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비는 레이먼드 카버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A Small, Good Thing")을 <타임캡슐 단편>으로 소개합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1983년에 씌어지고 같은 해에 『대성당』이라는 단편집으로 묶여 나온 단편소설입니다. 이듬해 전미도서상(National Book Award) 후보에 오르기도 한 카버의 네 번째(메이저 출판사에서 출간되기로는 세 번째) 소설집 『대성당』은 그의 최고 소설집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인지 카버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과 「대성당」, 이 두 단편이 살아남는다면 정말 행복할 겁니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다음으로 실릴 카버의 단편은 1981년에 출간된 소설집의 표제작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 편집자
토요일 저녁, 그녀는 차를 몰고 쇼핑센터에 있는 제과점을 찾아갔다. 바인더에 들어 있는 케이크 사진을 훑어본 뒤, 그녀는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초콜릿 케이크를 주문했다. 그녀가 고른 케이크에는 반짝이는 별들 아래 우주선과 발사대 그리고 반대쪽으로 빨간색 사탕으로 만든 행성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아이의 이름인 ‘스코티’는 그 행성 아래에 초록색으로 적을 예정이다. 다음주 월요일이면 아이가 여덟 살이 된다고 그녀가 말하는 동안, 목살이 늘어진 늙은 빵집 주인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빵집 주인은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는데, 그게 작업복인 모양이었다. 앞치마의 끈은 겨드랑이 아래를 거쳐 등을 한 바퀴 휘감은 뒤, 다시 앞으로 나와 볼록한 허리 아래에서 매듭을 짓고 있었다. 그는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그녀의 말을 들었다. 그녀가 말하는 동안, 그는 사진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마음껏 얘기하도록 내버려뒀다. 그는 제과점에 막 도착해서 밤새 빵을 구울 작정이었으므로 서두를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녀는 빵집 주인에게 앤 와이스라고 이름을 말한 뒤, 전화번호를 남겼다. 오후에 아이의 생일파티가 열릴 테니 월요일 아침이면 막 오븐에서 나온 케이크가 준비될 것이었다. 빵집 주인은 신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그저 최소한의 말들, 필요한 정보만 오갔을 뿐 즐거울 만한 것은 없었다. 그 때문에 그녀는 마음이 불편했고 기분이 나빠졌다. 그가 연필을 쥐고 계산대에 몸을 숙이고 있는 동안, 그녀는 그 덜떨어진 모습을 바라보며 평생 빵이나 만들면서 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서른세 살의 애 엄마인 그녀가 보기에 사람들에게도, 특히 빵집 주인과 비슷한 연배―그러니까 자기 아버지 또래의 중늙은이들―에게도 아이들이 있겠지만 케이크나 생일파티를 준비하는 인생의 특별한 시기는 이미 지나간 게 틀림없었다. 우리 사이에는 그런 차이가 있겠지,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렇긴 해도 그는 좀 퉁명스럽게 굴었다. 무례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딘지 태도가 퉁명스러웠다. 그녀는 그를 상냥하게 대하려던 마음을 포기했다. 그녀는 제과점 안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 한쪽 끝 길고 육중한 나무탁자 위에 알루미늄으로 만든 파이 팬들이 놓여 있는 게 보였다. 탁자 옆에는 선반이 텅 비어 있는 철제 보관함이 있었다. 또 어마어마하게 큰 오븐도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서부 컨트리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빵집 주인은 특별 주문사항을 주문서에 기입한 뒤, 바인더를 덮었다. 그녀를 바라보며 그는 “월요일 아침이오”라고 말했다. 그녀는 고맙다고 말한 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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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레이먼드 카버 (Raymond Carver, 1938~88)
1938년 5월 25일 오리건 주 클래츠케이니에서 태어난 레이먼드 카버는 20세기 후반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그는 1980년대에 미국 단편소설 르네상스를 주도한 인물로 '헤밍웨이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가', '리얼리즘과 미니멀리즘의 대가', '체호프 정신을 계승한 작가'로 불린다. 1979년에 구겐하임 기금의 수혜자로 선정되었으며, 1983년 밀드레드 앤 해럴드 스트로스 리빙 어워드를 수상하였다. 1988년에는 전미 예술 문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하트퍼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8년 8월 2일 워싱턴 주 포트 앤젤레스에서 폐암으로 사망하였으며, 그의 작품들은 세계 20여 개국에 번역/출판되었다. 주요 작품으로 소설집 『제발 조용히 좀 해요』,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대성당』,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에세이·단편·시를 모은 작품집 『불』, 시집 『물이 다른 물과 합쳐지는 곳』, 『밤에 연어가 움직인다』, 『울트라마린』, 『폭포로 가는 새 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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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김연수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고 이듬해 장편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나섰다.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 『7번 국도』, 『꾿빠이, 이상』, 『사랑이라니, 선영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소설집 『스무 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 『여행할 권리』 등이 있다. 2001년 『꾿빠이, 이상』으로 제14회 동서문학상을, 2003년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로 제34회 동인문학상을, 2005년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로 제13회 대산문학상을, 그리고 2007년에 단편 「달로 간 코미디언」으로 제7회 황순원문학상을, 2009년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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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생일을 맞은 아이는 다른 아이와 함께 걸어서 등교하고 있었다. 포테이토칩 봉지를 서로 주고받으며 걸어가는 동안, 생일을 맞은 아이는 그날 오후에 있을 생일파티에서 친구에게 받을 선물이 뭔지 알아내려고 애를 썼다. 앞을 살피지 않은 채, 교차로를 걸어가던 아이는 인도 연석에 발을 헛디뎠고 곧바로 차에 치였다. 아이는 옆으로 넘어지면서 얼굴은 도랑에 처박혔고 다리는 차도 쪽으로 나와 있었다. 두 눈은 이미 감겼으나 다리만은 마치 기어나오겠다는 듯이 앞뒤로 까딱거렸다. 친구는 포테이토칩 봉지를 떨어뜨린 채, 울음을 터뜨렸다. 100피트쯤 더 나아갔던 차는 길 한가운데에서 멈춰 섰다. 운전석에 앉은 남자는 고개를 돌려 어깨 너머로 돌아봤다. 그는 아이가 불안정한 자세로 일어설 때까지 그렇게 있었다. 아이는 선 채로 비틀거렸다. 넋이 나간 표정이었으나 멀쩡했다. 운전사는 기어를 넣고 떠나버렸다.
