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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비의 타임캡슐 단편은 독자들이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읽고 즐기고 기억할만한 명작 단편소설들을 찾아내는 꼭지입니다. 첫 번째로 소개되는 작품은 '20세기의 체홉'으로 불리는 미국 작가 존 치버의 단편 「헤엄치는 사람」(The Swimmer)입니다. 치버의 단편들 중에서 「교외의 남편」과「5시 48분」도 이 꼭지에 계속 소개될 예정입니다. 나비의 독자들도 여기 올릴만한 국내외 작품들을 추천해주십시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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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엄치는 사람
존 치버
모두들 둘러앉아서 “어젯밤에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셨어”라는 말을 하는, 그런 한여름의 일요일 중 하루였다. 여러분은 그런 소리를 교회에서 나가는 교구민들의 속삭임이나 제의 보관실에서 통상복으로 갈아입으려고 씨름을 하는 성직자의 입에서도 들어보았을 것이고, 또 골프장과 테니스코트에서도, 끔찍한 숙취로 고생하는 오듀본 그룹*의 리더가 야생조류 보호구역에서 하는 말도 들어보았을 것이다. “어젯밤에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셨어.” 도널드 웨스터헤이지가 구시렁거렸다. “우리 모두 술을 너무 많이 마셨어.” 루신다 메릴이 맞장구를 쳤다. “틀림없이 와인 때문이었을 거야.” 헬렌 웨스터헤이지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 프랑스 산 레드와인을 너무 많이 마셨어.”
그곳은 웨스터헤이지의 집 수영장 가장자리였다. 수맥까지 파내려간 우물에서 철분이 잔뜩 든 물을 공급받는 그 수영장의 물빛은 엷은 초록기를 띠고 있었다. 날씨는 좋았지만 서쪽에 거대한 적운(積雲)이 솟아 있었고 멀리서-다가오는 배의 앞머리에서-보면 꼭 도시처럼 보여서 거기에다 이름을 갖다 붙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리스본. 하켄색*. 햇살이 뜨거웠다. 네디 메릴은 한 손은 물에 담그고 다른 손에는 진이 담긴 술잔을 들고서 그 초록기가 도는 물 옆에 앉아 있었다. 그는 날씬했고-그에게는 젊은이의 특별한 날씬함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젊음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날 아침에도 계단 난간을 타고 내려와 식당에서 풍기는 커피 냄새를 따라 가볍게 뛰어가다가 복도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청동 아프로디테 상의 궁둥이에다 입을 쪽 맞추었다. 그의 모습은 여름날, 특히 오후의 마지막 몇 시간에 비유될 수 있을 만했고 비록 그에게 테니스 라켓이나 항해 가방은 없었지만 그에게서 풍기는 인상은 분명히 젊음과 스포츠, 그리고 온화한 날씨를 연상시켰다. 방금 전까지 수영을 한 그는 이제 코에서 바람 소리가 나도록 숨을 깊이 들이쉬고 있었다. 마치 자기의 허파 속으로 그 순간의 구성 요소들, 태양의 열기와 자신의 강렬한 기쁨을 빨아들일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 모든 것이 그의 가슴속으로 흘러드는 것 같아 보였다. 그의 집은 남쪽으로 팔 마일 떨어진 불릿파크에 있었는데, 거기에서는 그의 예쁜 네 딸들이 점심을 먹고 나서 테니스를 치고 있을 것이었다. 잠시 후 그에게 남서쪽으로 급커브를 돌면 물길을 따라 집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의 삶은 구속받고 있지 않았기에 그가 그 관찰에서 얻은 즐거움이 탈출이라는 생각으로 설명될 수는 없었다. 그는 지도 제작자의 눈으로 군을 가로질러 굽이진, 지하의 흐름에 준하는 수영장들의 물줄기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하나의 발견을 이루어내서 현대 지리학에 공헌하고 그 물줄기에 자기 아내의 이름을 따서 루신다라고 짓고 싶었다. 실제로 그는 재담가도 아니고 바보도 아니었지만 독창적인 사람인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또 속으로 은근히 자신을 전설적인 인물로도 생각했다. 날은 아름다웠고, 그의 생각으로는 오래 수영을 하면 그 아름다움이 더 자라고 커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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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듀본 그룹: 미국의 저명한 조류학자이자 화가였던 존 듀본의 이름을 딴 단체.
