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비는 레이먼드 카버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을 <타임캡슐 단편>으로 소개합니다. 1981년에 출간된 카버의 소설집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의 표제작인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로버트 앨트먼의 영화 <숏 컷>(Short Cuts, 1993), 벨기에 출신 록밴드 데우스(dEUS)의 음악(이 소설과 같은 제목) 등에 영향을 준 바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2007년 출간한 회고록의 제목을 카버의 소설 제목을 약간 변형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이야기하는 것』(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이라고 펴내기도 했습니다. - 편집자
이야기는 내 친구 멜 맥기니스가 하고 있었다. 멜 맥기니스는 심장 전문의로, 그는 때로 그 덕분에 발언권을 갖기도 한다.
우리 넷은 그의 부엌 테이블에 둘러앉아 진을 마시고 있었다. 싱크대 뒤쪽의 커다란 창문으로 들어온 햇빛이 부엌을 채우고 있었다. 멜과 나와 그의 두번째 아내 테레사―우리는 그녀를 테리라고 불렀다―그리고 내 아내 로라가 있었다. 우리는 당시 앨버커키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타 지역 출신이었다.
테이블 위에는 얼음통이 놓여 있었다. 진과 토닉 워터가 계속 이 사람 저 사람의 손으로 옮겨갔고, 어쩌다가 우리의 주제는 사랑으로 넘어갔다. 멜은 진정한 사랑이란 정신적 사랑과 다름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의대에 가기 전에 신학교에서 오 년을 보냈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신학교에서 보낸 그 몇 해를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테리는 멜과 함께 살기 전에 같이 살았던 남자가 자신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죽이려 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어느 날 그가 나를 때렸어요. 내 발목을 잡은 채 나를 질질 끌고 거실을 돌아다녔죠. 그는 계속 ‘나는 너를 사랑해, 너를 사랑해, 이년아’ 하고 말했어요. 그는 계속 나를 끌고 돌아다녔죠. 내 머리는 계속 뭔가에 부딪혔어요.”
테리는 테이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 사랑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그녀는 얼굴이 예쁘고, 눈이 검으며, 갈색 머리칼이 등으로 흘러내린, 뼈만 앙상한 여자였다. 그녀는 터키석으로 만든 목걸이와 긴 펜던트 귀걸이를 좋아했다.
“맙소사, 멍청한 소리 마. 그건 사랑이 아냐. 당신도 그렇다는 걸 알고 있어. 뭐라 부를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걸 사랑이라 하지 않는다는 건 확실해.”
멜이 말했다.
“당신이 뭐라 해도, 난 그게 사랑이었다는 걸 알아요.”
테리가 말했다.
“당신에게는 정신 나간 소리로 들리겠죠. 하지만 그건 사랑이었어요. 사람들은 저마다 달라요, 멜. 물론 그는 때로 미친 사람처럼 굴었죠. 그래요. 하지만 그는 나를 사랑했어요. 아마 자기 방식대로였겠지만. 사랑은 있었어요, 멜. 거기에 사랑이 없었다는 말은 하지 말아요.”
멜은 숨을 내쉬었다. 그는 잔을 든 채 로라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작자는 나를 죽이겠다고 위협했어요.”
그는 술잔을 비운 후 진이 든 병으로 손을 뻗으며 말했다.
“테리는 낭만주의자야. ‘나를 걷어차주세요, 그러면 당신이 날 사랑한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라는 식의 주장이지. 테리, 여보, 그런 식으로 쳐다보지 마.”
멜은 테이블 너머로 손을 뻗어 손가락으로 테리의 뺨을 만졌다. 그는 그녀를 향해 싱긋 웃었다.
“이 사람은 이제 얘기를 꾸며내려고 해요.”
테리가 말했다.
“꾸며내다니, 뭘? 꾸며낼 게 뭐가 있어? 아는 건 아는 거라고. 그뿐이야.”
“그건 그렇고 어쩌다가 이런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죠?”
테리가 말했다. 그녀는 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멜은 항상 마음속에 사랑을 품고 있죠. 그렇지 않아요, 여보?”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것으로 논쟁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난 에드가 한 짓을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진 않아. 내가 말하려는 건 그거야, 여보.”
멜이 말했다.
“당신들은 어때요? 그게 사랑인 것 같나요?”
멜이 로라와 내게 물었다.