생일을 맞은 아이는 울지도 않았고, 또다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자동차에 부딪힌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 친구의 말에도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이는 집으로 돌아갔고 친구는 학교로 갔다. 하지만 생일을 맞은 아이는 집 안으로 들어가 엄마―그녀는 아이를 소파에 앉히고 자기도 옆에 앉아서 아이의 손을 무릎으로 끌어당긴 채, “스코티, 정말 괜찮은 거니?”라고 물으면서, 괜찮다고 하더라도 의사를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에게 있었던 일을 얘기하고는 갑자기 소파에 몸을 파묻더니 눈을 감고 축 늘어졌다. 아무리 깨워도 아이가 일어나지 않자, 그녀는 전화기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남편 직장에 전화를 걸었다. 하워드는 일단 진정하라고, 냉정을 찾으라고 그녀를 달래고 병원에 전화해 구급차를 보낸 뒤 자신도 병원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당연히 생일파티는 취소됐다. 아이는 쇼크에 의한 가벼운 뇌진탕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구토로 인해 아이의 폐에 물이 차 있을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그날 오후에는 물을 빼내야만 했다. 이제 아이는 깊은 잠 속에 빠져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혼수상태는 아니었다. 의사인 닥터 프랜시스는 부모의 얼굴에 서린 근심을 보자, 그렇게 강조했다. 혼수상태는 아닙니다. 수많은 엑스레이 촬영과 검사를 거친 뒤, 아이가 편안하게 잠든 것처럼 보이던 그날 밤 열한시, 이제 아이가 깨어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한 하워드는 병원을 떠났다. 앤과 함께 하루 종일 병원에서 아이 곁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잠깐 집에 들러 몸도 씻고 옷도 갈아입을 작정이었다. “한 시간 뒤에 올게.” 그가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내가 여기 있을 테니까.” 그녀가 말했다. 그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춘 뒤, 손을 잡았다. 그녀는 병상 옆 의자에 앉아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아이가 깨어나 모든 게 괜찮아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가 되면 자기도 좀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워드는 병원에서 집까지 차를 몰고 갔다. 그는 비에 젖은 어두운 거리를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속도를 늦췄다. 지금까지 그의 삶은 순탄하기만 했고 어디 하나 부족한 게 없었다. 대학도, 결혼도, 경영학 고급과정 학위를 받기 위해 다시 다닌 일 년의 대학생활도, 투자회사에 하위 파트너로 들어가게 된 일도, 아빠가 된 것도. 그는 행복했고,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다. 그도 알고 있었다. 부모님은 여전히 살아 계시고 형제자매들은 다들 자리를 잡았으며 대학친구들은 모두 사회에 나가 나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 어떤 쓰라린 경험도 없었다. 운이 다하면, 갑자기 모든 상황이 바뀌면, 한 사람을 꺾어버리고 내팽개치는 어떤 힘 같은 게 이 세상에는 존재한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 그는 집 앞 진입로로 차를 몰고 들어가 주차했다. 그의 왼발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잠시 차에 앉아서 이성적인 태도로 그 상황에 대처하려고 애썼다. 스코티는 차에 치였고 병원에 있다. 하지만 아이는 곧 멀쩡해질 것이다. 하워드는 눈을 감고 손으로 얼굴을 한 번 훑었다. 그는 차에서 내려 현관문 쪽으로 걸어갔다. 집 안에서 개가 짖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그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 전등 스위치를 더듬거리는 동안에도 전화벨은 계속 울렸다. 병원을 떠나는 게 아니었다. 그러는 게 아니었다. “빌어먹을!” 그가 소리쳤다. 그는 수화기를 들고 말했다. “이제 막 집에 들어온 참이었어!”
“케이크 왜 안 가져가는 거요?” 수화기 저편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말씀이죠?” 하워드가 물었다.
“케이크 말이오. 십육 달러짜리 케이크.” 그 목소리가 말했다.
하워드는 무슨 얘기인지 알아들으려고 수화기를 귀에다 바짝 붙였다. “케이크라니 지금 무슨 말입니까? 젠장, 지금 무슨 얘기하고 있는 겁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지.” 그 목소리가 말했다.
하워드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는 부엌으로 가서 위스키를 들이마셨다. 그는 병원에 전화했다. 하지만 아이의 상태는 달라진 게 없었다. 아이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고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욕조에 물을 받는 동안, 하워드는 얼굴에 거품을 바르고 면도를 했다. 그가 욕조에 들어가 발을 뻗고 눈을 감으려는 찰나,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그는 벌떡 일어나 수건을 집어들고 집 안을 가로질러 달려갔다. 병원을 떠난 일을 두고 자신에게 “이 병신!”이라고 소리치며. 하지만 그가 수화기를 들고 “여보세요!”라고 소리쳤을 때, 저편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전화를 건 사람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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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조금 지나서 그는 차를 몰고 병원으로 돌아갔다. 그때까지도 앤은 병상 옆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하워드를 쳐다본 뒤, 다시 아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이는 여전히 눈을 감은 상태였고 머리를 감고 있는 붕대도 그대로였다. 아이의 숨소리는 낮으면서도 규칙적이었다. 병상에 설치된 쇠막대에 걸린 용기에서 튜브를 통해 아이의 팔로 포도당이 흘러들고 있었다.
“좀 어때? 이건 뭐지?” 포도당 용기와 튜브를 가리키며 하워드가 물었다.
“닥터 프랜시스의 지시야. 영양보충이 필요하대. 탈진하면 안 되니까. 그런데 왜 깨어나지 않는 걸까? 괜찮다고 하는데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어.”
하워드는 그녀의 뒷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훑었다. “괜찮아지겠지. 조금 있으면 깨어날 거야. 닥터 프랜시스가 어련히 알아서 하려고.”
잠시 말을 끊었다가 그가 말했다. “당신도 집에 가서 좀 쉬어. 여긴 내가 있을게. 자꾸 전화하는 미친놈이 있는데, 상대하지 말고. 그냥 끊어버려.”
“누군데?” 그녀가 물었다.
“나도 몰라. 그냥 여기저기 전화 거는 일밖에는 할 일이 없는 작자겠지. 어서 가봐.”
그녀는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야. 난 괜찮아.” 그녀가 말했다.
“그러지 말고. 잠깐이라도 집에 갔다 와. 아침에 나랑 교대하면 되잖아. 괜찮을 거야. 닥터 프랜시스가 뭐라고 했어? 스코티는 곧 괜찮아질 거라고 했잖아.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 지금은 푹 자고 있는 중인 거야.”
