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바유
첫 키스를 하고난 후 꿈속의 그 애에게 ‘바유(vayu)’라고 이름 붙여 주었다. 바유는 내가 좋아하는 힌두의 신들 중 바람의 신이다. 그 애는 따뜻하고 몰캉한 사랑스러운 덩어리로 굴러다니는 바람 같았으니까. 꿈에서 깨면 형체 없이 사라지는데 밤이 되면 바람처럼 내 꿈속으로 스며 들어왔으니까. 나는 최대한 의연하게 그 애의 출현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지만, 때때로 겉잡을 수없이 센티멘털해졌다. 꿈에서 깨면 흩어지는 슬픈 사랑이었으니까.
발가벗은 그 애가 갑자기 내 꿈에 나타난 게 나의 ‘남자 궁금증’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곰곰 생각해 보기도 했다. 남자의 몸이 궁금한 내 무의식이 발가벗은 남자애를 꿈에 나타나게 한 건 아닐까, 하고.
그런데 그 애와의 진짜 섹스를 기대했던 1월 1일 밤이 지난 삼일 후, 그 애가 내 꿈에 나타났던 것보다 더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엄마의 작업실에서, 그 애, 바유의 사진을 본 거다. 비록 사진 한 장이긴 하지만, 현실 속의 사진에서 말이다!
할머니, 엄마, 조안이 모두 나의 상태를 눈치 챘지만, 우리 집의 전통이랄 수 있는 자율적 시간이 내게 주어졌다. 아무도 내게 서둘러 이유를 묻거나 채근하지 않았다. 자신의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물음은 스스로 먼저 충분히 만나야 한다.
나는 ‘정전 사고’가 일어난 일곱 살 이후 처음으로 도서관 가는 것을 게을리 했고, 레인보우 산으로 오랜 산책을 다녔다. 어떤 폭발을 예감한 짐승처럼 집 근처 여기저기를 그냥 쏘다녔다. 그러다 사과나무 밭 가장자리에 있는 창고, 얼마 전 엄마가 사진 작업실로 쓰기 위해 짐을 옮겨놓은 사과 창고에 처음으로 들어가 보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바유의 사진을 본 거다. 오래된 왕골나무 콘솔의 두 번째 서랍 속에서.
거기, 엄마의 낡은 사진파일 속에, 바유가 있었다. 꿈에서 본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내가 있었다. 내 기억에 없는 아주 어린 내가 있었다. 두 살이나 세 살쯤. 정전된 기억 속의 어느 날이겠지.
우리는 햇빛 속에서 발가벗고 물장난을 치고 있었다. 물 양동이 속에서 물방울이 튀어 올라 햇빛에 반짝였다. 내 조그만 두 손이 물방울을 튕기며 그 애의 젖꼭지 근처에서 나비처럼 팔랑거렸다. 조그만 고추가 귀여운 방울꽃처럼 피어있는 그 애는 입을 크게 벌려 해맑게 웃고 있었다. 검은 눈동자가 반짝였다. 마주보고 물장난을 치다가 고개를 돌린 두 아이의 엉덩이 옆에 작은 반점이 똑같이 찍혀 있었다.
“아르테미스의 반달이야. 사냥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수호점이지.”
할머니가 아르테미스의 반달이라고 부르는 내 왼쪽 엉덩이의 반점. 내가 반점을 가지지 않았다면 알아보지 못했을 아주 조그만 얼룩이 그 애의 오른쪽 엉덩이에도 찍혀 있었다. 마치 보름달을 반으로 갈라 나누어 가진 것처럼.
그리고, 사진 속에 들어와 있는 누군가의 손이 있었다. 닮은꼴의 두 아이를 중심에 담은 채 주변이 포커스 아웃된 사진 속에서 그 손은 흐릿하게 뭉개진 채였지만 내가 알고 있는 할머니나 조안의 손도 엄마의 손도 아니었다. 그 손은 바유와 내게 돌고래를 닮은 조그만 목각인형을 내밀고 있었다. 물놀이용 인형 말이다.
뭐야, 이건! 그럼 바유와 내가 정말 쌍둥이였단 말이야? 우리가 엄마 뱃속에서 정말로 함께 있었단 말이야? 간절히 그리워하게 된 남자애와 내가…, 내 첫 키스의 대상이? 그러면… 바유는 어디로 간 거지? 사진 속의 알 수 없는 이 손과 함께 사라진 건가? 아니면 코코나 밍쯔처럼 돌아간 거야? 목재로 된 조립식 사과 창고 속에서 한없이 암벽을 타고 내려가는 것처럼 망망한, 알 수 없는 혼돈이 일었다. 그러고 보니 꿈속에서 우리가 서로 툭탁거리며 종알거린 말이 한국말 같기도 했다.
그 순간 나는 첫 여행지로 한국에 가야겠다는 결정을 했다.
한국에서 뭘 어쩌겠다는 구체적인 목적도 계획도 없었다. 그냥, 한국에 가 봐야 할 것 같았다. 그 땅이 뭔가 준비하고 있다면 내게 보여주겠지.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문학의 소재가 된,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한 이민자들의 방랑을 나는 비로소 아주 조금 이해할 것 같았다. 그건 꼭 혈육 찾기의 목적만은 아닌 거다. 삶의 한 순간, 아주 소소한 어떤 기미가 역시 아주 소소하게 연결된 어떤 땅으로 문득 사람들을 부르는 거다. 인생의 어느 때인가 그런 시점이 분명히 닥치고, 우리는 알 수 없는 기미를 따라가며 방랑하는 거다. 아주 모호한 호기심과 그보다 더 모호한 슬픔과 함께.
바유와 나의 운명이 어디서 어떻게 갈린 것인지, 무엇이 우리를 돌아서게 한 것인지 모르는 일이지만 아무튼 나는 한국을 한번쯤 만나야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이 내게 새로운 아침이 될는지 단지 과거의 저녁이 될는지는 전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한글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배우기 시작했던 내 한국어 실력은 쓸 만했다. 한글 웹에 들어가 웬만한 문장들은 읽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캐나다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이 인터넷에 올리는 각종 정보들과 한국관련 UCC들을 서핑했다. 웬만한 한국말은 자연스럽게 들렸다. “이보게, 지오. 우리는 그대를 사랑한다네” 하며 누군가 한국말로 어른스레 악수를 청해오는 것도 같았다. 나는 한국에 관한 정보들을 본격적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김치를 먹어보고 싶어서 통통배 모양의 시장바구니를 들고 나가는 엄마에게 한국산 김치를 구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첫 여행을 준비하면서 들락거리기 시작한 ‘카우치 서핑’ 홈에서 처음으로 한국인 카우치 서퍼를 찾아보았다. 한국인 카우치 서퍼는 생각보다 많았다. 거기서 희영을 만났다.
아, 비행기 바퀴가 활주로에 닿는다. 한국 땅으로부터 전해져오는 첫 번째 진동이 느껴진다. 몸으로 전해지는 모든 진동은 영혼의 떨림을 동반한다. 이것은 레인보우 엄마가 내게 가르쳐준 가장 큰 비밀 중 하나. 이제 새로운 비밀이 나를 기다리는 새로운 땅에 들어온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