“나한테 묻는 건 적당치 않아. 난 그 남자를 알지도 못하는걸. 지나가는 말로 이름만 들었을 뿐이야. 난 모르겠어. 자세한 것을 모르니까. 하지만 내 생각에 자네는 사랑이 어떤 절대적인 것이라고 이야기하려는 것 같은데.”
나는 대답했다.
“내가 말하는 종류의 사랑이라. 내가 말하는 종류의 사랑은 사람을 잡으려 드는 것은 아니야.”
멜이 말했다.
“난 에드나 그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라요. 그런데 타인의 상황을 판단한다는 게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요?”
로라가 말했다.
나는 로라의 손등을 만졌다. 그녀는 내게 재빠른 미소를 보냈다. 나는 로라의 손을 집어들었다. 손은 따뜻했고, 손톱에는 매니큐어가 완벽하게 칠해져 광택이 났다. 나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손목을 감쌌고, 그녀를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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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레이먼드 카버 (Raymond Carver, 1938~88)
1938년 5월 25일 오리건 주 클래츠케이니에서 태어난 레이먼드 카버는 20세기 후반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그는 1980년대에 미국 단편소설 르네상스를 주도한 인물로 '헤밍웨이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가', '리얼리즘과 미니멀리즘의 대가', '체호프 정신을 계승한 작가'로 불린다. 1979년에 구겐하임 기금의 수혜자로 선정되었으며, 1983년 밀드레드 앤 해럴드 스트로스 리빙 어워드를 수상하였다. 1988년에는 전미 예술 문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하트퍼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8년 8월 2일 워싱턴 주 포트 앤젤레스에서 폐암으로 사망하였으며, 그의 작품들은 세계 20여 개국에 번역/출판되었다. 주요 작품으로 소설집 『제발 조용히 좀 해요』,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대성당』,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에세이·단편·시를 모은 작품집 『불』, 시집 『물이 다른 물과 합쳐지는 곳』, 『밤에 연어가 움직인다』, 『울트라마린』, 『폭포로 가는 새 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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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정영문
1996년 <작가세계> 겨울호에 장편소설 『겨우 존재하는 인간』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검은 이야기 사슬』, 『나를 두둔하는 악마에 대한 불온한 이야기』, 『더없이 어렴풋한 일요일』, 『꿈』, 중편소설 『하품』, 『중얼거리다』, 장편소설 『핏기 없는 독백』, 『달에 홀린 광대』가 있으며,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쇼샤』, 『발견: 하늘에서 본 지구 366』, 『인간들이 모르는 개들의 삶』, 『카잔차키스의 천상의 두 나라』, 『무서운 재단사가 사는 동네』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1999년 『검은 이야기 사슬』로 제12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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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떠나자 그는 쥐약을 마셨어요.”
테리가 말했다. 그녀는 손으로 자신의 팔을 감쌌다.
“사람들이 산타페에 있는 병원으로 그를 데려갔죠. 당시 우리는 그곳에서 십 마일쯤 떨어진 곳에 살았어요. 사람들이 그의 생명은 구했지요. 하지만 쥐약 때문에 잇몸이 엉망이 되었어요. 잇몸이 치아에서 떨어져나갔다는 뜻이에요. 그후로 그의 치아는 뱀의 송곳니처럼 튀어나와 있었어요.”
그녀는 잠시 멈추더니 팔을 쥐고 있던 손을 내려놓고 술잔을 집어들었다.
“어련했겠어요!”
로라가 말했다.
“이제 그는 더이상 아무 짓도 못 하게 되었지. 죽었으니까.”
멜이 말했다.
그는 내게 라임 접시를 건네주었다. 나는 한 조각을 들어 술잔에 즙을 짠 다음 손가락으로 얼음 조각을 휘저었다.
“상황은 더 나빠졌죠. 그는 총을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겼던 거예요. 하지만 그것도 실패로 끝났죠. 불쌍한 에드.”
테리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불쌍하다고 할 게 아니야. 그는 위험한 존재였어.”
멜은 마흔다섯 살이다. 그는 키가 크고 팔다리가 껑충하며 부드러운 곱슬머리를 지니고 있다. 그의 얼굴과 팔은 테니스 때문에 갈색으로 그을었다. 그의 몸짓과 동작은 술을 마시지 않을 때면 정확하고 아주 조심스럽다.
“하지만 그는 나를 사랑했어요, 멜. 그건 인정해요. 내가 부탁하는 건 그게 다예요. 그는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식으로는 사랑하지 않았어요. 그랬다는 게 아녜요. 하지만 어쨌든 그는 나를 사랑했어요. 그건 인정할 수 있죠, 그렇죠?”