간호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병상 쪽으로 다가오며 그녀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녀는 이불 밑에서 아이의 왼쪽 손을 잡아 뺀 뒤, 손가락을 대고 맥박을 찾고는 시계를 들여다봤다. 그러고는 팔을 이불 속으로 밀어넣고 병상 발치로 가더니 거기 붙은 클립보드에 뭔가를 기입했다.
“좀 어떤가요?” 앤이 물었다. 하워드는 앤의 어깨를 잡고 있던 손에 지그시 힘을 줬다. 그녀는 그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느꼈다.
“안정적이에요. 선생님이 곧 오실 거예요. 지금 병원에 오셨거든요. 이제 회진을 도실 거예요.” 간호사가 말했다.
“집사람에게 집에 가서 좀 쉬라고 말하던 중이었어요. 하지만 선생님이 다녀가신 다음에 그래야겠군요.” 하워드가 말했다.
“그렇게 하세요. 두 분 다 마음을 편히 가지시는 게 좋을 거예요.” 간호사는 말했다. 간호사는 금발머리에 덩치가 큰 스칸디나비아 출신의 여인이었다. 말에 독특한 억양이 있었다.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들어봐야지. 얘기를 좀 해봤으면 좋겠어.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잠만 잘 수 있는 건지 이해가 안 돼. 이게 좋아지는 건지 뭔지.” 앤이 말했다. 그녀는 손을 눈가로 올리고 잠시 머리를 앞쪽으로 떨궜다. 하워드는 그녀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가 다시 목 쪽으로 옮겨가 거기를 주물렀다.
“몇 분 안에 프랜시스 선생님이 오실 거예요.” 그렇게 말하고 간호사는 병실을 나갔다.
하워드는 잠시 아들을, 이불 밑에서 조용하게 오르내리는 작은 가슴을 바라봤다. 사무실로 앤의 전화가 걸려온 그 몇 분간을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진짜 공포심이 그의 온몸을 감쌌다. 그는 머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스코티는 괜찮다. 집에 있는 침대에서 자는 대신 머리에는 붕대를 칭칭 감고 팔에는 주삿바늘을 꽂은 채 병원에 누워 있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건 나아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일들이다.
병실 안으로 들어온 닥터 프랜시스는 하워드와 악수했다. 헤어진 지 불과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도. 앤은 의자에서 일어섰다. “선생님?”
“예, 일단 아이부터 봅시다.” 고개를 끄덕이며 의사는 말했다. 그는 병상 옆으로 가서 아이의 맥박을 쟀다. 그는 아이의 한쪽 눈꺼풀을 젖혀 들여다본 뒤, 다른 쪽 눈도 살폈다. 하워드와 앤은 의사 옆에 서서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러더니 의사는 이불을 걷고 청진기로 아이의 심장과 폐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아이의 아랫배 여기저기를 손가락으로 눌러봤다. 검진을 마친 그는 침상 끝으로 가서 차트를 들여다봤다. 그는 시간을 살펴보더니 차트에다가 뭔가 휘갈겨 쓴 뒤, 하워드와 앤을 바라봤다.
“선생님, 애는 어떤가요? 도대체 정확하게 문제가 뭡니까?” 하워드가 말했다.
“왜 깨어나지 않는 건가요?” 앤이 말했다.
의사는 그을린 얼굴에 어깨가 떡 벌어진 미남이었다. 그는 줄무늬 넥타이에 아이보리 커프스단추가 달린 푸른색 스리피스 양복을 입고 있었다. 회색 머리칼을 머리 양쪽으로 잘 빗어넘겨서 이제 막 연주회에 갔다 온 사람처럼 보였다. “아이는 괜찮습니다. 정말 좋아지고 있습니다, 라고 기쁘게 소리칠 만한 일은 하나도 없어요. 하지만 괜찮아요. 저 역시 아이가 깨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빨리 의식을 회복하는 게 중요해요. 검사 결과가 두 시간 안에 나올 테니까 그때는 좀더 상세한 상황을 알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아이는 괜찮으니까 저를 믿으세요. 두개골에 실처럼 가는 골절이 있을 뿐이에요. 그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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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앤이 말했다.
“그리고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뇌진탕이 있었구요. 물론 쇼크 상태라는 건 아실 테고. 쇼크의 경우 때로 이런 상황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잠들어 있는 것 말입니다.” 의사가 말했다.
“그럼 이제 위험한 상태는 지난 겁니까? 아까는 혼수상태는 아니라고 하셨잖습니까? 이걸 혼수상태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그렇게 말씀하셨죠?” 그렇게 말한 뒤, 하워드는 대답을 기다리며 의사를 쳐다봤다.
“맞아요. 혼수상태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아요.” 그렇게 말하고 의사는 한 번 더 아이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아주 깊이 잠든 것뿐이에요. 몸이 제 나름대로 회복하는 방법인 거죠. 이제 위험한 상태는 지나왔어요. 분명하게 말하라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깨어나고 다른 검사를 더 받아보면 좀더 분명한 상태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의사가 말했다.
“혼수상태인 거예요.” 앤이 말했다. “뭐라고 다르게 말씀하신다고 해도.”
“아직은 혼수상태가 아니에요, 엄밀하게 말하면. 혼수상태라고 부르고 싶진 않습니다. 아직은, 어쨌든. 쇼크로 힘든 거예요. 쇼크의 경우에 이런 반응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몸에 충격이 왔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시적인 반응이에요. 혼수상태라. 그러니까, 혼수상태라고 부르려면 깨어나지 않는 깊은 무의식 상태가 여러 날, 혹은 몇 주간 지속되어야 합니다. 스코티가 아직 거기까지 간 건 아니에요. 그렇게 부를 만한 상황은 아닙니다. 아침까지는 상태가 좋아질 거라고 저는 확신해요. 그럴 거라고 장담합니다. 어서 깨어나는 게 좋은데, 일단 의식이 돌아오면 더 자세한 것들을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때까지는 여기 있어도 되고 잠깐 집에 다녀오셔도 됩니다. 병원에서 잠깐 나갔다 오는 건 언제라도 가능해요. 쉬운 상황이 아니라는 건 저도 압니다.” 의사는 다시 아이를 쳐다보고 그를 바라보더니, 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머님이 걱정이 너무 많으세요. 저를 믿으세요. 해볼 수 있는 일은 다 할 테니까요. 앞으로 남은 몇 시간에 달린 문제예요.” 그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하워드와 악수한 뒤 병실을 떠났다.
