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지오, 열두 살의 자서전
비행기가 크르릉 흔들렸다. 난기류를 통과하고 있으니 좌석 벨트를 매라는 사인과 안내멘트가 나왔다. 나는 막 졸음이 몰려오는 참이었다. 비행기가 몇 번 더 연속적으로 흔들렸다. 창가 쪽 동양계 아저씨의 불안해하는 표정을 보며 만약 이 비행기가 추락하면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갑자기 정신이 말똥해졌다. 모든 여행은 죽음의 가능성을 감수하는 여행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나의 첫 여행이 더 근사해지기 시작한다. 옛 인디언 아이들은 부족의 지혜로운 노인들에게서 삶과 죽음에 대해 동시에 듣고 배웠다. 죽음을 상상하는 순간 세상의 일들은 좀 더 근사해지는 것이다. 그만큼 삶이 빛나기 시작하니까.
나의 한국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그 애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 애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가끔 혼자 중얼거린다. “너는 있니?” 라고. 만약 살아 있다면 한국에 있을 확률이 높지만, 내 예감은 그 애의 죽음 쪽에 더 많이 가 있다. 그만큼 그 애를 실제로 만나는 일은 설레면서도 두려운 일인지 모른다. 그러면서 나는 지금 한국행 비행기에 타고 있는 거다.
내가 체게바라 아저씨한테 홀딱 반해(그는 너무 잘생겼다) 쿠바 혁명과 라틴 아메리카 역사를 공부할 때, 체 아저씨처럼 멋진 사람도 죽는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건 사실이다. 체 아저씨가 죽었다! 그는 자신의 신념대로 멋지게 살다가 죽었으니 세상에 미련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그러면 뭣하나. 별처럼 반짝였다는 웃음을 볼 수도 없고, 전투의 막간을 이용한 휴식시간에 동지들에게 시를 읽어주던 모습도 나는 볼 수 없는데! 체 아저씨, 나빠! 나는 중얼거렸다. 멋진 사람들이 세상에 오래 남아 있어야 세상이 점점 아름다워질 것 아닌가.
그 무렵 일곱 살 때부터 기르던 고슴도치 밍쯔도 죽었다.
일곱 살 때 생긴 '정전 사고' (그 이상한 사고를 나는 그냥 '정전 사고'라고 부른다. 내가 좀 더 크면 다르게 부를 수도 있겠지만) 때, 어찌된 일인지 고슴도치 한 마리가 정신을 잃은 내 풀오버 오른쪽 주머니 속에 들어있었다고 한다. 조안 아줌마 얘기로는 그때 밍쯔는 이미 열 살이나 먹은 고슴도치였다(밍쯔의 얼굴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나는 알 수 없지만, 조안은 조안의 인디언 할아버지에게서 나무는 물론 동물 나이를 알아맞히는 방법도 배웠다고 한다). '정전 사고'에서 깨어난 후 내가 처음 뱉은 말이 주머니 속에서 나와 내 발 밑에 쪼그리고 있는 흰색 고슴도치에게 “밍쯔!”라고 부른 거였다. 처음 본 고슴도치에게 말이다. 그 뒤로 밍쯔는 내가 책상 의자나 안락의자 등 집안 어딘가 앉아 있을 때면 그림자처럼 내 왼발 옆에 붙어 앉아 있곤 했다.
밍쯔를 처음 만난 후로 5년이 흘렀고, 사람 나이로 치면 파파할아버지인 늙은 밍쯔의 죽음은 평화로웠지만, 나는 아주 많이 슬펐다. 세수한 물이 배수관으로 사라져버리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던 어느 날 아침처럼 내가 알던 존재들이 나한테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사라져 가다니.
모든 생명체가 하나도 빠짐없이 죽는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갑자기 허둥거리게 되었다. 엄마가 티벳버섯으로 만들어주는 요구르트를 떠먹을 때에도 언제나 큰 숟가락으로 하나 가득하게 남겨 밍쯔에게 주곤 했는데, 밍쯔는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고 갔다. 나는 센티멘털해졌고(그때가 흔히 말하는 사춘기였는지도 모른다), 웬일인지 이전까진 전혀 관심이 없던 우리 집 ‘남자’들에 대해 적어도 알고는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쩐지 ‘그 남자’들이 분명하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처럼 말이다. 그 길로 곧장 할머니와 엄마에게 ‘나의 역사’를 작성하겠노라고 정식 인터뷰를 요청했다. 열두 살 생일이 막 지난 무렵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것은 밍쯔가 죽은 후의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내가 개발한 새로운 놀이이기도 했다. 나는 마을 도서관의 에릭 아저씨에게서 조그만 녹음기까지 빌려왔다. 놀이란 진지해질수록 재밌으니까.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 할머니와 엄마에게 녹취를 해도 되냐고 정중히 말하고 허락을 받았다. 그해 여름, 나는 석 달 동안 <나의 역사>를 썼다. 내가 쓴 첫 번째 책이다. <나의 역사>를 완성한 날, 조안 아줌마가 두 해 전에 죽은 사슴 코코의 가죽으로 내 노트를 멋지게 장정해 주었다.
코코는 레인보우 서쪽 계곡, 우리 식구가 '달 계곡'이라 부르는 계곡의 구백 년 된 삼나무 아래 선 채로 눈을 감고 죽어있던 사슴이다. 아침 산책을 가던 내가 발견했다. 뒤따라 온 조안이 왼쪽 가슴에 주먹을 댄 채 코코를 향해 묵념을 하고나자 내가 물었었다.
“코코는 왜 저러고 있는 거지?”
“응, 돌아간 거야.”
“가만히 선 채로?”
“위대한 영혼들은 종종 선채로 돌아간단다.”
코코의 자손들은 레인보우 산에서 잘 자라고 있다.
책을 내 보물 상자 속에 소중히 보관하면서 나는 생각했다. 지금 집 앞의 자작나무 나이테만큼 내가 나이를 먹는 어느 여름날이 오면 분명히 <나의 역사>를 꺼내어 다시 읽고 싶어지는 일이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