“그건 무슨 얘기예요, 실패했다니?”
내가 물었다.
로라는 잔을 든 채 몸을 숙였다. 그녀는 팔꿈치를 테이블에 올려놓은 채, 양손으로 술잔을 감싸쥐었다. 그녀는 멜에서 테리에게 눈길을 돌리며, 친한 누군가에게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었다는 데 놀란 듯 솔직하게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기다렸다.
“자살을 하려다 어떻게 실패를 한 거지?”
나는 재우쳐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주지. 그는 테리와 나를 위협하려고 산 22구경 권총을 꺼냈어. 오, 농담이 아냐. 그 남자는 항상 위협을 했어. 우리가 그때 어떻게 살았는지 봤어야 했는데. 도망자 같았지. 내가 직접 총 한 자루를 사기까지 했어. 믿을 수 있어? 나 같은 남자가 말야. 하지만 그렇게 했어. 호신용으로 총 한 자루를 사서 자동차의 글로브 박스 안에 넣고 다녔지. 때로는 한밤중에 테리의 아파트를 나와야 했어. 병원에 출근하기 위해서 말야. 알지? 테리와 나는 당시 결혼하지 않은 상태였고, 내 전처가 집과 아이들과 개와 모든 걸 갖고 있었기 때문에 테리와 나는 그 아파트에서 살았지. 가끔은 전에 얘기했던 것처럼 한밤중에 전화를 받고 새벽 두세 시에 병원에 가야 하는 일도 있었지. 주차장은 어두웠고, 차가 있는 곳까지 가기도 전에 땀이 나기도 했어. 그가 덤불 숲이나 자동차 뒤에서 불쑥 튀어나와 총질을 해댈지 알 수 없었던 거야. 내 말은, 그 작자가 미쳤다는 거야. 그는 폭탄을 설치할 수도 있었고, 다른 짓을 할 수도 있었어. 그는 시도 때도 없이 병원의 내가 근무하는 과로 전화를 해서 의사와 얘기를 해야 한다고 했어. 그래서 내가 전화를 받으면 그는 ‘개새끼, 네 목숨도 며칠 안 남았어’ 하고 말하곤 했어. 그런 말들을 내뱉곤 했지. 지금이니까 하는 말인데, 나는 겁이 났어.”
멜이 대답했다.
“나는 여전히 그가 안됐어요.”
테리가 말했다.
“악몽처럼 들리는군요. 한데 그가 총으로 자살을 기도한 후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로라가 물었다.
로라는 법률 사무소의 비서다. 우리는 일을 하다가 만났다. 우리의 구애는 스스로 미처 깨닫기도 전에 시작되었다. 그녀는 나보다 세 살 어린 서른다섯 살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할 뿐만 아니라 서로 좋아하며 서로의 지인들과 어울리는 걸 즐긴다. 그녀는 함께 있기에 편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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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죠?”
로라가 재우쳐 물었다.
“그는 자기 방에서 총구를 문 채 방아쇠를 당겼지. 누군가 총성을 들었고, 관리인에게 얘기를 했어. 그들은 여벌의 열쇠로 따고 들어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았고, 앰뷸런스를 불렀지. 그들이 그를 데려왔을 때 나는 마침 병원에 있었어. 살아 있긴 했지만 제대로 살려낼 가능성은 없었어. 그 작자는 사흘을 더 살았어. 그의 머리는 정상인 머리의 두 배 크기로 부어올랐지. 그런 건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 테리는 병실 안에 들어가 그 곁에 앉아 있고 싶어했어. 그 일로 우리는 싸웠지. 나는 그녀가 그 지경이 된 걸 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 그녀가 그를 봐선 안 된다고 생각한 거지.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고.”
멜이 대답했다.
“그 싸움에서는 누가 이겼어요?”
로라가 물었다.
“그가 죽을 때 나는 그 방에서 그와 함께 있었어요. 그는 살아나지 못했죠. 하지만 난 그 옆에 앉아 있었어요. 그에게는 다른 누구도 없었거든요.”
테리가 대답했다.
“그는 위험한 작자였어.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다면 그렇게 해.”
멜이 말했다.
“그건 사랑이었어요. 물론 대부분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비정상으로 보이겠죠. 하지만 그는 그 때문에 기꺼이 죽으려고 했어요. 실제로도 그 때문에 죽었고.”