* 하켄색: 뉴저지 주에 있는 소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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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존 치버 (John Cheever)
20세기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 1912년 매사추세츠 주 퀸시에서 태어났다. 열일곱 살 때 세이어 아카데미에서 제적당한 경험을 소재로 한 단편 「추방」을 발표하면서 데뷔했다. 다양한 잡지에 작품을 발표했으며, 영화 시나리오 작가 및 대학 방문교수 등으로도 활동했다. 교외에 사는 저소득층과 자신의 경험을 녹여낸 첫 작품집 『어떤 사람들이 사는 법』을 필두로 『기괴한 라디오』, 『돼지가 우물에 빠졌던 날』, 『사랑의 기하학』, 『그게 누구였는지만 말해봐』, 『여단장과 골프 과부』 등 여러 작품집을 출간했다. 후기로 접어들면서부터는 장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첫 장편 『왑샷 가문 연대기』로 전미 도서상을 받았고, 속편 『왑샷 가문 몰락기』로 대중적 인기를 구가하며 윌리엄 딘 하우얼스 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현대인의 소리 없는 절망과 복잡한 삶의 양상을 그려낸 『불릿파크』, 『팔코너』, 『얼마나 천국 같은가』 등의 뛰어난 장편을 발표하였으며, 특히 『팔코너』는 타임스 선정 영문학 100대 작품에 선정되기도 했다. 1978년 『존 치버 단편선집』으로 퓰리처상과 전미 비평가협회상, 전미 도서상을 받았고, 1982년 4월 암으로 사망하기 6주 전 미국 예술아카데미로부터 문학부문 국민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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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황보석
불문학을 전공한 역자는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사랑의 기하학』, 『기괴한 라디오』, 『작은 것들의 신』, 『불릿파크』,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 『성스러운 여행 순례 이야기』, 『공중곡예사』, 『달의 궁전』, 『뉴욕 3부작』, 『기록실로의 여행』, 『셀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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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어깨에 걸치고 있던 스웨터를 벗고 물로 뛰어들었다. 그는 수영장으로 뛰어들지 않는 남자들에 대해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경멸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물을 튀기며 평영으로 헤엄을 치면서 그는 물장구를 한 번, 또는 네 번 칠 때마다 한 번씩 숨을 쉬었고 마음 깊은 곳 어디에선가 하나 둘, 하나 둘 하며 물장구치는 수를 세었다. 그것은 먼 거리를 헤엄치기에는 별로 좋은 영법이 아니었지만 수영이라는 영역에서는 그 스포츠에 어떤 관례 같은 것들을 지워놓았고, 그가 사는 곳에서는 평영이 관례적인 것이었다. 초록기가 도는 물에 둘러싸여 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상태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덜 유쾌한 것 같았고 마음 같아서는 수영 팬츠 없이 알몸으로 헤엄을 치고 싶었지만 그의 계획을 고려한다면 그것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반대편 쪽 가장자리에서 몸을 들어올리고-그는 절대로 수영장 사다리를 이용하지 않았다-잔디밭을 가로질렀다. 루신다가 어디 가냐고 묻자 그는 헤엄을 쳐서 집으로 간다고 대답했다.
그가 참조해야 할 지도와 수로도는 기억하거나 상상한 것뿐이었지만 그렇더라도 아주 정확했다. 그 경로에는 우선 그레이엄 부부, 해머 부부, 리어 부부, 하울랜드 부부, 그리고 크로스컵 부부의 수영장이 있었다. 그는 디트마 거리를 건너 벙커 부부의 수영장으로 들어갔다 나와서 짧은 연수육로*를 지난 다음 레비 부부, 웰처 부부, 그리고 랭커스터 공공 수영장을 건널 셈이었다. 그다음에는 핼러런 부부, 삭스 부부, 비스왱거 부부, 셜리 애덤스, 길마틴 부부, 클라이드 부부의 수영장이 있었다. 날씨가 아주 좋았고, 그는 물이 그처럼 풍부하게, 자비롭고 은혜롭게까지 보일 정도로 공급되는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벅차 오른 가슴으로 그는 풀밭을 가로질러 달렸다. 남다른 경로를 따라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자신에게 순례자, 탐험가, 운명적인 남자라는 느낌을 안겨주었다. 그는 또 자기가 그렇게 가는 동안 내내 친구들을 보게 되리라는 것, 친구들이 루신다 강 제방에 늘어서 있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웨스터헤이지 부부의 소유지와 그레이엄 부부의 소유지를 가르는 산울타리를 지나 꽃이 피어 있는 몇 그루의 사과나무들 밑으로 걸어서 그 집들에 딸린 펌프와 여과기를 설치해둔 헛간을 지나 그레이엄 부부의 수영장으로 나왔다. “아니, 네디.” 그레이엄 부인이 반겼다. “이건 정말 놀랄 일이네요. 나는 오전 내내 댁하고 통화를 하려고 했는데 말예요. 마실 걸 한 잔 가져다줄게요.” 그는 여느 탐험가와 마찬가지로, 만일 자기가 목적지에 닿으려면 후한 대접을 하는 원주민들의 풍습과 전통을 요령 있게 받아넘겨야 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레이엄 부부를 어리둥절하게 하거나 그들에게 무례해 보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거기에서 꾸물거릴 시간도 없어서였다. 그는 그들 부부의 수영장을 건넌 다음 양지쪽에서 그들과 합류했다가, 몇 분 뒤 차 두 대에 가득 타고 코네티컷에서부터 그 집을 찾아온 친구들 덕분에 구제를 받았다. 그들이 떠들썩하게 서로를 반기는 동안 슬며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레이엄 부부의 집 앞 쪽으로 내려가 가시나무 산울타리를 뛰어넘고 공터를 가로질러 해머 부부의 집으로 건너갔다. 해머 부인은 장미를 손질하다가 고개를 들고 그가 헤엄쳐 지나가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그게 누구인지 분명하게 알아보지는 못했다.