앤은 손으로 아이의 이마를 만졌다. “그래도 열은 없으니까.” 그러더니 말했다. “세상에, 하지만 이건 너무 차갑잖아. 하워드? 얘가 왜 이렇지? 머리 좀 만져봐.”
하워드는 아이의 관자놀이를 만졌다. 그의 호흡이 느려졌다. “그렇게 차가운 건 아냐. 얘는 지금 쇼크 상태야. 알지? 의사가 그렇게 말했잖아. 방금까지 의사가 여기 있었고. 스코티에게 무슨 일이 있었으면 분명히 얘기했을 거라구.” 하워드가 말했다.
앤은 이빨로 입술을 깨물며 잠시 멍청하게 서 있었다. 그러더니 의자로 가서 앉았다.
하워드는 그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둘은 서로를 쳐다봤다. 그녀에게 뭔가 말해주고 싶은데, 그녀를 달래주고 싶은데, 겁이 나는 건 그로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자기 무릎 위로 끌어당겼다. 그렇게 하고 있으니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그는 잡은 손에 힘을 줬다. 그러고는 다시 그냥 잡고만 있었다. 그들은 잠시 그렇게 앉아서 아무 말 없이 아이를 바라봤다. 이따금 그가 잡은 손에 힘을 줬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손을 치웠다.
“기도했어.” 그녀가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도하는 법을 다 잊어버렸다고 생각했었는데, 하니까 또 되네. 기도라고 해봐야 눈을 감고 그저 ‘하느님, 우릴 도와주세요. 스코티를 도와주세요’라고 말한 게 다지만. 그것 빼고는 어려울 게 없으니까. 말이야 다 준비돼 있으니까 당신도 기도하고 싶으면”이라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벌써 했어.” 그가 말했다. “오늘 오후에, 아니, 벌써 어제구나, 당신 전화 받고 병원으로 차 몰고 오는 동안 기도했어. 내내 기도하고 있었어.” 그가 말했다.
“잘했어.” 그녀가 말했다. 처음으로 그녀는 자신들이 이 곤경 속에 함께 있다고 느꼈다. 그녀는 지금까지는 그 곤경이 자신과 스코티에게만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사실을 갑자기 깨달았다. 내내 함께 있으면서 도왔음에도 그녀는 하워드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아내라는 사실이 기뻤다.
아까 그 간호사가 들어와 다시 아이의 맥박을 재고, 병상 위 용기에서 흘러드는 용액의 양을 살펴봤다.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른 의사가 들어왔다. 그는 방사선과에서 온 파슨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콧수염이 무성했다. 그는 로퍼를 신고 웨스턴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내려가봐야 되겠습니다. 사진을 더 찍어야 하거든요.” 그가 두 사람에게 말했다. “사진도 더 찍어야 하고, 스캔도 받아야 하고.”
“뭐라고요?” 앤이 말했다. “스캔?” 그녀는 새로 온 의사와 병상 사이에 섰다. “엑스레이는 이제 찍을 게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더 찍게 돼 죄송합니다만,” 그가 말했다. “걱정할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냥 사진을 좀더 찍어보는 거예요, 또 브레인스캔으로 머릿속을 검사해보려는 것이고요.”
“맙소사.” 앤이 말했다.
“이런 경우에는 정말 항상 하는 일이에요.” 새로 나타난 의사가 말했다. “왜 얘가 여태 깨어나지 않는 건지 그 이유를 좀더 정확하게 알아내려는 것뿐입니다. 병원에서는 늘 하는 일이니까, 절대로 걱정하지 마세요. 몇 분만 있으면 다시 돌아올 거예요.” 그 의사가 말했다.
잠시 후, 간호보조원 두 사람이 바퀴 달린 침대를 끌고 병실로 들어왔다. 검은 머리칼, 짙은 얼굴빛에 하얀 작업복을 입은 두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를 몇 마디 주고받으면서 아이의 몸에 연결된 튜브를 떼고 아이를 바퀴 달린 침대로 옮겼다. 그러더니 두 사람은 그 침대를 밀며 병실을 빠져나갔다. 하워드와 앤은 바퀴 달린 침대를 따라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앤은 아이를 바라봤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기 시작하자, 그녀는 두 눈을 감았다. 보조원 두 사람은 각기 침대의 양쪽 끝에 서서 별다른 말이 없었다. 한 사람이 자기네들 말로 뭐라고 얘기하자, 다른 사람이 알아들었다는 식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것을 빼고는.
이윽고 아침이 찾아와 방사선과 바깥 대기실 창문으로 햇살이 비치기 시작할 무렵, 아이를 데리고 나온 두 사람은 병실로 돌아갔다. 하워드와 앤은 다시 아이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두 사람은 다시 침대 옆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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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종일토록 기다렸으나, 아이는 깨어나지 않았다. 가끔 한 사람이 커피를 마시려고 아래층에 있는 카페테리아에 가기도 했으나, 이내 아이의 일이 떠올라 죄를 짓는 듯한 기분이 들어 테이블을 박차고 허겁지겁 병실로 돌아왔다. 그날 오후 다시 병실을 찾은 닥터 프랜시스는 아이의 상태를 다시 한번 살펴보더니 아이가 잘하고 있는 중이니 곧 깨어날 것이라고 말하고는 병실을 떠났다. 전날 밤에 일하던 간호사들과는 다른 간호사들이 이따금 병실을 찾았다. 그리고 검사실에서 온 젊은 여성이 방문을 두드리고 병실로 들어왔다. 하얀 슬랙스에 하얀색 블라우스를 입은 그녀는 몇 가지 물건이 담긴 작은 쟁반을 들고 와 병상 옆 작은 탁자에 놓았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아이의 팔에서 피를 뽑았다. 그 여자가 아이의 팔에서 핏줄을 찾아 주삿바늘을 찌르자, 하워드는 눈을 감았다.
“이건 또 뭐예요?” 앤이 그 여자에게 물었다.
“담당의사의 지시예요.” 젊은 여자가 대답했다. “저는 시킨 대로 하는 것뿐이에요. 피를 뽑으라고 해서 피를 뽑는 거예요. 그런데 어디가 아픈 거예요? 이렇게 예쁜 애가.”
“차에 치였답니다.” 하워드가 말했다. “뺑소니요.”
젊은 여자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더니 다시 아이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쟁반을 들고 병실을 떠났다.
“애가 왜 깨어나지 않는 걸까?” 앤이 말했다. “이 사람들은 왜 얘기를 안 해주는 거야?”
