도로에 딱 붙인 채였다.
“뭐야 저 할머니도 미쳤나봐. 맨발이야.”
커다란 자개 귀고리를 덜렁거리며 딱딱 껌을 씹던 연우 옆의 아가씨가 종알거리며 말을 뱉었다. 연우가 흘깃 여자를 보았다. 동행한 남자의 팔뚝에 매달려 여자도 흘깃 연우를 보았다.
“어…어…으어…!”
그림자처럼 소 옆에 붙어 있던 노파가 뭐라 입을 열었다. 하지만 노파의 말은 노파의 시선처럼 도로 위로 곤두박질쳤다.
“으어…어…어…!”
경찰차 한 대가 도착했다. 그때,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에 노파의 동공이 반응을 보이는가 싶은 순간이었다. 쿵! 쿵! 노파가 주먹 쥔 오른손으로 자기 가슴을 치기 시작했다. 가냘픈 몸피가 퉁퉁 튕겨질듯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보잘 것 없는 몸의 어디에서 저런 공명이 울리나 싶게 노파가 두드리는 가슴팍이 쿵. 쿵. 진동했다.
“어쩔까. 저 할머니!”
아주머니 몇 분이 그제야 탄식하듯 한숨을 쉬며 발을 굴렀다.
할머니가 자기 가슴을 두드릴 때마다 치자빛 소가 으웡으웡 울었다.
경찰이 호루라기를 불며 사람들을 인도 위로 몰았다. 민기, 태연, 술래, 지민이 들고 있는 촛불이 사람들 틈에서 흔들렸다. 사이렌과 호루라기 소리에 코뚜레를 투르르 떨며 소가 심하게 발굽을 굴렀다. 웬만한 장정 몇 배는 될 듯한 소의 기세에 사람들이 우르르 뒤로 물러섰다.
“위험해. 미친 소야!”
누군가 소리쳤다. 소가 투레질을 하며 거품을 물었다. 눈곱 낀 눈자위에선 눈물이 번들거렸다. 소가 움직일 때마다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소 옆구리에 붙어서 있는 노파 또한 흔들거렸다. 클랙슨이 신경질적으로 빵빵 울렸다. 갑자기 소가 반 바퀴쯤 휙 몸을 돌렸다. 노파가 쓰러질듯 소에게 급하게 매달렸다. 건장하게 생긴 경찰 하나가 권총을 차고 장갑을 낀 손바닥을 비비며 도로에 내려섰지만, 구르는 소발굽 소리에 인도로 냉큼 올라섰다. 사이렌 소리를 내며 다른 경찰차 한 대가 도착하는 순간, 소가 목덜미를 떨며 몸을 휙 뒤틀려는 그 순간이었다.
“울지 마.”
검붉은 바람머리의 나비 한 마리처럼 지오가 사뿐, 할머니 앞쪽으로 가 소 옆에 기대어 섰다. 그리고 지오의 조그만 손이 흥분한 소의 목덜미에 얹혔다.
“아냐, 별일 없어. 죽으러 가는 거 아냐.”
지오의 검은 녹색 눈동자가 소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냥, 낯선 거리에 온 거야. 잠깐 구경하고 곧 돌아갈 거야.”
지오가 소의 눈꺼풀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제 얼굴을 소의 목덜미에 댔다. 레인보우 산 밑의 망아지들에게 했던 것처럼. 그러자 헉헉거리던 소의 숨결이 거짓말처럼 금세 잦아들었다.
“으…어… 어….”
노파가 무어라 계속 말을 하고 있었다. 소 옆에 딱 붙어선 채 자기 가슴을 쿵쿵 치는 노파를 향해 지오가 두 팔을 벌렸다. 노파가 가만히 지오를 보았다. 바람결엔 듯, 가슴을 쿵쿵 두드리던 깡마른 노파가 이윽고 조그만 소녀의 품으로 무너졌다. 종잇장처럼 얇은 몸피가 지오에게 안긴 채 “으...어...으어...” 무어라 계속 말을 하며 몸을 떨었다. 지오가 노파를 꼭 안은 채 가만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노파의 바싹 마른 등을 한 팔로 쓸어내리던 지오의 얼굴이 인도에 둘러선 사람들의 얼굴을 차례로 보았다. 그리곤 빨간 불빛이 켜진 연우의 카메라를 향해 입을 열었다.
“미친…, 소라고…, 말하지, 말아 달래요.”
“무슨 소리야?”
멍하게 서있던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미친, 소라고, 더러운, 소라고, 말하지, 말아 달래요.”
지오의 통역이 맘에 들었는지 노파의 입가에 순간, 미소가 번지는 듯했다.
을지로 입구 빌딩들 위에 치자빛 달이 환해진 순간이었다. 아이들이 들고 있는 촛불에 달빛이 닿았다.
연우가 사람들 머리 위 드넓은 공간에 자유롭게 걸려 있는 달을 향해 카메라 렌즈를 치켜드는 찰나, 노파의 두 다리가 휘청, 맥을 놓으며 늘어졌다. 노파를 부축하며 지오가 왼편으로 쓰러지려하자 민기와 태연이 옆 사람에게 촛불을 맡긴 채 달려와 지오를 부축했다.
두 사람의 경찰이 다가왔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병원. 병원으로!” 카메라를 접으며 연우가 아이들에게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