리어 부부는 그들의 집 거실 창문 너머로 그가 물을 튀기는 소리를 들었다. 하울랜드 부부와 크로스컵 부부는 집에 없었다. 하울랜드 부부의 집을 지나 디트마 거리를 건너 벙커 부부의 집 쪽으로 가려는데, 한참이나 떨어진 거리인데도 파티가 벌어지고 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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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수육로(連水陸路): 두 수로를 잇는 육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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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사람들의 목소리와 웃음소리를 굴절시켜 허공에 띄워놓은 것 같았다. 벙커 부부의 수영장은 조금 높은 곳에 있어서 그는 계단을 몇 층 올라가 테라스로 갔는데, 거기에서는 스물다섯 명에서 서른 명쯤 되는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물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고무보트를 타고 떠 있는 러스티 타워스뿐이었다. 아, 루신다 강의 제방들은 얼마나 아름답고 싱그러웠던가! 부유한 남자와 여자들이 사파이어 빛깔의 물가에 모여 있었고, 출장 요리 회사의 직원들이 하얀 코트 차림으로 차가운 진을 돌리고 있었다. 머리 위에서는 빨간색 드 하빌랜드 연습기가 그네를 타면서 좋아하는 아이처럼 하늘을 계속 맴돌며 원을 그리고 있었다. 네드는 그 장면과 모여 있는 사람들에 대해, 마치 손을 뻗쳐 만져볼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얼핏 스쳐 지나가는 애정을 느꼈다. 멀리서 천둥소리가 들렸다. 에니드 벙커 부인이 그를 보자마자 외쳐댔다. “오, 여기에 누가 와 있는지 좀 봐요! 이건 정말 놀랄 일이네요! 루신다가 댁이 올 수 없을 거라고 했을 때 난 실망해 죽는 줄 알았다고요.” 그녀가 사람들을 헤치고 그에게로 다가와 키스를 한 다음 그를 바 쪽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지나는 길에 십여 명의 여자들과 키스를 하고 같은 수의 남자들과 악수를 하는 바람에 바까지 가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다. 그가 이런저런 파티에서 백 번은 보았을 바텐더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진 토닉을 한 잔 내주었고, 그는 자신의 여행을 지연시킬 어떤 대화에도 말려들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잠시 바 옆에 서 있었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려는 것 같자 그는 물속으로 뛰어들었고 러스티의 고무보트와 부딪치지 않도록 가장자리 쪽으로 헤엄을 쳤다. 수영장 반대편에 이르자 그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으로 톰린슨 부부를 따돌리고 정원 사이로 난 길을 천천히 달려 올라갔다. 자갈들이 발바닥을 파고들었지만 많이 아프지는 않고 조금 불편할 정도였다. 파티는 수영장 가장자리에서 열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집 쪽으로 올라가자 물가에서 들리는 밝은 목소리들은 점점 더 멀어졌고, 벙커 부부네 에서는 누군가가 야구 중계방송을 듣는지 라디오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일요일 오후였다. 그는 세워져 있는 차들 사이를 지나 차도 가장자리의 풀밭을 따라 내려와서 에일와이브스 로로 들어섰다. 길거리에서 수영 팬츠만 입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았으면 싶었는데 다행히도 지나가는 차가 한 대도 없어서 그는 바로 ‘사유지’라는 팻말이 세워지고 <뉴욕타임스>를 선전하는 초록색 튜브가 걸려 있는 레비 부부네 집 앞 차도로 건너갔다. 그 커다란 집의 문과 창문들은 모두 열려 있었지만 인기척은커녕 개 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집을 옆으로 돌아 수영장으로 내려갔다가 그는 레비 부부가 방금 전까지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가장 구석진 곳, 그러니까 일본식 등이 걸려 있는 탈의장 아니면 전망대에 놓인 테이블에 유리잔들과 술병들 그리고 안주 접시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수영장을 건넌 다음 그는 유리잔에 술을 한 잔 따라 마셨다. 그 술은 네번째 아니면 다섯번째 잔이었고, 그가 루신다 강을 헤엄쳐 온 거리는 전체의 절반 가까이 되었다. 피곤하기는 했어도 깨끗해진 기분을 느끼면서 그는 자기가 그 순간 그렇게 혼자라는 것이, 그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폭풍우가 몰아칠 것 같았다. 비구름-그 도시-이 시커멓게 높이 솟아 있었고 거기에 앉아 있는 동안 그는 다시 천둥소리를 들었다. 드 하빌랜드 연습기는 아직도 머리 위를 맴돌고 있었는데 네드에게는 비행기 조종사가 그날 오후에 즐거워서 웃는 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았지만 천둥이 또다시 울리자 집을 향해 가기로 했다. 기적 소리가 들렸고, 그는 시간이 어느 정도나 되었을지 궁금해졌다. 네시? 다섯시? 그는 그 시간 무렵의 시골 역을 생각해보았다. 거기에서는 턱시도를 레인코트로 가린 웨이터와 신문지로 싼 꽃을 든 난쟁이와 울고 있던 여인이 기차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날이 갑작스럽게 어두워지고 있었다. 멍청한 새들이 폭풍우가 다가온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 노랫소리가 약간은 날카로운 지저귐으로 바뀐 것처럼 들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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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어느 떡갈나무 꼭대기에서 마치 거기에 있는 물꼭지가 돌려지기라도 한 것처럼 물이 분출하는 소리가 그의 등 뒤에서 들려왔고, 그다음에는 모든 나무들의 꼭대기에서 그 분수 소리가 들려왔다. 어째서 그는 폭풍우를 좋아했고, 문이 왈칵 열리고 비바람이 계단으로 사납게 몰아쳐 들어올 때 그가 느낀 흥분은 무슨 의미였을까? 또 오래된 집의 창문들을 닫는 그 간단한 일이 적절하고도 긴급한 일로 보인 것은 어째서였고, 폭풍우가 몰려올 듯한 첫번째 조짐이 그에게는 좋은 소식, 환호, 기쁜 일들을 전하는 틀림없는 소리로 여겨진 것은 또 어째서였을까? 다음에는 요란한 뇌성벽력과 함께 무연화약 냄새가 풍기는가 싶더니 세찬 빗줄기가 레비 부인이 두 해 전인가 세 해 전에 교토에서 사온 등을 강타했다.
