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남자애의 고추와 여자애의 유방을 함께 가진 그 애
아, 이게 남자아이의 꽃이로군. 꿈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여기에서 피가 나오는 거야? 내가 꽃이 핀 것처럼? 그런데 웬걸. 부드러운 살로 덮인 조그만 번데기 같은 그것에서 쪼르르 오줌이 나오기 시작하는 거다. 난 그것이 오줌이라는 것도 모르는 것처럼, 그 애가 오줌 누는 것을 제발 멈추지 말았으면 하고 바라며 삼켰던 것 같다. 공중에 붕 뜬 채로 말이다. 처음엔 떨어져서 오줌을 받아먹었는데, 점점 더 내 입술이 페니스 가까이 다가갔다. 칫. 이 꽃도 생각보다 덜 예쁜 걸. 얘도 클수록 점점 예뻐지는 거야? 나는 할머니와 엄마의 말을 떠올리며 중얼거리다가 눈앞의 페니스를 입에 쏙 집어넣었다. 입안이 보드라운 살로 가득 찼다. 그 순간 몸 속 어딘가로 그 애가 나를 안고 가는 것 같았다.
저녁식사를 하며 나는 식구들에게 물었다.
“옹달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셨어.”
“오호! 길몽이다!” 대뜸 나온 조안의 반응이다.
“맛있었어? 꿈은 꿀 때의 기분이 아주 중요하거든.”
“응. 아주 맛있었어. 끝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물론 나는 곧이곧대로 말하고 싶은 마음이 근질거렸지만 꾹 참았다. 도저히 체면이 안서는 일이었으니까)
“호호. 최고다. 우린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데, 또 무슨 좋은 일이 일어나려는 걸까?”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할머니의 자부심이 너무 할머니다워서 나는 꿈일랑 홀랑 까먹고 오늘밤엔 타로파티를 하자고 제안했다.
식사 후 우리는 페루의 빈민촌 맹인 아이들에게 보내줄 동화 녹음을 마저 마친 후 (할머니와 엄마는 스페인어가 익숙하지 않아서 빠졌고, 나와 조안이 녹음했다), 타로 점을 치며 올해 우리 마을에 새로 심은 나무들의 내년 운세를 보았다.
그런데 그날 밤 또 꿈을 꾼 거다.
어젯밤엔 페니스만 보였는데, 이번엔 홀딱 벗은 남자아이가 통째로 나타났다. 그 애가 혼자서 자기 페니스를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다.
“내 꺼야. 만지지마.”
내가 소리쳤다. 남자애가 우두커니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나랑 같이 놀아.”
나는 남자애 뒤편으로 다가가 그 애를 덥석 안았다. 뒤에서 안은 내 두 손바닥이 남자애의 유두에 딱 포개졌다. 선명하고 귀여운 유두였다. 작고 포근한 유방이라고 생각되기도 했다.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앙증맞은 가슴. 따뜻하면서도 어딘지 까칠한, 그런 느낌과 함께 나는 화들짝 깨어났다.
뭐야, 동일한 인물이 계속 꿈에 나오다니! 게다가 남자애의 고추와 여자애의 유방을 함께 가진? 나는 약간 오소소한 기분이 되었지만, 다음날 잠들기 전에 그 애를 또 만날 거라는 은근한 기대감이 들었다. 신선한 겨울밤이 아름다운 멜로디처럼 내 눈꺼풀을 덮었다.
다시 꿈을 꾸었다. 남자애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뿌연 물속에 나는 둥둥 떠 있었다. 주위가 어두컴컴했다. 갑자기 물고기 지느러미가 파동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바로 옆에서 물결이 끼쳐왔다. 아주 작은 누군가 나와 함께 물속에 있었다. 심장 뛰는 소리가 두근두근 들려왔다. 나는 순간, 내가 엄마 뱃속에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점차 시야가 밝아지면서 그 애와 내가 거기 사이좋게 놀고 있는 게 보였다. 발가벗은 그 애가 물속을 헤엄치다 내 어깨와 발을 툭툭 치기도 하고 내가 그 애의 고추를 건들기도 하면서 우리는 놀았다.
“하지 마.”
그 애가 말했다.
“왜? 원래 내건데.”
“세게 건들면 아파.”
“그럴 리가 없어. 여긴 물속인걸.”
“네 것도 아플걸? 해봐.”
“귀여워서 그래.”
종알종알… 키득키득… 기분 좋은 물속에서 그 애랑 서로의 몸을 만지면서 떠들다가 잠에서 깼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그 애의 얼굴을 보려고 했던 것 같다.
머리맡에 엄마가 있었다.
“무슨 꿈을 그렇게 재밌게 꾸는 거야?”
창으로 들어오는 겨울햇살이 눈부셨다.
“오늘은 도서관에서 마을 파티가 있는 날이야. 퀼트 전시회도 시작할 거구.”
엄마가 말했다.
“응. 알고 있어.”
나는 꿈속의 그 애 손에서 눈앞의 엄마 손으로 손을 바꿔 쥐었다.
“어서 일어나렴.”
엄마가 내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엄마, 나, 어떤 남자애랑 엄마 뱃속에 함께 있었어. 꿈에.”
엄마의 눈을 쳐다보며 내가 말했다.
“그래? 별일도 다 있네.”
따뜻한 눈빛으로 엄마가 내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 올려 주었다.
꿈 얘기를 대수로워 하지 않는 엄마가 내 이마에 뽀뽀하고 방을 나서자, 창가에 티티가 와서 창문을 톡톡 두드렸다. 침대에 누운 채 바라본 엄마의 뒷모습이 너무 평온해서 왠지 슬퍼 보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혹시 나 쌍둥이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처음으로 든 날이었다. 12월 24일이었다.
내가 일곱 살이던 크리스마스이브에 '정전 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사고로 일주일간 의식이 없던 내가 다시 깨어났을 때는 1월 1일이었다(고 한다). 내겐 그 희한한 사고 이전의 기억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 사고 당시의 기억도 전혀 없다.
그런데 나랑 아주 친했던 것이 분명해 보이는 그 애가 꿈에 나타난 거다. 처음 보지만 익숙한 느낌이 드는 그 애의 출현으로 '정전 사고' 이후 7년 만에 내 기억의 '정전 상태'에 아주 희미한 스파크가 생겼다.
그 애는 7년 동안이나 어디에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걸까. 꼭꼭 봉인된 비밀편지처럼 내 기억의 캄캄한 우편함에 저장되어 있다가 불쑥 나타난 그 애, 나는 14년간의 그다지 길지 않은 내 인생이 퍽 흥미롭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며, 과거에도 결코 혼자이지 않았다. 앞으로도 결코 혼자이지 않을 것이다. 그 무렵 읽고 있던 산스크리트어 책의 몇 문장이 떠올랐다. 그러엄. 나는 언제든 혼자인 적이 없었다! 비밀과 함께였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