“난 절대 그걸 사랑이라고 할 수 없어. 내 말은, 누구도 그가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 모른다는 얘기야. 난 자살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어. 그렇지만 그들이 정말 왜 자살을 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얘기야.”
멜은 목덜미에 손을 대고 의자를 기울였다.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다면 그렇게 해. 난 그런 종류의 사랑에는 관심없어. 그걸 사랑이라 부르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고.”
“우리는 겁이 났어요. 멜은 유언장까지 쓴 후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는 공수부대 출신의 동생에게 그걸 보냈죠. 멜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누구를 찾아야 할지 그에게 일러주었어요.”
테리는 그렇게 말하며 자기 술을 마셨다.
“하지만 멜의 말이 옳아요. 우리는 도망자처럼 살았죠. 우린 겁이 났어요. 멜도 그랬죠. 그렇지 않아, 여보? 어느 시점에 나는 경찰에도 연락을 했어요. 하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죠. 그들 말로는 에드가 실제로 무슨 짓을 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대요. 웃기지 않아요?”
멜은 마지막 남은 진을 테리의 술잔에 부은 후 술병을 흔들었다. 그는 테이블에서 일어나 찬장 쪽으로 갔다. 그는 술병 하나를 더 꺼냈다.
“글쎄요, 닉과 나는 사랑이 뭔지 알아요. 우리 경우에는 말예요.”
로라가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무릎을 내 무릎에 부딪쳤다.
“이제 당신이 뭐라고 해봐요.”
그녀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미소를 지었다.
대답 대신 나는 로라의 손을 잡아 내 입술에 갖다댔다. 나는 그녀의 손에 과장되게 키스를 했다. 모두 즐거워했다.
“우린 운이 좋아요.”
내가 말했다.
“당신들, 그만 해요. 역겨워라. 맙소사, 당신들 아직도 신혼이네요. 아직도 넋이 나가 있어요. 가만. 함께한 지 얼마나 됐죠? 얼마나 된 거예요? 일 년? 그 이상?”
테리가 말했다.
“일 년 반 됐죠.”
얼굴을 붉히고 미소를 지으며 로라가 대답했다.
“오, 잠깐. 잠깐만 기다려요.”
그녀는 술잔을 든 채 로라를 응시했다.
“그냥 농담이었어요.”
테리가 말했다.
멜은 진 뚜껑을 열고 한 잔씩 돌렸다.
“자, 여러분. 건배합시다. 건배하자구요. 사랑을 위해 건배. 진정한 사랑을 위해.”
멜이 말했다.
우리는 술잔을 부딪쳤다.
“사랑을 위해.”
우리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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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뒤뜰에서 개 한 마리가 짖기 시작했다. 창문 쪽으로 기울어진 포플러 잎사귀가 유리창을 긁어댔다. 방 안에 들어온 오후 햇살이 편안하고 넉넉한 느낌을 더해주고 있었다. 우리는 마법의 장소에 와 있는 듯했다. 우리는 다시 잔을 들었고, 뭔가 금지된 일을 하자고 작정한 애들처럼 서로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진정한 사랑이 뭔지 내가 말해보지. 좋은 예를 하나 들게. 그런 다음 각자 결론을 내려봐.”
멜은 이렇게 말하며 자기 잔에 진을 좀더 따랐다. 그는 얼음과 라임 조각을 넣었다. 우리는 기다리며 술을 홀짝였다. 로라와 나는 다시 무릎을 부딪쳤다. 나는 그녀의 따뜻한 허벅지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우리가 사랑에 대해 정말 알고 있는 게 뭘까? 사랑에서 우리는 초보자일 뿐인 것 같아.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서로 사랑하기도 하지. 그 점은 의심치 않아. 나는 테리를 사랑하고 테리는 나를 사랑하지. 그리고 당신들 역시 서로 사랑하고. 지금 내가 얘기하는 종류의 사랑이 뭔지는 알 거야. 육체적인 사랑, 특별한 누군가에게 이끌리는 충동, 그리고 다른 어떤 존재, 상대의 본질에 대한 사랑 말이야. 세속적 사랑, 말하자면 다른 사람에 대해 일상적으로 배려하는 감상적인 사랑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 그런데 가끔 내가 전처 역시 사랑했었다는 사실을 고려하게 되면 헷갈리기도 해. 하지만 내가 사랑했었고, 그랬다는 걸 알고는 있어. 그래서 바로 그런 점에서 내가 테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지. 테리와 에드 문제 말이야.”
그는 그 문제에 대해 잠시 생각하더니 얘기를 이었다.
