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남자 아버지가 필요 없다는 생각
“한국에 갈 거야.”
내가 이렇게 말했을 때, 똑같이 복잡한 표정을 짓는 할머니와 엄마를 보며 내 머릿속에 한 문장이 휙 지나갔다. ‘어른들의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군.’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목표를 향해 민첩하게 전진!
나는 엄마와 할머니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아주 크게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재빨리 슬픈 표정을 양념으로 살짝 친 후 말했다.
“설마 그런…, 촌스러운 생각을?”
할머니는 딴 건 몰라도 촌스러운 건 못 참는다. 촌스러운 철학, 미학, 정치 같은 것.
작년에 할머니 고향인 프랑스의 대통령이 된 사르코지 씨를 할머니가 극도로 싫어하는 것도 결론적으로는 그 이유다. 내면화된 인종차별의식을 부추긴다는 둥, 공동체의 도덕적 비전을 통째로 자본 앞에 갖다 바치는 뻔뻔스러운 민영화를 반성 없이 추진한다는 둥, 보통사람들의 삶의 질 개선에 도대체 도움이 안 되는 구태의연한 자본주의 정책들이 다시 쏟아지고 있다는 둥, 그나마 지켜온 프랑스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다는 둥 잔뜩 비판을 늘어놓다가 (할머니가 어떤 사안에 대해 비판하기 시작하면 말의 속도가 굉장히 빨라지고 도저히 할머니라고 부를 수 없는 성깔이 나타난다. 이런 변신이 나는 너무 재밌다) 결론은 이렇게 났다. “저런 걸 정치라구! 아아, 정말 너무 촌스러워서 못 봐주겠어!”
이런 식이다.
‘촌스러운’이라는 내 말에 할머니는 완전히 무장해제되었다. 그러나 엄마는 복잡한 표정을 쉽게 풀지 않았다. 그런 반응을 내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우리 집 여자들과 한국이 모종의 블랙멜로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가지던 밤 엄마와 사랑을 나눈 남자, 엄마를 가지던 밤 할머니와 사랑을 나눈 남자가 하필이면, 모두, 한국인인 거다! 그러니 할머니와 엄마는 지레 찔리는 마음으로 상상했겠지. 아버지 할아버지 얼굴을 못보고 자란 소녀의 운명적인 혈육 찾기! 헤, 정말이지 너무 닭살 돋는 발상 아닌가.
나는 내가 세상에 태어나는 데 씨앗으로 기여한 존재들에 대해, 그러니까, 세상에서 ‘아버지’라고 불리는 존재들에 대해 전혀 관심 없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남자 아버지’가 없었다. 그러니 ‘아버지’라는 게 남자여야 한다는 개념도 없다. 열두 살에 초경을 하고 난 후 아기를 만드는 데 남자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어 잠깐 ‘아버지’에 대한 개념이 혼란스러웠던 적도 있었지만 곧 정리가 되었다. 나를 낳은 사람은 분명 엄마이고, 엄마가 누구와 잠을 자고 나를 낳았는지는 엄마에게 중요한 일일 뿐이다. 그러니 아버지는 엄마의 소관이지 내 소관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라. 엄마와 사랑을 나눈 남자를 내가 그리워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나? 그건 엄마의 선택이고 엄마의 사랑인데.
나는 엄마 뱃속에서 열 달을 있다가 엄마 몸에서 나왔다. 그러니 엄마의 딸인 내게 ‘아버지’란 필연적인 관계라기보다 어떤 ‘사회적 역할’을 지시하는 말에 가깝다. 그래도 씨앗이 있었으니 내가 태어난 거 아니냐고? 이 문제에 대해 아주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우리 집 여기저기에 좋아하는 나팔꽃 씨 열 개를 뿌렸다고 치자. 씨앗을 뿌렸다고 모든 씨앗이 싹이 트고 열매가 자라는 건 아니지 않은가. 대지가 씨앗을 품고 피와 살을 줘야 싹이 트는 거지 씨앗 자체는 말 그대로 그냥 씨앗일 뿐이다. 싹이 틀 수도 있고 안 틀 수도 있는.
그런데도 아버지라는 역할을 할 사람이 굳이 필요하다면, 일반적으로 남자 아버지들이 하는 일들을 남자보다 훨씬 잘, 그것도 훨씬 예술적으로 해내는 조안 아줌마가 있다. 자랑 같지만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엄마의 애인인 조안은 진짜 최고다. 나는 조안에게서 별을 읽고 날씨를 예측하고 숭어를 잡고 사슴이 다니는 길을 찾아내는 법을 배웠다. 레인보우에 가득한 약초의 이름을 배우고, 영양이 많은 퇴비 만드는 법, 토마토와 상추를 병 없이 키우는 법, 요트 고치는 법, 항해술도 배웠다. 우리가 벌이는 놀이들은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도대체 내가 다른 아버지를 꿈꿀 이유와 틈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나는 지금 우리 식구로 정말이지 충분하다. 그런데 늘 홀라당 깨는 생각과 엉뚱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할머니와 엄마가 내 한국행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건 퍽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칫, 설마 내가 그렇게 남자 아버지가 필요할 정도로 촌스러울라고!
내겐 나만의 다른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