하워드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다시 의자에 앉더니 다리를 꼬았다. 그러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그는 아들을 한 번 바라본 뒤,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대고 앉아 눈을 감고 잠들었다.
앤은 창가로 걸어가 주차장을 내다봤다. 밤이라 자동차들은 불을 켜고 주차장을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창틀을 꽉 잡은 채 서 있었다. 그녀는 이제 자신들이 다른 어떤 곳, 어떤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무서웠다. 입이 덜덜덜 떨리기 시작하자 그녀는 입을 앙다물었다. 병원 앞에 자동차 한 대가 서자, 긴 코트를 입은 한 여인이 그 차에 올라탔다. 그녀는 그 광경을 지켜봤다. 자신이 그 여자였더라면, 그래서 그게 누구든 자기를 태우고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그러니까 스코티가 기다리고 있다가 자신이 차에서 내리면 “엄마!” 하고 외치면서 품 안으로 뛰어들어오는 곳으로 데려갔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워드가 깨어났다. 그는 다시 아이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의자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켠 뒤, 창가로 걸어가 앤의 곁에 멈춰 섰다. 두 사람은 나란히 주차장을 응시했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이제 서로의 속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치 하도 걱정해서 온몸이 저절로 투명해진 것처럼.
문이 열리고 닥터 프랜시스가 들어왔다. 이번에 그는 다른 양복에 다른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잿빛 머리칼을 양옆으로 잘 빗었으며 막 면도를 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곧장 병상으로 걸어가 아이를 살펴봤다. “지금쯤은 의식이 돌아와야 하는데. 이 경우에는 뭐라고 설명할 방법이 없네요.” 그가 말했다. “어찌 되었건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고 생각해도 좋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이가 정신을 차리면 좀더 나아지겠죠. 지금으로선 왜 깨어나지 않는지 설명할 방법이 정말 없습니다. 금방 깨어날 겁니다. 아, 깨어나게 되면 머리가 엄청나게 아프다고 말할 겁니다. 그건 염두에 두셔야겠어요. 하지만 다른 건 다 괜찮습니다. 아주 정상적이에요.”
“그럼 지금 혼수상태인 건가요?” 앤이 물었다.
의사는 매끄러운 뺨을 손으로 문질렀다. “당분간은 그렇다고 할 수 있겠죠. 곧 깨어나면 달라지겠지만. 어쨌든 지치실 겁니다. 힘든 일이에요. 힘든 일이라는 건 저도 알아요. 나가서 뭘 좀 드세요. 그래야 힘을 내죠. 병실을 지킬 간호사를 하나 부를 테니까 편안한 마음으로 다녀오세요. 가서 뭘 좀 드세요.”
“입맛이 전혀 없어요.” 앤이 말했다.
“그럼 편하신 대로 하세요.” 의사가 말했다. “어쨌든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모든 징후는 좋으며, 모든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왔다는 겁니다. 이상한 건 하나도 없으니까 이제 깨어나기만 하면 모든 고비를 넘긴 거예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하워드가 말했다. 그는 다시 의사와 악수했다. 의사는 하워드의 어깨를 두들기더니 밖으로 나갔다.
“둘 중 한 사람은 집에 가봐야 할 것 같은데.” 하워드가 말했다. “슬러그 녀석 밥도 줘야 하고 말이야.”
“옆집에 전화해요.” 앤이 말했다. “모건네에다. 부탁하면 강아지 밥쯤이야 주겠죠.”
“알았어.” 하워드가 말했다. 그러고는 조금 쉬었다가 말을 이었다. “여보, 당신이 밥을 주고 오면 어때? 가서 집도 좀 둘러보고 다시 오면? 그게 당신에게도 좋을 것 같아. 여기는 내가 지키고 있을 테니까. 진지하게 생각해봐. 힘을 아껴둘 필요가 있는 거니까. 얘가 깨어난 뒤에도 계속 병실을 지켜야만 할 테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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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가지 그래?” 앤이 말했다. “슬러그 밥도 주고. 당신도 좀 먹고.”
“나는 이미 갔다 왔잖아.” 그가 말했다. “정확하게 한 시간 십오 분 동안 집에 있다 왔지. 당신도 한 시간 정도 집에 다녀와서 기운을 좀 차리라구. 그런 다음 병원으로 다시 와.”
그녀는 그 말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노력했지만, 너무 지쳐 있었다. 그녀는 두 눈을 감고 한 번 더 생각해보려고 애썼다. 잠시 뒤 그녀가 말했다. “그래, 잠시 집에 다녀올 수도 있는 거야. 어쩌면 내가 여기 앉아서 눈도 떼지 않고 지켜보기 때문에 이애가 깨어나지 않는 건지도 몰라. 그럴지도 모르지. 내가 여기 없으면 스코티가 깨어날지도. 집에 가서 몸을 좀 씻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슬러그 밥도 주고. 그다음에 돌아오면 되는 거니까.”
“내가 여기 있을게.” 그가 말했다. “당신은 집에 다녀와. 내가 여기서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똑똑히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오랫동안 술을 마신 사람처럼 그의 눈은 작고 충혈돼 있었다. 그의 옷은 구겨져 있었다. 턱에는 다시 수염이 비어져나왔다. 그녀는 손으로 그의 얼굴을 한 번 만졌다. 그가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걱정하는 표정도 보이지 않고, 얼마간이라도 그저 혼자서 보내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그녀는 이해했다. 그녀는 침대 옆 탁자에 놓인 핸드백을 집었다. 그는 외투를 입는 그녀를 도왔다.
“금방 올게.” 그녀가 말했다.
“집에 가서 좀 쉬라구.” 그가 말했다. “배도 채우고. 샤워도 하고. 목욕탕에서 나온 뒤에는 가만히 앉아서 그냥 쉬어. 그렇게 하면 꽤 편해진다는 거 알지? 그런 다음에 돌아와.” 그가 말했다. “걱정은 이제 좀 그만 하기로 하자구. 닥터 프랜시스가 하는 말 들었잖아.”
그녀는 외투를 입고 선 채로 잠시 의사가 정확하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려고 애썼다. 혹시 그가 한 말 중에 어떤 암시가 되는 말이 있었는지, 혹시 넌지시 알려준 것이 있지는 않았는지. 그녀는 의사가 몸을 수그리고 아이를 살펴볼 때 조금이라도 표현이 달라진 게 있었는지 기억하려고 애썼다. 그녀는 아이의 눈꺼풀을 들춰보고 심장 박동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의사가 어떤 표정이었는지 기억해냈다.