“전처를 생명보다도 더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어. 하지만 지금 나는 그녀를 혐오해. 그래, 이건 어떻게 설명하지? 그 사랑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 사랑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난 알고 싶어. 누군가 얘기를 해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 에드라는 자가 있지. 그래, 다시 에드 얘기로 돌아가는 거야. 그는 테리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녀를 죽이려 했고, 결국 자살했어.”
멜은 얘기를 중단하고 술을 마셨다.
“당신들은 열여덟 달을 함께했고 서로 사랑하고 있지. 얼굴에 씌어 있어요. 사랑으로 광채가 나니까. 하지만 당신들은 서로 만나기 전에 각자 다른 사람을 사랑했어. 당신들은 우리처럼 전에 결혼을 한 적이 있지. 그리고 그전에도 다른 누군가를 사랑했을 수 있어. 테리와 나는 함께한 지 오 년이 되었고, 결혼한 지 사 년이 되었지. 그런데 끔찍한 건, 정말 끔찍한 건, 한편으로는 좋기도 한 건데, 우리를 구원할 어떤 은총이라고도 할 수 있는 건, 만약 우리 중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이런 말을 해서 미안해요―바로 내일 우리 중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 상대, 그러니까 다른 한쪽은 한동안 슬퍼하다가도 다시 기운을 차리고 곧 다른 누군가를 만나 다시 사랑을 하게 될 거라는 거야. 그러면 이 모든 게,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이 모든 사랑이 그냥 추억이 되겠지. 어쩌면 추억조차 되지 않을 수도 있어. 내 말이 틀렸나? 근거가 없나? 내 말이 틀렸다면 바로잡아봐. 난 알고 싶어. 내 말은, 난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거야.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먼저 인정하는 바일세.”
“멜, 맙소사.”
테리가 말했다. 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손목을 잡았다.
“취해요, 여보? 취했어요?”
“여보, 난 그냥 얘기를 하려는 것뿐이야. 괜찮냐고? 내가 생각하는 바를 말하려면 취할 필요까진 없어. 내 말은, 우린 그냥 얘기를 나누고 있을 뿐이라는 거야, 그렇지 않아?”
멜이 말했다. 그는 시선을 그녀에게 고정시켰다.
“여보, 비난하는 게 아녜요.”
테리가 말했다.
그녀는 자기 잔을 집어들었다.
“오늘은 병원에서 연락이 와도 가지 않을 거야. 당신에게 그걸 상기시켜주고 싶어. 연락이 와도 가지 않을 거야.”
그가 말했다.
“멜, 우린 당신을 사랑해요.”
로라가 말했다.
멜은 로라를 쳐다보았다. 그는 로라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듯, 자기가 아는 여자가 아니라는 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나 역시 당신을 사랑해요, 로라. 그리고, 자네, 닉, 자네도 사랑하네. 이거 알아? 당신들은 우리 친구야.”
멜이 말했다.
그는 자기 잔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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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이 말했다.
“뭔가 얘기하려고 했었지. 내 말은, 그 요점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거야. 이 일이 있은 건 몇 달 전이네. 하지만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 사랑에 관해 뭔가 아는 것처럼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에 대해선 창피해해야 마땅해.”
“이제 그만 해요. 취하지 않았으면서 술 취한 것처럼 말하지 말아요.”
테리가 말했다.
“제발 한 번만이라도 입 좀 닫고 있어.”
멜은 아주 조용히 말했다.
“제발 부탁이니 잠시 그렇게 해주겠어? 그래, 하려던 이야기는 말야, 주간(州間)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나이 든 부부가 있었어. 어떤 애가 차로 그들의 차를 받았고, 그들은 온몸이 엉망으로 찢어졌지. 누구도 그들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지 않았어.”
테리는 우리를, 그런 다음에는 멜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불안한 기색이었다. 불안하다는 표현이 좀 센 건지도 모르겠지만.
멜은 테이블 주위로 술병을 건넸다.