폭풍우가 지나갈 때까지 그는 레비 부부의 전망대에서 비를 그었다. 비 때문에 날씨가 서늘해져서 몸이 떨렸다. 강한 바람이 단풍나무에서 빨갛고 노란 잎사귀들을 벗겨내어 풀밭과 물 위로 흩뿌렸다. 아직 한여름이었으므로 그 나무는 잎마름병에 걸린 것이 틀림없었지만 그 가을의 조짐에 묘한 서글픔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는 어깨를 웅크리고 잔을 비운 다음 웰처 부부의 수영장 쪽으로 걸어갔다. 그것은 린들리 부부의 승마장을 가로질러야 한다는 뜻이었는데 그는 승마장이 웃자란 풀들로 뒤덮여 있고 장애물들이 모두 치워진 것을 보고 놀랐다. 린들리 부부가 말들을 팔아버렸거나 여름 동안 다른 곳으로 떠나면서 그 말들을 실어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린들리 부부와 그들의 말들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도 했지만 그 기억이 제대로 된 것인지 아닌지는 분명치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맨발로 젖은 풀밭을 헤치고 웰처 부부의 수영장으로 갔다가 거기에는 물이 채워져 있지 않은 것을 알았다.
물의 고리가 끊긴 것이 터무니없이 실망스러워서 그는 마치 자신이 용솟음치는 원류를 찾아 나섰다가 말라붙은 개울을 보게 된 탐험가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실망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여름 동안 다른 곳으로 떠나 있는 것은 흔한 일이었지만 이때껏 누구도 수영장의 물을 뺀 적은 없었다. 웰처 부부는 아주 떠나버린 모양이었다. 수영장에 딸린 가구들은 접힌 채 쌓여 방수천으로 덮여 있었고 탈의장 문은 잠겨 있었다. 또 그 집의 창문들도 모두 닫혀 있었는데 그는 집을 돌아 앞쪽 진입로로 들어섰다가 한 나무에 ‘매물’이란 팻말이 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그가 웰처 부부의 소식을 마지막으로 들었던 것이 언제였더라? 그와 루신다가 그들의 저녁 식사 초대를 거절했던 그때였나? 그 일은 불과 일주일 전쯤 있었던 것 같았다. 그의 기억이 쇠퇴해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가 유쾌하지 못한 사실들을 억압하는 데 너무 길이 들어서 진실에 대한 감각이 손상된 것이었을까? 어딘가 멀리서 테니스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다시 기분이 풀린 그는 근심 걱정을 모두 털어버리고 잔뜩 흐린 하늘과 쌀쌀한 날씨를 태평하게 바라보았다. 그날은 네디 메릴이 그 지방을 헤엄쳐서 가로지르는 날이었다. 바로 그날이었다! 그는 곧 가장 건너기 어려운 연수육로 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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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어느 일요일 오후에 차를 몰고 나간 일이 있다면, 424번가에서 길을 건널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며 거의 벌거벗은 채 길어깨에 서 있는 그를 보기도 했을 것이다. 또 어쩌면 그가 어떤 범죄의 희생물이라든가, 그의 차가 망가졌다든가, 또는 단순히 그가 바보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고. 길로 내던져진 쓰레기를-맥주 캔들, 넝마 쪼가리들, 못 쓰게 된 부스러기들-사이에서 온갖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된 채 맨발로 서 있는 그의 모습은 불쌍해 보였다. 그는 처음에 출발했을 때부터 그것이 자신의 여행 가운데 일부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그의 지도에도 나와 있었지만-줄줄이 지나가는 차들에 맞닥뜨려 한여름 햇살 속에서 꿈틀꿈틀 나아가는 상황에 대해서는 미처 준비를 하지 못했다. 그는 비웃음과 놀림을 받았고 누군가가 맥주 캔을 던지기도 했지만 그에게는 그 상황을 멈추게 할 위엄도 유머도 없었다. 그러려고만 한다면 루신다가 여전히 양지쪽에 앉아 있을 웨스터헤이지 부부의 수영장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었다. 그는 누구에게도,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 그 어떤 맹세도 서약도 하지 않았다. 어째서 그는, 무릇 사람들의 고집스러움이란 상식의 영향을 받기 쉽다고 믿으면서도, 돌아갈 수가 없었을까? 어째서 그는, 그 일이 자신의 목숨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여행을 끝마치기로 마음먹었을까? 그 장난, 그 농담, 이 야단스러운 놀이가 어느 대목에서 진지해진 것이었을까? 그는 돌아갈 수 없었고 웨스터헤이지 부부 집 수영장의 초록기가 도는 물이며, 그날의 구성 요소들을 들이마시고 있다는 느낌,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며 주고받는 다정하고 태평한 목소리들조차도 제대로 기억할 수 없었다. 한 시간쯤 되는 동안에 그는 돌아간다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의 거리를 지나와 있었다.