그녀는 문까지 걸어갔다가 몸을 돌려 다시 돌아봤다. 그녀는 아이를 바라본 뒤, 애 아빠를 바라봤다. 하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밖으로 걸어나간 그녀는 문을 끌어당겨 닫았다.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찾아 간호사실을 지나 복도 끝까지 쭉 걸었다. 복도 끝에서 그녀는 오른쪽으로 돌아 흑인 일가족이 고리버들 의자에 앉아 있는 작은 대기실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카키색 셔츠와 바지를 입고 야구모자를 뒤로 눌러쓴 중년 남자가 있었다. 실내 드레스와 슬리퍼 차림의 덩치 큰 여자는 구부정하게 의자에 앉아 있었다. 청바지 차림에 여러 갈래 꼬아 묶은 머리 모양의 십대 여자애는 발목을 교차시킨 채 의자에 거의 눕듯이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앤이 대기실로 들어서자, 그 가족들의 눈동자가 앤을 향했다. 작은 탁자 위에는 햄버거 포장지와 스티로폼 컵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프랭클린.” 덩치 큰 여자가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프랭클린 때문에 온 건가요?” 그녀의 눈동자가 커졌다. “무슨 일이에요?” 그 여자가 말했다. “프랭클린 때문인가요?”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려고 하자 남자가 여자의 팔뚝으로 손을 가져갔다.
“침착해, 에벌린.” 그가 말했다.
“미안합니다.” 앤이 말했다. “저는 엘리베이터를 찾고 있어요. 제 아들이 병원에 있는데, 지금 엘리베이터를 찾을 수가 없어요.”
“엘리베이터는 그쪽으로 쭉 가서 왼쪽으로 돌면 나와요.”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그 남자가 말했다.
여자애는 담배 연기를 빨아당기고 앤을 바라봤다. 그애의 눈이 찢어질 듯 가늘어지는가 싶더니 두툼한 입술이 천천히 벌어지며 연기가 빠져나왔다. 흑인 여자는 고개를 떨구고 더이상 흥미가 없다는 듯 앤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제 아들은 차에 치였어요.” 앤이 남자에게 말했다. 앤은 뭔가 설명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뇌진탕이 있어서 두개골이 조금 골절됐는데,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군요. 지금은 쇼크 상태에 빠졌는데요, 말하자면 혼수상태라고도 할 수 있죠. 우리가 걱정하는 건 그거예요. 혼수상태. 저는 지금 잠깐 나갔다 오려고 하구요, 남편이 애하고 같이 있어요. 제가 올 때쯤에는 아마 아들이 정신을 차리겠죠.”
“안됐습니다”라고 말하며 그 남자는 앉은 자세를 조금 바꿨다.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탁자를 내려다보더니 다시 앤을 바라봤다. 그녀는 여전히 거기에 서 있었다. 그가 말했다. “우리 프랭클린은 지금 수술대 위에 있어요. 어떤 사람이 칼로 찔렀습니다. 죽이려고 했죠. 싸움에 휘말렸어요. 파티에서 말이죠. 사람들 말로는 우리 애는 그냥 서서 구경만 하고 있었대요. 어느 한쪽을 괴롭힌 것도 아니고. 이런 말을 아무리 떠들어봐야 요새는 소용없어요. 그 녀석은 지금 수술대에 누워 있어요. 그저 기도하고 잘되기를 바라는 것 빼고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지요.” 그는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앤은 여자애를 다시 쳐다봤다. 그애는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앤은 두 눈을 감고 머리를 뒤로 젖힌 채 앉아 있는 나이 든 여자를 바라봤다. 앤은 그 입술이 소리 없이 움직이며 말을 하는 것을 봤다. 앤은 그게 무슨 말인지 알고 싶은 강한 욕구를 느꼈다. 그녀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기다림이라는 상황에 처한 이 사람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녀도 두려웠고, 그들도 두려웠다. 모두 두려움 속에 있었다. 그녀는 그 사고에 대해 더 많은 얘기를 하고 싶었다. 스코티가 어떤 아이였는지 그들에게 더 얘기하고, 또 사고가 월요일, 그러니까 그애의 생일에 일어났다는 것을, 그런데 그애는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그들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녀는 그 남자가 가리킨 복도를 따라 걸어가다 엘리베이터를 발견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하는 행동이 올바른 것인지 곱씹으면서 닫힌 문 앞에서 일 분 정도 기다렸다. 그리고 손가락을 내밀어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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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진입로로 들어선 뒤 엔진을 껐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잠시 운전대에 고개를 숙이고 기댔다. 그녀는 식어가는 엔진에서 탁탁거리며 들려오는 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그리고 자동차 바깥으로 나왔다. 집 안에서 개가 짖어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앞문으로 걸어갔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그녀는 안으로 들어가 불을 켜고 차를 마시기 위해 주전자를 불 위에 올렸다. 그녀는 개밥 봉지를 열어 뒷베란다에서 슬러그에게 밥을 줬다. 개는 쩝쩝 소리를 내면서 굶주린 듯 밥을 먹었다. 개는 밥을 먹다가도 그녀가 계속 있는지 보려고 부엌으로 달려오곤 했다. 그녀가 차를 들고 소파에 앉았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예!”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와이스 부인 되십니까?” 남자 목소리였다. 그때가 새벽 다섯시였는데, 전화기에서 무슨 기계나 장비 같은 것이 작동하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예, 예! 무슨 일이죠?” 그녀가 말했다. “제가 와이스 부인이에요. 접니다. 무슨 일인가요, 예?” 그녀는 전화기의 그 소음에 귀를 기울였다. “스코티 얘기인가요? 그런가요?”
“스코티 맞습니다.” 남자의 목소리가 말했다. “스코티 얘기요, 그래요. 스코티랑 관계가 있죠, 그 문제는. 스코티 일은 잊어버리셨소?” 남자가 말했다. 그러더니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병원 전화번호를 눌러 삼층을 부탁했다. 그녀는 전화를 받은 간호사에게 아들에 대한 소식을 알려달라고 했다. 그다음에 그녀는 남편을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아주 급해요, 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기다리면서 손가락으로 전화기 줄을 꼬았다. 눈을 감자, 속이 메슥거렸다. 뭔가를 먹기는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슬러그가 뒷베란다에서 들어와 그녀의 발치 근처에 누웠다. 슬러그는 꼬리를 흔들었다. 그녀가 귀를 잡아당기자, 개는 그녀의 손가락을 핥았다. 하워드가 전화를 받았다.