“그날 밤 병원에서 연락이 왔어. 오월 아니면 유월이었을 거야. 테리와 내가 저녁을 먹으려고 앉아 있는데 병원에서 연락이 온 거야. 주간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발생한 거지. 술에 취한 십대가 아버지의 픽업 트럭을 몰다 노부부가 몰던 캠핑용 차량을 들이받은 거야. 부부는 칠십대 중반이었지. 열여덟이나 열아홉 살쯤 된 그애는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사망한 상태였어. 운전대가 흉골을 관통했더군. 노부부는 살아 있었어. 간신히. 하지만 성한 데라곤 없었지. 복합 골절에 장기파열, 출혈, 타박상, 그리고 열상까지. 둘 다 모두 뇌진탕이었지. 상태가 좋지 않았어. 그리고 그들은 나이까지 많았어. 그중에서도 여자 쪽이 더 좋지 않았지. 온몸이 말이 아닌데다가 비장까지 파열되었으니까. 양쪽 무릎 연골도 파열되었지. 한데 그들은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있었고, 그 덕분에 한동안 살아 있었지.”
“여러분, 이건 전국 교통 안전 위원회 광고입니다. 이분이 대변인입니다. 멜빈 R. 맥기니스 박사님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테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멜, 당신은 때로 지나쳐요. 하지만 당신을 사랑해요, 여보.”
“여보, 나도 당신을 사랑해.”
멜이 말했다.
그는 테이블 위로 몸을 기울였다. 테이블 중간쯤에서 그들의 얼굴이 만났고, 키스했다.
멜은 몸을 뒤로 젖히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테리의 말이 옳아요. 안전벨트를 매도록 해. 한데 정말이지 그 노인네들은 어느 정도 목숨은 유지하고 있었어. 방금 말한 것처럼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애는 이미 죽어 있었지. 그는 구석의 바퀴 달린 들것 위에 누워 있었어. 나는 노부부를 한 번 본 다음 응급실 간호사에게 신경 전문의와 정형외과 전문의와 외과의 두서넛 정도를 바로 불러달라고 했어.”
그는 자기 술을 마셨다.
“짧게 끝낼게. 그래서 우리는 그 둘을 수술실로 옮겨서 거의 밤을 새다시피 하며 미친 듯이 일했어. 두 사람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목숨이 질겼지. 가끔 그런 사람들을 보게 돼. 그래서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을 전부 다 했지. 아침이 되었을 때 그들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오십 대 오십 정도로 보였고, 여자 쪽은 그보다도 더 낮았어. 그럼에도 이튿날 그들은 살아 있었어. 우리는 그들을 집중치료실로 옮겼지. 그들은 이 주 동안 그곳에서 치료를 받았고, 모든 면에서 점점 나아졌어.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각자 입원실로 옮겼지.”
멜은 얘기를 멈췄다.
“자, 이 싸구려 진을 비워버리자구. 그런 다음 저녁 식사를 하러 가는 게 어때, 좋지? 테리와 내가 새로 연 식당을 알고 있거든. 가려는 데는 거기야. 하지만 맛이 형편없는 이 싸구려 진을 마저 비운 다음 가는 거야.”
그가 말했다.
“사실 우린 거기서 식사를 해보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괜찮아 보이더군요. 어쨌든 밖에서 보기에는요.”
테리가 말했다.
“나는 음식이 좋아. 만약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 나는 요리사가 되겠어, 알아? 맞지, 테리?”
멜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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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자기 잔 속의 얼음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테리는 이걸 알고 있을 텐데. 테리가 대신 얘기해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번엔 내가 얘길 하지. 내세에서 전혀 다른 시간과 인생을 살게 된다면 말이지, 내가 무슨 얘기 하는지 알겠지? 나는 기사가 되고 싶어. 갑옷을 전부 껴입으면 아주 안전할 거야. 화약이나 화승총, 권총 같은 게 나타나기 전까지는 기사도 괜찮았지.”
“멜은 창을 들고 말을 타고 싶어해요.”
테리가 말했다.
“어딜 가나 여자의 스카프를 지니고 다니는 거죠.”
로라가 덧붙였다.
“아니면 그냥 여자를 하나 데리고 다니거나.”
멜이 말했다.
“창피한 줄 알아요.”
로라가 말했다.
“농노로 태어나면 어떻게 할 거예요. 그 당시 농노들의 삶은 별로 좋지 않았는데.”
테리가 물었다.
“농노들의 삶은 좋지 않았지. 하지만 기사 역시 누군가의 기신이었을 거야. 그런 식이었지 않았나? 당시에는 모든 사람이 항상 누군가의 기신이었지. 그렇지 않아, 테리? 하지만 내가 기사와 관련해 좋아하는 건, 여자들을 제외하고 말야, 갑옷이 있어서 쉽게 다치지 않는다는 거야. 당시에는 차도 없었지. 그래서 술 취한 십대가 와서 들이받는 일도 없었어.”
“가신(家臣)이에요.”