한 노인이 시속 십오 마일 정도의 속도로 차를 몰아오면서 그에게 잔디 중앙분리대가 있는 길 한복판까지 갈 틈을 주었다. 거기에서 그는 북쪽으로 향하는 차들의 비웃음에 노출되어 있었지만 십 분이나 십오 분쯤 뒤에는 길을 건널 수 있었다. 거기에서부터 랭커스터 마을 가장자리의 레크리에이션 센터까지는 조금만 걸으면 되었고, 거기에는 몇 군데의 핸드볼 경기장과 초등학교가 한 곳 있었다.
거기에서도, 벙커 부부의 수영장에서 그랬던 것 같은, 물 위로 떠오른 목소리들이 아주 밝고 허공에 걸려 있는 것 같은 환청을 들었지만 소리가 더 요란하고 더 거칠고 더 날카로웠다. 그가 사람들로 붐비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표지판이 앞을 가로막았다. “모든 수영자들은 수영장을 이용하기 전에 반드시 먼저 샤워를 할 것. 모든 수영자들은 반드시 발 씻는 곳을 이용할 것. 모든 수영자들은 반드시 인식표를 착용할 것.” 그는 샤워를 한 다음 혼탁하고 쓴 냄새가 풍기는 용액에 발을 씻고 나서 수영장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그 수영장에서는 염소(鹽素) 냄새가 풍겼고 그가 보기에는 꼭 더러운 물웅덩이 같았다. 두 군데의 망루에 올라앉은 두 명의 감시원이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호루라기를 불어대면서 확성기를 통해 수영객들에게 막말을 하고 있었다. 벙커 부부네 수영장의 사파이어 물빛을 간절히 떠올린 네디는 그 지저분한 물에서 헤엄을 치면 자신이 오염될 수도 있겠다는-자기의 건강과 매력을 망칠 수도 있겠다는-생각을 했지만 곧 속으로 자기는 탐험가, 순례자이며 그 물은 단지 루신다 강의 괴어 있는 물굽이일 뿐이라고 마음을 돌렸다. 그는 얼굴을 찌푸린 채 염소 냄새가 나는 물로 뛰어들었고, 다른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 머리를 물 위로 내놓고 헤엄쳤지만 그럼에도 여기저기서 부딪치고 튀겨진 물세례를 받으며 떠밀렸다. 그가 얕은 물 쪽에 이르자 두 감시원이 그에게 대고 외쳐댔다. “어이, 거기 당신, 인식표 없는 사람, 물에서 나가.” 그는 물에서 나왔지만 감시원들이 그를 뒤쫓아 올 도리는 없었고 그는 선탠오일과 염소 악취가 풍기는 곳을 지나 허리케인 펜스* 밖으로 나와서 핸드볼 경기장을 지났다. 그리고 길을 건너 핼러런 소유지의 나무가 우거진 구역으로 들어섰다. 나무들을 베지 않아서 발을 디디기가 위험하고 어려웠지만 마침내 그는 수영장을 둘러싸고 있는 잔디밭과 물에 잠긴 너도밤나무 산울타리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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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리케인 펜스: 허리케인에 견디도록 튼튼하게 만들어진 울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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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러런 부부는 근친이자 공산주의자들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나이 지긋하고 엄청나게 부유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열성적인 개혁론자들이었지만 공산주의자는 아니었는데, 때때로 전복을 꾀한다는 비난을 받더라도 그런 비난이 오히려 그들을 만족케 하고 격려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너도밤나무 산울타리는 잎이 노란색이어서 그는 그 나무들도 레비의 단풍나무들처럼 잎마름병에 걸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핼러런 부부에게 자기가 다가가고 있음을 알리고 그들의 사유지로 침입한 것을 변명하려고 그는 계속 여보세요, 여보세요 하고 불렀다. 핼러런 부부는 그에게 한 번도 설명한 적이 없는 어떤 이유로 수영복을 입지 않았다. 사실 그 어떤 이유도 합당하지는 않을 터였다. 그들이 벌거숭이인 것은 개혁을 위한 타협 없는 열정 가운데 한 가지 세칙이었고, 그는 산울타리 안쪽의 공터를 가로지르기 전에 공손히 수영 팬츠를 벗어 내렸다.
