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미칠 듯이 보고 싶다는 것
12월 마지막 날 아침. 며칠째 계속되는 꿈의 잔영 때문에 참다못한 내가 양말을 신는 것도 잊은 채 레인보우의 달 계곡 아래 오두막으로 달려갔다.
산속은 추웠지만 나는 심장에 불이 붙은 것처럼 뜨거웠다. 내겐 고백이 필요했다. 나는 우리 식구들이 오두막에 가져다놓은 몇 개의 여신상 중 내가 특히 좋아하는 ‘그린 타라’의 왼쪽 발에 한 손을 얹었다. 내 무릎 높이의 타라가 살며시 눈을 감았다. 열린 문으로 따라 들어온 티티가 와서 내 고백을 함께 들었다.
어쩌지? 내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내 몸이 섹스를 경험하고 싶어하는 걸까? 서늘하고 향긋한 얼음냄새를 풍기며 레인보우 엄마는 가만히 미소만 지었다. 티티가 작은 부리로 내 귀밑머리를 만져 주었다.
타라.
이전에도 나는 남자애들을 궁금해 했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구체적인 성적 행위를 나누게 될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 도서관과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런 세상에! 나는 인간의 성적활동에서 명명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행위를 꿈속에서 그 애와 나누고 있는 거였어.
내일이 오면 열다섯 살이 되긴 하지만, 생일을 맞아야 제대로 열다섯 성년이 되는 내가 그렇게 야한 꿈들을 계속 꿔댔다는 거 어떻게 생각해?
알겠어? 그 애가 얼마나 따스하고 달콤했는가를. 입속도, 페니스도, 항문도. 잠에서 깨고 나면 손끝에 여운이 그대로 남아. 침대에서 멍하니 눈을 뜬 채 뒤늦게 얼굴이 달아오르곤 해. 이 꿈들은 도대체 무엇을 내게 말하고 싶은 걸까.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그 애가 미칠 듯이 보고 싶다는 사실이야. 꿈에서만이 아니라 햇빛 환한 아침에도! 아침마다 나는 그 애에 대한 기억에다 나를 집어넣고 침대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된 거야. 나는 아무래도 사랑에 빠진 것 같아.
모든 궁금증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할머니, 엄마, 조안에게조차 꿈 얘기를 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건 이유를 알 수 없는 터부였다.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어떤 광채로 그 애가 내 안에서 빛나고 있었다.
나의 그린 타라.
나도 이제 곧 열다섯 살이니까, 책에서 보면 남자애들은 이 나이 즈음 몽정을 한다고 하던걸. 나도 몽정을 시작한 걸까? 그런데 그 남자애는 아무래도 너무 낯이 익어. 생긴 건 나랑 하나도 안 닮았는데. 어젯밤엔 그 애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를 잘 익은 열매를 따먹는 것처럼 맛봤어. 아주 달콤하고 슬픈 맛이었어. 그런데 말야. 정말로 이상한 건, 입술이 포개지고 내 혀가 그 애의 입속에 전해질 때 어떤 이상한 느낌, 내가 나랑 키스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야. 아, 알 수 없어. 너무 미묘한 느낌이라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도 없어. 키스를 하면서 난 갑자기 너무 그리운 마음이 들어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어. 그 애인지 나인지, 도대체 누굴 그리워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현기증처럼 아무튼 그리움이 쏟아졌어. 키스를 하면서 피를 흘리듯이 계속 눈물을 흘렸어.
내가 한손을 올려놓은 타라의 왼쪽 발등이 따뜻해졌다. 티티가 내 왼쪽 목덜미에 가만히 고개를 기대어 주었다.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 쉬었다.
그리고 1월 1일 밤. 나는 마침내 그 애와 완전한 섹스를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며 잠들었다. 눈이 지붕을 덮고 창문을 덮고 장작더미들과 짚더미들을 덮은 밤에. 눈을 얹은 도서관 지붕과 삼나무 숲을 지나 길게 경사지며 마을 바깥으로 내려가는 오솔길 끝자락까지 내 꿈이 연결될 것 같은 그 밤. 그런데 황금색 달을 삼키고 싶을 만큼 깊은 관계를 원한 그 밤부터 그 애는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노크 없이 갑자기 내 꿈에 나타난 것처럼 훌쩍 내 꿈에서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