테리가 말했다.
“뭐라고?”
“가신이라니까요. 그들은 기신이 아니라 가신이라고 불렸어요.”
“가신, 기신. 그게 무슨 차이야? 아무튼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잖아. 좋아, 그래. 나 무식해. 전공공부야 했지. 심장 전문의이긴 해. 하지만 난 그냥 기술자일 뿐이야. 그냥 몸을 열고 둘러본 다음 수리를 하는 거지. 제기랄.”
멜이 말했다.
“당신은 겸손한 게 어울리지 않아요.”
테리가 말했다.
“이 친구는 그냥 한낱 외과의일 뿐이죠. 하여튼 갑옷 입은 사람들은 때로 질식하기도 했어, 멜. 너무 더워 피곤한 나머지 진이 빠지게 되면 심장마비를 일으키기도 했지. 말에서 떨어져서 그 모든 갑옷들을 걸친 채 너무 지친 나머지 몸을 일으키지도 못했다는 얘기를 어디서 읽은 적이 있어. 때로 그들은 자기 말에 짓밟히기도 했지.”
내가 말했다.
“끔찍하군. 끔찍한 일이야, 니키. 그대로 거기 누워서 누군가 그들을 난도질하러 오기를 기다리곤 했겠네.”
“다른 어떤 가신이 말예요.”
테리가 말했다.
“맞아. 어떤 가신이 와서 사랑의 이름으로 그들을 창으로 찔렀을 거야. 아니면, 그게 뭐였든 간에 당시 싸우고 있던 명분을 들먹이며.”
“지금 우리가 싸우고 있는 것과 같은 명분을 놓고.”
테리가 말했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
로라가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홍조를 띠고 있었다.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는 잔을 입술로 가져갔다.
멜은 또 한 잔을 따랐다. 그는 자릿수가 긴 숫자를 살펴보기라도 하는 듯 라벨을 가까이 놓고 바라보았다. 그런 다음 천천히 술병을 내려놓고 천천히 토닉 워터에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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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부부는 어떻게 됐어요? 시작한 얘기를 끝내지 않았잖아요.”
로라가 물었다.
그녀는 담뱃불을 붙이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성냥불이 계속 꺼졌다.
방 안의 햇빛은 이제 달라져 있었다. 햇빛은 변하고 있었고, 더 엷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창 밖의 나뭇잎들은 아직도 희미하게 가물거리고 있었다. 나는 유리창과 포마이카 카운터 위에 그림자가 그리고 있는 문양들을 바라보았다. 물론 문양들은 서로 동일하지 않았다.
“그 노부부는 어떻게 됐어?”
내가 물었다.
“더 나이 먹고 더 현명해졌죠.”
테리가 대답했다.
멜은 그녀를 쏘아보았다.
“얘기 계속해요, 여보. 그냥 농담이었다구요. 그런 다음 무슨 일이 있었어요?”
테리가 말했다.
“테리, 때로는.”
멜이 말했다.
“제발, 멜. 항상 그렇게 심각해하지 말아요, 여보. 농담도 못 받아들여요?”
“무슨 농담이 그래?”
그는 잔을 들고 아내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예요?”
로라가 물었다.
멜은 시선을 로라에게 고정시켰다.
“로라, 내게 테리가 없고, 내가 그녀를 그토록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닉이 내 제일 친한 친구가 아니라면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을 거예요. 당신을 빼앗았을 거야.”
멜이 말했다.
“얘기나 해봐요. 그런 다음 새로 생긴 식당에 가는 거예요, 됐죠?”
테리가 말했다.
“나는 그들 두 사람을 매일같이 보러 갔어. 때로 다른 연락이 오면 하루에 두 번씩 들르기도 했지. 둘 다 모두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깁스와 붕대를 하고 있었어. 영화에서 그런 장면 봤을 거야. 그들은 정말 영화처럼 하고 있었어. 작은 눈 구멍과 콧구멍, 입 구멍만 있었지. 거기에다 그녀는 다리까지 매달고 있었어. 남편은 오랫동안 아주 절망적이었어. 아내가 나아지리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그는 계속해서 자포자기 상태였어. 하지만 그 사고 때문만은 아니었어. 내 말은 그 사고가 하나의 원인이긴 했지만 모든 원인은 아니었다는 거야. 나는 그의 입 구멍에 귀를 대곤 했어. 그는 사고 때문이 아니라 그녀를 눈 구멍을 통해 볼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절망했어. 그게 자기를 상심하게 한다고 했지. 상상할 수 있어? 그는 머리를 돌려 자기 마누라를 볼 수 없어서 마음이 아팠던 거야.”