뚱뚱한 몸집에 백발인 핼러런 부인은 평온한 표정으로 <타임스> 지를 읽고 있었고, 핼러런 씨는 뜰채로 물에서 너도밤나무 잎사귀들을 걷어내고 있었다. 그 둘 모두 그를 보고 놀라거나 불쾌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들의 수영장은 군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자연석을 쌓아 사각형으로 만들어졌고 물은 개울에서 끌어왔는데, 여과기도 펌프도 없어서 물빛은 개울물 그대로 누런 빛깔이었다.
“저는 헤엄쳐서 군을 가로지르는 중입니다.” 네드가 말했다.
“어머, 나는 누가 그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요.” 핼러런 부인이 감탄했다.
“저는 웨스터헤이지 부부의 수영장에서부터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네드가 말을 받았다.
“여기서부터 사 마일은 되겠지요.”
그는 수영 팬츠를 구석진 곳에 놓아두고 얕은 쪽 끝으로 걸어가서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그가 물에서 나오자 핼러런 부인이 말을 건네는 소리가 들렸다. “댁이 당한 불행에 대해서 얘기를 듣고 우린 정말 안타까웠다우, 네디.”
“제 불행요?” 네드가 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는데요.”
“아니 왜, 우리가 듣기로는 댁이 집을 팔았고 그 가엾은 아이들은……”
“저는 집을 판 기억이 없는데요.” 네드가 말을 고쳤다. “그리고 딸아이들은 지금 집에 있고요.”
“그렇군요.” 핼러런 부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군요……”
그녀의 목소리에 때 아닌 우울한 기미가 잔뜩 배어 있어서 네드는 일부러 쾌활하게 말을 받았다. “수영을 하도록 허락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무튼, 좋은 여행 하세요.” 핼러런 부인이 말했다. 산울타리 너머에서 그는 수영 팬츠를 입고 끌어올려 조였다. 그 팬티가 헐렁해서 자기가 오후 동안에 체중이 좀 빠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춥고 피곤한 데다 벌거벗은 핼러런 부부와 그들의 탁한 물 때문에 기분도 축 처져 있었다. 그 수영은 그의 힘에 너무 부치는 일이었지만 그가 아침에 난간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와 웨스터헤이지 부부의 집 양지쪽에 앉아 있었을 때 어떻게 그것을 짐작할 수 있었을까? 그는 팔이 뻐근했고 다리는 뻣뻣했고 관절들이 아팠다. 가장 고약한 것은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들어 다시는 몸을 덥힐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그의 주위로 나뭇잎들이 떨어지고 있었고 바람결에 나무 타는 냄새가 실려 왔다. 연중 이맘때에 누가 나무를 태우고 있는 것일까?
그는 술 한 잔이 필요했다. 위스키를 마시고 나면 몸도 덥혀지고 기운도 돋아서 그가 남은 여행을 다 끝낼 수 있도록, 헤엄을 쳐서 군을 가로지르는 그 일이 독창적이고 용감한 일이라는 느낌을 되살려줄 것 같았다. 해협을 건너는 수영 선수들도 브랜디를 마신다. 그에게는 어떤 자극이 필요했다. 그는 핼러런 부부의 집 앞으로 펼쳐진 잔디밭을 가로지른 다음 짧은 오솔길을 따라 그들이 외동딸 헬렌과 사위인 에릭 삭스에게 지어준 집으로 내려갔다. 삭스 부부의 수영장은 작았고 그는 헬렌과 에릭이 거기에 있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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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네디.” 헬렌이 말을 건넸다. “우리 어머니 집에서 점심 식사 했어요?”
“그건 아니고,” 네디가 대답했다. “난 당신 부모님을 뵈려고 들렀던 겁니다.” 그것으로 충분한 설명이 된 것 같았다. “이렇게 방해를 해서 정말 미안하지만, 몸이 으스스해서 그러는데, 나한테 술 한 잔 줄 수 있겠습니까?”
“아, 그러고 싶은데,” 헬렌이 대답했다. “에릭이 수술을 받은 뒤로는 이 집에 술이라고는 아예 두질 않아요. 벌써 삼 년쯤 되었네요.”
그는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것일까? 고통스러운 사실들을 숨기려는 그의 천성이 그로 하여금 자기가 집을 팔았고 자기의 아이들이 곤경에 처해 있고 그의 친구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잊게 한 것일까? 그의 눈길이 에릭의 얼굴에서부터 그의 복부로 슬금슬금 내려갔고 거기에서 그는 봉합된 세 곳의 흉터, 그중 둘은 적어도 길이가 일 피트는 되는 흉터들을 보았다. 그의 배꼽도 없어져버렸는데 그것을 보고 네디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새벽 세시에 그의 배를 더듬고 환자를 체크하는 손은 무슨 수로 배꼽도, 이 세상과의 어떤 연결고리도 없는 배에서 그 연속의 단절을 알아낼까?
“비스왱거 씨 댁에서는 틀림없이 한잔할 수 있을 거예요.” 헬렌이 알려주었다. “거기에서는 거창한 파티를 벌이고 있으니까요. 여기에서도 그 소리가 들릴 거예요. 들어봐요.”