“어떤 사람이 집에 전화를 걸었어.” 그녀가 말하면서 전화기 줄을 꼬았다. “스코티에 관해 할 얘기가 있다고 했어.” 그녀가 소리쳤다.
“스코티는 괜찮아.” 하워드가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그대로 자고 있다고. 달라진 건 없어. 당신이 떠난 뒤에 간호사가 두 번 찾아왔어. 간호사였는지, 의사였는지 암튼. 애는 괜찮아.”
“그 남자가 전화했어. 스코티에 관해 할 얘기가 있다고 했다구.” 그녀가 그에게 말했다.
“여보, 좀 쉬어. 당신은 휴식이 필요해. 나한테 전화했던 그 남자일 거야. 잊어버려. 여기 오기 전에 좀 쉬라고. 그다음에 아침을 먹도록 하자.”
“아침이라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아침 안 먹어도 괜찮아.”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거 잘 알잖아.” 그가 말했다. “주스나 그런 것 말이야. 나도 모르겠어.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앤. 젠장, 나도 하나도 배고프지 않아. 앤, 지금은 얘기하는 것도 너무 힘들어. 나 지금 여기 책상 앞에 서 있어. 아침 여덟시에 닥터 프랜시스가 다시 오기로 했어. 그때는 우리한테 좀더 자세하게 얘기해줄 거야. 세세하게 말이야. 어떤 간호사가 그렇게 얘기했어. 그 간호사도 그것밖에는 모른대. 앤? 여보, 그때 가면 우리도 자세히 알게 될 거야. 여덟시에. 여덟시 전에 와. 어쨌든 나는 여기 있고 스코티는 괜찮아. 아까랑 똑같아.” 그가 덧붙였다.
“차를 마시고 있었어.” 그녀가 말했다. “그런데 전화벨이 울린 거야. 스코티에 관해 할 얘기가 있다고 했어. 전화기에서는 무슨 잡음 같은 게 들렸어. 당신이 받은 전화에서도 그런 잡음이 들렸어? 응, 하워드?”
“기억 안 나.” 그가 말했다. “그 차를 몰았던 사람이겠지. 정신병자인데 스코티에 대해서 뭔가 알게 된 모양이지. 어쨌든 스코티와 난 여기 있어. 그러니까 원래 하려고 했던 대로 좀 쉬라구. 몸을 좀 씻은 뒤에 일곱시 정도에 다시 와. 의사가 오면 함께 들어야 할 테니까. 다 잘되고 있어, 여보. 내가 지키고 있고 여기에는 의사하고 간호사들이 많아. 그 사람들 말이 애 상태는 안정적이래.”
“무서워 죽을 것 같아.”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물을 받은 뒤, 옷을 벗고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재빨리 몸을 씻은 뒤 머리를 말릴 틈도 없이 물기를 털어냈다. 그녀는 깨끗한 속옷과 면바지와 스웨터를 입었다. 그녀가 거실로 들어가자, 개는 그녀를 보면서 꼬리로 바닥을 한 번 쳤다. 그녀가 자동차로 걸어갈 즈음에는 사위가 밝아오고 있었다.
그녀는 병원 주차장으로 들어가다가 현관 근처에 비어 있는 공간을 발견했다. 그녀는 아이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 데는 막연하나마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느꼈다. 그녀는 흑인 가족을 떠올렸다. 그녀는 프랭클린이라는 이름과 햄버거 포장지로 뒤덮여 있던 탁자와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며 그녀를 바라보던 십대 여자애를 기억했다. “아이를 갖지 마.” 병원 현관으로 들어서면서 그녀는 머릿속에 떠오른 그 여자애에게 말했다. “정말이야, 갖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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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막 근무를 시작한 간호사 두 명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삼층으로 올라갔다. 수요일 오전 일곱시 정각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각이었다. 삼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닥터 매디슨을 호출하는 방송이 들렸다. 그녀는 간호사들을 따라 내렸다. 그 간호사들은 그녀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바람에 멈췄던 대화를 계속하면서 다른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복도를 따라 흑인 일가족이 기다리고 있던 작은 방 앞까지 걸어갔다. 그들은 보이지 않았고, 불과 몇 분 전에 허겁지겁 떠난 것처럼 의자들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탁자 위에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컵과 종이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재떨이에는 꽁초가 가득했다.
그녀는 간호사실 앞에 멈춰 섰다. 한 간호사가 카운터 뒤에 서서 하품을 하며 머리를 빗고 있었다.
“어젯밤에 수술받은 흑인 아이가 하나 있었죠.” 앤이 말했다. “프랭클린이라는 이름이었는데. 가족들은 대기실에 있었구요. 그 아이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서요.”
카운터 뒤 책상에 앉아 있던 간호사가 얼굴을 파묻고 들여다보던 차트에서 시선을 떼고 올려다봤다. 전화벨이 울리자 그녀는 수화기를 들었지만 시선만은 앤에게서 떼지 않았다.
“그 아이는 죽었어요.” 카운터에 서 있던 간호사가 말했다. 간호사는 빗을 든 채 그녀를 계속 쳐다봤다. “그 아이의 가족과 잘 아시는 분인가요?”
“어젯밤에 그 가족을 만났거든요.” 앤이 말했다. “제 아들도 병원에 있어요. 쇼크 상태인 것 같아요. 뭐가 잘못됐는지 우리는 몰라요. 그냥 프랭클린 일이 궁금했을 뿐이에요. 고맙습니다.” 그녀는 복도를 따라 걸었다. 벽과 색깔이 같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하얀 바지에 하얀 캔버스 운동화를 신은, 수척한 대머리 남자가 엘리베이터에서 무겁게 카트를 밀었다. 거기에 문이 있다는 사실을 어젯밤에는 알지 못했다. 엘리베이터 바깥으로 카트를 밀고 나온 남자는 엘리베이터에서 가장 가까운 병실 앞에 멈춰 서더니 지시판을 참조했다. 그러더니 몸을 수그려 카트에서 쟁반 하나를 끌어냈다. 그는 문을 가볍게 두드리고는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카트 옆을 지나가는 동안, 그녀는 데워진 음식에서 나오는 불쾌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녀는 그 어떤 간호사들에게도 눈길을 돌리지 않고 서둘러 걸어가 아이가 있는 병실의 문을 밀었다.
하워드는 뒷짐을 진 채 창가에 서 있었다. 그녀가 들어가자, 그는 돌아섰다.