멜은 테이블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이 말하려는 것 때문에 고개를 내저었다.
“내 말은, 그 늙은이가 망할놈의 마누라를 볼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죽어가고 있었다는 거야.”
우리는 모두 멜을 바라보았다.
“내가 하는 말이 뭔지 알겠어?”
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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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우리는 약간 취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집중이 되지 않았다. 빛은 들어왔던 창문을 통해 다시 방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테이블에서 일어나 머리 위의 등을 켜려 하지 않았다.
“들어봐. 이 망할놈의 진을 다 비우자고. 한 잔씩 돌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남은 것 같군. 그런 다음 식사를 하러 가지. 새로 연 식당으로 가자고.”
멜이 말했다.
“이 사람, 우울해졌어요. 멜, 약을 먹지 그래요?”
테리가 제안했다.
멜은 고개를 저었다.
“있던 약은 다 먹었어.”
“우리 모두 이따금 약이 필요하지.”
내가 말했다.
“태어날 때부터 그게 필요한 사람도 있어요.”
테리가 말했다.
그녀는 테이블 위의 뭔가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그러고는 동작을 멈췄다.
“애들에게 전화를 하고 싶은 것 같아. 모두 괜찮지? 애들에게 전화를 해야겠어.”
멜이 말했다.
“마조리가 전화를 받으면 어떻게 해요? 여러분도 마조리 얘기는 들었죠? 여보, 당신은 마조리하고는 얘기하고 싶어하지 않잖아요. 기분만 더 상할 거예요.”
테리가 말했다.
“마조리하고는 얘기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애들과는 얘기하고 싶어.”
“멜은 그녀가 재혼을 했으면 한다는 얘기를 하지 않고 넘어가는 날이 없을 정도예요. 아니면 죽어버리거나.”
테리가 말했다.
“우선, 우린 그녀 때문에 파산 상태예요. 멜은 그녀가 재혼을 하지 않는 건 자기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라고 해요. 그녀는 남자친구와 아이들과 같이 살고 있고, 그래서 멜은 그 남자친구까지 부양하고 있는 셈이죠.”
“그녀는 벌에 알레르기가 있어. 그녀가 재혼하기를 기도하지 않았다면, 망할놈의 벌떼에 쏘여 죽기를 기도했을 거야.”
멜이 말했다.
“부끄러운 줄 알아요.”
로라가 말했다.
“위이잉.”
멜은 손가락으로 벌 모양을 만들어 테리의 목에 달려드는 시늉을 했다. 그런 다음 그는 손을 양옆으로 떨구었다.
“그 여잔 못됐어. 때로 나는 양봉업자처럼 차려입고 그 집에 갈까 하는 생각도 해. 얼굴가리개가 달린 헬멧처럼 생긴 모자를 쓰고, 커다란 장갑을 끼고, 솜을 넣은 외투를 입고 말야. 문을 노크한 다음 벌떼를 그 집 안에 풀어놓는 거야. 물론 먼저 아이들이 집에 없는 걸 확인한 다음에.”
그는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다리에 포갰다. 그렇게 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듯 보였다. 그런 다음 그는 두 발을 마룻바닥에 내리고 몸을 앞으로 기대며 팔꿈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두 손으로 뺨을 감쌌다.
“애들에게 전화하지 말아야 할 것 같아. 그다지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 그냥 식사를 하러 가지. 어때?”
“먹으러 가든, 안 가든 좋아. 아니면 계속 술을 마시지. 곧장 밖으로 나가 석양으로 향할 수도 있어.”
내가 대답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여보?”
로라가 물었다.
“말한 그대로야. 그냥 계속해서 갈 수도 있다는 거지. 그 뜻이야.”
“뭔가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배가 고팠던 적은 없어요. 요기할 만한 게 있나요?”
로라가 말했다.
“치즈와 크래커를 조금 내오죠.”
테리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뭔가 가져오려고 자리에서 일어나지는 않았다.
멜은 잔을 뒤집었다. 그는 술을 테이블 위에 쏟았다.
“진이 다 떨어졌어.”
멜이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하죠?”
테리가 물었다.
나는 내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다른 모두의 심장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방이 어두워졌는데도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앉아서 내고 있는, 그 인간적인 소음을 나는 들을 수 있었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서 전재 (레이먼드 카버, 문학동네,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