그녀가 고개를 들었고 그는 길과 잔디밭들과 정원들과 나무들과 목초지들 저 너머에서 물 위로 떠오르는 밝은 목소리들을 다시 들었다. “어쨌든, 나는 몸을 적셔야겠지요.” 그가 말을 받았다. 그때까지도 여전히 자기의 여행 수단에 선택의 자유라고는 없다는 것을 느끼면서. 그가 삭스 부부 집의 차가운 물로 뛰어들어 숨을 헐떡이며 물속으로 가라앉을 듯 말 듯 수영장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건너갔다. “루신다하고 나는 당신들을 굉장히 보고 싶어해요.” 그가 고개를 비스왱거 부부의 집 쪽으로 돌리고 어깨 너머로 말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왕래가 없어서 미안해요. 곧 당신들을 초대할게요.”
그는 몇 군데의 목초지를 건너 비스왱거 부부의 집으로, 떠들썩한 술잔치가 벌어진 곳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그에게 술 한 잔 권하는 것을 영예로 여기고, 기쁨으로 여길 터였다. 비스왱거 부부는 그와 루신다를 일 년에 네 번씩 저녁 식사에 초대했는데, 항상 육 주일 전에 미리 통고를 해주었다. 그들은 언제나 거절했지만 비스왱거 부부는 계속해서 초대장을 보냈다. 그들 사회의 엄격하고 비민주적인 현실을 파악하려 들지 않고서 말이다. 그들은 칵테일파티에서 물건들의 가격을 논하고 저녁 식사를 하면서 시장의 비밀 정보를 교환하고 식사가 끝나면 여자들도 낀 자리에서 추잡한 이야기를 하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네디의 동아리에는 속하지 않았고 심지어 루신다가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는 사람들 명단에도 들어 있지 않았다. 그는 자비를 베푼다는 느낌으로 냉담하게 그들의 수영장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좀 걱정스럽기도 했는데 그것은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던 데다 그 무렵쯤이 해가 가장 긴 철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끼어든 파티는 떠들썩하고 성대했다. 그레이스 비스왱거는 검안사(檢眼士), 수의사, 부동산 중개인, 그리고 치과 의사에게 질문을 던지는 듯한 그런 타입의 안주인이었다. 아무도 수영을 하고 있지 않았고 수영장 물에 반사되는 석양은 겨울처럼 쌀쌀하게 번뜩였다. 그는 바가 설치된 곳으로 다가갔다. 그레이스 비스왱거가 그를 보고 다가왔지만 그가 당연지사로 예상했던 대로 다정하게가 아니라 싸우려는 투였다.
“아니, 이런, 이 파티에는 이제 있을 게 다 있네요.” 그녀가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불청객까지 포함해서 말예요.”
하지만 그녀는 그에게 사회적인 타격을 가할 수 없었고 거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서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불청객으로서 말입니다,” 그가 정중하게 요청했다. “술 한 잔 청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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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을 대로 하시지요.” 그녀가 응수했다. “당신은 초대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으니까 말예요.”
그녀가 돌아서서 다른 손님들에게로 가자 그는 바로 건너가 위스키를 한 잔 달라고 했다. 바텐더는 그에게 술을 내주기는 했지만 태도는 공손하지 못했다. 그는 출장 요리 회사의 직원들이 사회적 점수를 매기는 세상에서 살았는데, 시간제 바텐더에게 무시를 당한다는 것은 그의 사회적 체면이 어느 정도 손상되었다는 뜻이었다. 아니면 그 바텐더가 신참이어서 정보를 받지 못했거나. 다음에 그는 그레이스가 등 뒤에서 떠들어대는 소리를 들었다. “그 사람들은 하룻밤만 지나면 파산하게 되어 있었어요-수입만 빼놓고는-그런데도 어느 일요일에 그 사람이 술에 취해 가지고 우리를 찾아와서 오천 달러를 빌려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녀는 언제나 돈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은 완두콩을 칼로 찔러 먹는 것보다 더 안 좋은 짓이었다. 그는 수영장으로 뛰어들어 헤엄을 친 다음 그곳을 떠났다.
그의 목록에 들어 있는, 맨 마지막에서 두번째인 다음번 수영장은 그의 옛 애인인 셜리 애덤스의 수영장이었다. 만일 그가 비스왱거 부부 집에서 어떤 상처를 받았다면 거기에서 그 상처가 치유될 것이었다. 사랑-실제로는 섹스의 난장판-은 최고의 특효약, 진통제, 그의 발걸음에 다시 탄력을 주고 그의 가슴에 생의 기쁨을 밝혀줄 환한 색깔의 알약이었다. 그들이 불륜의 정사를 벌였던 것이 지난주였는지, 지난달이었는지, 지난해였는지 그는 기억할 수 없었다. 어쨌든 그 관계를 깬 것은 그였고, 우월한 위치에 있었던 것도 그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감으로 여겨지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생각도 없이 그녀의 수영장을 둘러싸고 있는 담의 문 안쪽으로 들어섰다. 그 수영장은 어느 면에서는 그의 수영장처럼 보였다. 연인들, 특히 부정한 연인들이 신성한 결혼에는 알려지지 않은 권한을 가지고 자기 애인의 소유물을 향유하는 식으로. 그녀는 거기에 있었고 그녀의 머리칼은 청동색이었지만 밝은 하늘색 물가에 있는 그녀의 모습은 그에게 어떤 뜻 깊은 기억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그는, 비록 관계가 깨졌을 때 그녀가 울기는 했어도, 그녀와의 정사를 마음 편한 연애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를 보자 그녀는 당황한 것 같았고 그는 왜 그녀가 아직도 상처를 받는지 궁금했다. 그녀가, 제발 안 그랬으면 좋겠지만, 다시 울까?