“애는 어때요?” 그녀가 물었다. 그녀는 병상 쪽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침대 옆에 놓인 탁자 옆 바닥에 핸드백을 떨어뜨렸다. 그녀는 자신이 아주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아이의 얼굴을 만졌다. “여보?”
“닥터 프랜시스가 조금 전에 다녀갔어.” 하워드가 말했다. 그녀는 그를 자세히 살펴보고는 어깨가 좀 처졌다고 생각했다.
“오늘 아침 여덟시에 온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녀가 바로 말했다.
“다른 의사하고 함께 왔어. 신경과 의사.”
“신경과 의사라고.” 그녀가 말했다.
하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축 늘어지고 있는 그의 어깨를 그녀는 볼 수 있었다. “그 사람들이 뭐라고 했어, 하워드? 제발 말해봐. 도대체 뭐래?”
“그 사람들은 얘를 데리고 가서 몇 가지 검사를 더 해봐야겠다고 말했어, 앤. 수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 여보. 여보, 수술을 할 거라구. 얘가 왜 정신을 못 차리는지 자기들도 모른대. 쇼크나 뇌진탕 이상의 뭔가라는 건데, 이제 그 정도만 알게 된 거지. 두개골 안에 말이야, 골절이, 그러니까 뭔가가, 해결해야만 하는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래서 그 사람들은 수술을 하려고 해. 당신과 통화하려고 했는데, 벌써 집을 나선 뒤였던 모양이야.”
“오, 하느님.” 그녀가 말했다. “안 돼, 하워드. 안 돼.” 그의 팔을 잡으며 그녀가 말했다.
“저기 봐!” 하워드가 말했다. “스코티! 저기 봐, 앤!” 그는 그녀의 몸을 병상 쪽으로 돌렸다.
아이는 두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 아이는 다시 두 눈을 떴다. 일 분 정도 앞쪽만 바라보던 눈동자는 천천히 움직이다 하워드와 앤을 향해서 잠시 멈췄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코티.” 병상 쪽으로 다가가며 애 엄마가 말했다.
“얘야, 스코티.” 아빠가 말했다. “이 녀석아.”
그들은 병상으로 몸을 기울였다. 하워드는 아이의 손을 잡고 두드리다가 꽉 움켜잡았다. 앤은 몸을 굽혀 아이의 이마에 몇 번이고 입을 맞췄다. 그녀는 두 손으로 아이의 양쪽 뺨을 감쌌다. “스코티, 착하지. 엄마 아빠야.” 그녀가 말했다. “스코티?”
아이는 그들을 바라봤지만, 알아본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입이 벌어지는가 싶더니 두 눈은 굳게 감겼고, 폐 속에 더이상 숨이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아이는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 아이의 얼굴은 편안해졌다. 아이의 입술이 벌어지면서 마지막 숨이 목구멍을 지나 앙다문 이빨 사이로 천천히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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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은 이를 히든 오클루전*이라고 불렀는데, 백만 명당 한 명꼴로 발생하는 특이증상이라고 했다. 그 사실을 재빨리 알아차리고 즉시 조치를 취했더라면 아이를 살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매우 당연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어쨌든 찾아본다고 한들 그들이 뭘 찾을 수 있었겠는가? 검사에도, 엑스레이에도 나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닥터 프랜시스는 풀이 잔뜩 꺾여 있었다. “제 마음이 지금 어떤지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너무너무 죄송합니다만, 이런 말로도 부족합니다.” 그들을 의사 대기실 안으로 이끌며 그가 말했다. 다른 의자에 두 다리를 걸친 채 오전에 방영하는 TV 쇼를 시청하는 의사 한 명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분만실용 옷, 그러니까 헐렁한 초록색 바지에 초록색 상의, 그리고 초록색 수술모자 차림이었다. 그는 하워드와 앤을 쳐다본 뒤, 닥터 프랜시스를 바라봤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텔레비전을 끄고 방에서 나갔다. 닥터 프랜시스는 소파로 앤을 안내한 뒤, 그녀의 옆에 앉아 위로의 마음을 담은 낮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어느 시점에 이르자 그는 몸을 내밀어 그녀를 안았다. 그녀는 자신의 어깨에 닿은 채 조용히 오르내리는 그의 가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눈을 뜬 채로 그가 자신을 안도록 내버려뒀다. 하워드는 화장실로 들어갔으나, 문을 열어둔 상태였다. 그는 한 번 격렬하게 통곡하더니 물을 틀고 얼굴을 씻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전화기가 놓인 작은 탁자 앞에 앉았다. 그는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뭔지 생각하는 사람처럼 전화기를 바라봤다. 그는 몇 군데 전화를 걸었다. 조금 있다가 닥터 프랜시스가 그 전화기를 사용했다.
“이제 제가 도와드릴 일은 없습니까?” 그가 물었다.
하워드는 고개를 저었다. 앤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듯 닥터 프랜시스를 쳐다봤다.
의사는 그들을 따라 병원 현관까지 걸어갔다. 사람들은 병원으로 들어오거나 병원을 나서고 있었다. 오전 열한시였다. 앤은 자신의 두 다리가 너무나 천천히, 거의 마지못해 움직인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자신들은 마땅히 병원에 있어야 하는데, 병원에 있는 게 더 옳은 일인데, 닥터 프랜시스는 자신들을 보내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주차장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병원 현관을 돌아봤다. 그녀는 머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안 돼, 안 돼요.” 그녀는 말했다. “이렇게 놔두고 갈 순 없어. 안 돼.” 그렇게 말하는 자신을 보며 그녀는 자기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 고작 폭력이나 갑작스런 죽음 앞에서 넋이 빠진 사람들이 나오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나 사용된다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기 자신의 말을 원했다. “안 돼”라고 그녀는 말했고, 어떤 이유에선가 축 늘어지던 흑인 여자의 머리통이 떠올랐다. “안 돼.” 그녀가 다시 말했다.
“이따가 말씀드리겠지만,” 의사가 하워드에게 말하고 있었다. “몇 가지 일들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아직 만족스럽게 파악되지 않은, 몇 가지 일들이 있어요. 우리가 좀더 명확히 알아야만 하는 일들 말입니다.”
“부검이겠지.” 하워드가 말했다.
닥터 프랜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해요.” 하워드가 말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아, 하느님 맙소사. 아니야, 이해하긴 뭘 이해해, 의사 선생. 나는 이해 못해요. 이해 못해요. 절대로 이해 못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