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여자 사람이 되는 길
눈치 챘겠지만, 나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할머니, 엄마, 조안과 함께 있으면 신기한 것들이 무궁무진하고 배울 것이 끊임없이 나타난다. 해바라기 다섯 송이를 닮은 태양광 집열 센터 옆에 있는 우리 마을 도서관은 규모가 작지만 알차다. 마을 도서관을 만든 건 마을 사람들 모두였지만, 초창기 도서관의 도서목록을 직접 짜고 도서구입비를 가장 먼저 기부하고 전세계의 도서들을 공수하는 일을 앞장서 맡은 건 우리 할머니였다고 한다. 할머니는 틀림없이 지난주에 인터넷 신간 리뷰에서 본 불어판 사카구치 안고의 소설집을 서점에 이미 신청해 놓았을 것이다. 내 생각에 사카구치 안고는 할머니 취향은 아니지만 말이다. 내게 최고의 학교는 우리 집과 도서관. 책들과 할머니, 엄마, 조안은 내 최고의 선생님이다. 가끔 인터넷이 훌륭한 보조교사가 되어준다. 매일매일 궁금한 것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것이 즐겁다.
나는 이런 환경에 만족하지만, 단 하나 내 호기심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항목으로 ‘남자’가 있다. 여자들만 살고 있는 우리 집에서 남자 발소리와 남자 목소리가 난다는 것은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없다. 말했듯이 나는 남성적 역할자로서의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관심 없지만, '남자'에겐 아주 관심이 많다. 그러므로 우리 집 바깥세계의 남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한 것은 당연했다. 내 기억으론 내 몸에 대한 자각과 남자의 몸에 대한 호기심이 내 의식에 숨바꼭질하듯 나타난 것은 초경 무렵부터이다.
“첫 꽃이 핀 걸 축하해!”
나는 우리 집 여신들의 시끌벅적한 축하를 받으며 레인보우 엄마에게 첫 월경을 보고했었다. 그날 우린 레인보우의 달 계곡 오두막에서 야영을 하며 밤새 달이 지나가는 길과 별들의 자취를 망원경으로 바라보면서 내 초경을 축하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내 초경 때 먹으려고 엄마와 조안이 담가둔 분홍빛 크랜베리 술을 2년 만에 개봉했고, 달이 머리꼭대기에 왔을 때 할머니가 잔을 높이 들고 달의 눈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지오의 초경을 달과 대지에 고합니다.”
그리고 내 눈을 들여다보며 다시 말했다.
“이 놀라운 우주적 사건을 축하해!”
이어서 한바탕 왁자지껄한 포옹과 뽀뽀세례와 박수가 있었다. 우리는 밤새 별들과 달을 바라보며 계곡의 나무와 동물들의 잠을 방해하지 않게 나직나직 시를 읊고 흰 독수리 모히칸의 뼈로 만든 인디언 휘슬을 불었다. 우리 집 여신들이 워낙, 세상에 사소한 거란 하나도 없다는 듯 거의 모든 사건들에 좀 과하다 싶은 파티 모드로 반응하긴 하지만, 나는 그날 정말이지 어깨가 으쓱했다. 나의 초경은 내가 드디어 성년 여자가 된다는 가슴 떨리는 일이니까.
그런데 차츰 궁금증이 생겼다. 초경을 한 내 버자이너가 보고 싶어진 거다. 그런데 아무리 고개를 수그려봐도 볼 수가 없었다. 정확히 내 몸의 어디에서 피가 나와 붉은 꽃무늬를 찍은 것인지 궁금했지만 어떤 자세를 취해도 볼 수가 없었다. 엄마가 만든 흰색 모슬린 원피스를 입고, 조안이 백리향과 크로커스 꽃으로 만들어 얹어준 화관을 쓰고, 작은 여신처럼 뒤뜰 장미정원을 우아하게 걷다가 나는 말했다.
“내 버자이너가 보고 싶어.”
엄마가 방법을 알려주었다. 엄마는 내 손에 할머니가 아끼는 18세기 베네치아 산 유리공예 거울을 들려주었다. 하늘이 파랬다. 바람이 향기로웠다. 흰 구름이 떠갔다. 나는 우리 식구들이 가끔 둘씩 마주 앉아 수다를 떠는 그네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모슬린 원피스를 들쳐 올렸다. 거울이 반짝였고, 햇빛이 부서지며 내 꽃을 밝혔다.
사실, 그건 그다지 예쁜 꽃이 아니었다. 분홍빛 도톰한 살로 덮인 좀 뭉툭한 꽃. 따뜻한 햇빛을 받은 내 자그마한 버자이너. 살짝 벌려보았지만 그곳의 어디가 내 몸속과 연결된 구멍인지 잘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몸속으로 연결된 구멍을 찾으려고 몇 번이나 손거울의 위치를 바꾸고 고개를 수그려보다가 지쳤다. 몸의 중심이 따뜻해지며 졸음이 몰려왔다. 가든 식탁에는 두꺼운 빵조각을 뜯는 식구들이 햇빛 속에서 빛났고, 나는 살짝 낮잠이 들었다. 유리 손거울을 든 채.
“기대했던 것보다 별로 안 예뻤어.”
내가 식구들 쪽으로 다가가며 나지막이 말하자 엄마와 할머니와 조안이 와그르르 웃었다. “무슨 소리! 세상에서 제일 예쁜 꽃이 막 피었는걸.”
할머니가 무화과 얘길 했다.
“무화과는 속으로 꽃이 핀단다. 그리고 그대로 열매가 되지. 얼마나 달콤하고 향기로운데.” 할머니의 말을 받으며 엄마가 후렴구처럼 리드미컬하게 말했다.
“점점 예뻐지는 꽃이야. 소중하게 다루어야 해”
그날 나는 살짝 우리 집 여신들을 질투했던 것 같다. 그녀들은 다 알고 있는 어떤 비밀을 나만 모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초경을 맞은 모든 과정은 흥미로웠지만,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나는 얼굴도 붉히지 않고 말했다.
“남자애들 것도 보고 싶어.”
깔깔거리던 식구들의 웃음소리가 더 높아졌다.
“지오는 확실히 나를 닮았어.”
할머니가 내 양볼을 감싸 쥐며 유쾌하게 말했다.
“나도 네 나이 때 남자애들 게 정말 보고 싶었거든!”
나는 정말로 남자들을 실컷 보고 싶다. 남자들의 고추만이 아니라, 그들의 걸음걸이, 막 생겨나기 시작한 콧수염, 면도자국, 아담스애플이라 불리는 목젖, 목소리, 체취, 근육 같은 것들. 내 몸과 다르게 생긴 것들이 궁금하다. 도서관의 에릭 아저씨나 중년을 넘어선 마을 아저씨들 말고, 내 또래의, 나랑 비슷하게 성장해 가는 남자 아이들의 몸. 그리고 가능하다면, 골드문트와 나르치스 같은 아름다운 몸매를 가진 청년들의 몸. 대리석 같은 희고 작은 벤치에 앉혀놓고 싶은 돈주앙 같은 매력을 가진 남자들의 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