“원하는 게 뭐죠?” 그녀가 물었다.
“나는 헤엄을 쳐서 군을 가로지르고 있소.”
“맙소사. 당신 언제나 철이 들 거죠?”
“무엇 때문에 그러는 거요?”
“돈 때문에 여기에 왔다면,” 그녀가 딱 잘랐다. “더이상은 한 푼도 주지 않을 거예요.”
“술 한 잔은 줄 수 있지 않겠소?”
“그럴 수는 있지만 그러지 않겠어요. 나는 지금 혼자가 아니에요.”
“그렇다면 나는 가던 길을 가야겠지.”
그는 수영장으로 뛰어들어 헤엄을 쳤지만 반대편 가장자리에서 몸을 끌어올리려고 하다가 팔과 어깨에서 힘이 다 빠졌다는 것을 알고 어쩔 수 없이 사다리를 붙들고 올라왔다. 그리고 어깨 너머 쪽을 돌아보았다가 불이 켜진 탈의장에서 한 젊은 남자를 보았다. 어두운 잔디밭으로 걸어 나오면서 그는 밤공기에 실린, 휘발유 냄새처럼 강한 국화 아니면 금잔화 냄새-어떤 가을꽃의 강한 향기-를 맡았다.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가 별들이 나와 있는 것을 보았는데, 어째서 안드로메다자리와 케페우스자리와 카시오페이아자리를 본 것 같았을까? 여름철의 성좌들은 어떻게 된 것이었을까? 그는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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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어른이 되어서 운 것은 아마도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고, 그처럼 심한 비참함과 추위와 피곤함과 당황스러움을 느낀 것은 분명히 난생처음이었다. 그는 출장 요리 회사의 바텐더가 보인 무례함이나 자신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로 그의 바지를 적셨던 애인의 거친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너무 오랫동안 헤엄을 치고 너무 오랫동안 물에 잠겨 있었던 탓에 코와 목이 쓰라렸다. 그때 그가 원한 것은 한 잔의 술, 몇 사람의 친구, 깨끗하고 마른 옷 몇 가지였지만, 그는 길을 곧장 가로질러 집으로 갈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길마틴 부부의 수영장으로 갔다. 거기에서 그는 난생처음, 물로 뛰어들지 않고 계단을 밟고서 얼음같이 차가운 물속으로 들어갔고, 아마도 젊었을 때 배웠을 모잽이헤엄으로 수영장을 건넜다. 또 클라이드 부부의 집으로 가는 동안에는 피곤을 못 이겨 비틀거렸고 그들의 수영장을 건널 때는 헤엄을 치다 말고 몇 번씩 가장자리에 손을 짚고 쉬어야 했다. 사다리를 밟고 물 밖으로 나오면서 그는 자기에게 집까지 갈 기력이 남아 있을지 의심했다. 그는 자기가 하고 싶어한 일을 했고 그 지역을 헤엄으로 가로질렀지만 극도의 피로로 정신이 멍해져서 자기의 승리마저도 자신하지 못했다. 구부정한 자세로 몸을 지탱하려고 문기둥을 붙잡고서 그는 자기 집 앞 진입로로 들어섰다.
그곳은 어두웠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 모두들 잠자리에 든 것일까? 루신다는 저녁을 먹으려고 그때까지 웨스터헤이지 부부의 집에 남아 있을까? 딸아이들은 그곳에서 제 엄마와 함께 있거나 아니면 다른 어딘가에 있을까? 그들은, 일요일이면 늘 그러곤 했듯이, 모든 초대를 사절하고 집에 남아 있기로 동의하지 않았던가? 그는 차고 안에 어떤 차들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문을 열려고 했지만 차고 문은 잠겨 있었고 손잡이에서는 녹이 묻어났다. 집 쪽으로 가면서 그는 낙수홈통들 중 하나가 폭풍우에 망가진 것을 보았다. 그 홈통이 현관문 위로 우산살처럼 늘어져 있었지만 다음 날 아침 손을 보면 될 것이다. 현관문도 잠겨 있어서 그는 속으로 멍청한 요리사나 가정부가 집 문을 잠가놓은 모양이라고 생각했다가 그들이 가정부나 요리사를 고용한 지가 꽤 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는 소리를 치고 문을 쾅쾅 두드리고 어깨로 떠밀어보다가 다음에는 창문 안쪽을 들여다보고 그 집이 비어 있는 것을 알았다. (*)
(존 치버 단편선집 『사랑의 기하학』에서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