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언제나 절망을 몰아낸다. 하얀등대족은 모든 고양이들의 희망이었다. 활화산 비슈오탕산이 있는 간니섬은 아름다운 화산섬이었다. 밤에는 멀리서도 빨간 용암을 볼 수 있고 낮엔 검은 화산암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하얗게 보여 하얀등대섬이라 불렸다. 더군다나 아주 드문 예외가 있긴 해도 하얀등대족은 대부분 흰 고양이였다. 초록나뭇잎 사이로 팔색조나 빨간 앵무가 날고 고동색 나무 뿌리와 이끼 낀 카키색 바위 위로 하얀등대족이 지나가면 정말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하얀등대족은 한 고양이도 빼지 않고 다 이름이 있었다. 우리도 그걸 본받아 아빠 엄마가 이름을 지어준 것이다. 사실 내가 좀 창피하게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내 이름 죠죠는 오래전 하얀등대족의 왕 이름이었다. 그래서 내 이름을 누가 물었을 때 “나는 죠죠입니다” 하고 대답하는 게 여간 쑥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어쨌든 하얀등대족은 모두 다 이름이 있었던 반면에 대부분의 도둑고양이들은 이름 없이 그냥 닝수라고 불렸다. 닝수는 떠돌이란 뜻이다. 이름이 있는 고양이라도 하는 일 없이 만날 빈둥거리기만 하면 ‘닝수’라고 불렀다. 그래서 “닝수 같아”, “닝수 같은 고양이”, 이런 말은 나쁜 말에 속했으며 하얀등대족 사이에서는 절대 그런 말은 쓸 수가 없었다. 하얀등대족은 명예를 가장 높은 덕목으로 쳤다.
하얀등대족 새끼고양이들은 태어난 지 일주일만 지나면 걸음걸이를 배웠으며 예절에 대해서도 배웠는데 고양이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꽃, 나무, 새, 풀벌레와 구름, 파도에게도 예의를 갖추도록 교육받았다. 다른 족속들과는 다른 하얀등대족들만의 행동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데 그중에서도 제일 눈에 띄는 것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는 스트레칭이다. 대부분의 고양이들은 앞발을 최대한 앞으로 하고 등뼈를 아래쪽으로 휘게 하여 스트레칭을 하는 반면에 하얀등대족은 네 발을 가까이 모으고 척추의 중간 부분을 하늘로 치솟게 하여 곱사등이같이 스트레칭을 했다.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스트레칭을 하고 있으면 마치 발레를 하는 것 같았다.
하얀등대족이 모든 고양이의 희망인 것은 단지 그들의 걸음걸이가 우아하고 명예를 존중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들에겐 내일이 있었다. 대부분의 다른 고양이들은 오늘을 살지만 하얀등대족은 내일을 위해 살았다. 그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오래된 격언 중에 “오늘은 단지 내일의 종일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하얀등대족은 미래를 꿈꾸며 살았다. 비슈오탕산이 폭발해서 섬의 절반 이상이 불바다가 되었어도 그들은 절망하지 않았다. 그들의 목을 똑바로 세운 우아한 포즈는 먹잇감을 바라보는 자세라기보다는 내일을 바라다보는 자세라는 게 옳다.
그러나 아름다운 간니섬과 멜론상자 하나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이 쓰레기산과는 환경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벌써 사흘을 아무 것도 못 먹었는데 내일을 살라는 건 우리에겐 무리였다. 아치 형이 개미를 핥았는데 혀를 물렸는지 퉤퉤거리며 괴로워했다. 여름 해는 점점 뜨거워지고 멜론상자 안은 열기로 꽉 차 있어 마치 공기가 붉은색인 것 같았다. 나는 더워서 밖으로 나왔다. 그늘진 주택가 담장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걷지도 않으면 허기가 나를 뜯어먹을 것 같았다. 담장 너머에선 커다란 개가 마구 짖고 있었다. 그러나 그 소리도 아련하게 들렸다.
“아빠, 아빠…”
왜 불렀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아빠를 부르고 있었다.
그때 눈앞에 까만 생쥐 한 마리가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나타났다. 크기는 내 앞발 두 개를 합쳐놓은 것만 하고 기름이 잘잘 흐르는 아주 먹음직스런 생쥐였다. 쥐 사냥은 원래는 발로 하는데 나는 일격에 제압을 하고 싶어 입을 크게 벌리고 목덜미 부분으로 몸을 날렸다.
“꽈당!”
앞니가 무엇에 심하게 부딪히는 것 같았다. 정신을 수습해서 자세히 보니 이 쥐는 꼬리가 없었다. 꼬리만 없는 게 아니라 털도 없는 민둥산이었다. 내가 덥석 문 것은 주먹만 한 까만 돌멩이였다. 시큼시큼하고 흔들거리는 앞니는 바람이 불 때마다 심하게 아팠다. 나는 계속 ‘아빠’를 부르며 걸었다. 담장의 덩굴장미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꽃이 참 아름다웠다. 하얀등대족이 꽃을 만나면 하는 인사가 있다.
“메로 뿌슈!”
‘메로 뿌슈’는 ‘꽃님 안녕’이란 뜻이다.
나는 그 덩굴장미 담장이 끝날 때까지 고개를 들지도 않고 나지막하게 ‘메로 뿌슈, 메로 뿌슈’ 하며 걸었다. 얼마를 걸었을까. 갑자기 세상이 하얘지며 나는 정신을 잃었다. 누가 나를 데리고 왔는지 눈을 떠보니 애견천국이었다.
나는 링거액을 맞고 있었다.
“아이고, 저 고양이 살아났네.”
개들이 마구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사흘 동안이나 죽은 것같이 있더니 정말 다행이다.”
‘내가 여기 사흘이나 있었단 말야?’
나는 허겁지겁 집으로 향해 달렸다. 어찌 된 건지 기운이 펄펄 솟았다. 아치 형과 슈슈 누나가 얼마나 걱정을 했을까 하고 생각하니 빈손으로 집에 간다는 것이 너무 미안했다. 그래도 이렇게 멀쩡한 모습이라도 빨리 보여줘야겠다 싶어 마구 달렸다. 이제 담장 하나만 돌아서면 바로 멜론상자가 있는 쓰레기산이다. 근데 담장을 돌아서니 쓰레기산은 사라지고 포크레인이 커다란 웅덩이를 파고 있었다.
나는 맥이 쭉 빠졌다. 형하고 누나는 어디로 갔을까?
“아치 형! 슈슈 누나!”
울음 섞인 내 목소리가 골목 담장 사이에 청보랏빛으로 울렸다.
아치 형과 슈슈 누나를 부르며 걸어가는데 길모퉁이에서 또 다른 고양이가 아치 형과 슈슈 누나 이름을 번갈아 부르며 땅을 막 파고 있었다. 앞 발톱은 다 빠져서 피가 흐르고 풀을 뜯어먹어서 입에선 풀 냄새가 풀풀 났다. 엄마였다! 엄마는 레티나가 돼 있었다. 레티나는 미친 고양이라는 뜻이다. 미친 고양이는 풀을 뜯어먹는다. 눈은 빨갛게 변해 있었고 엄마는 나도 알아보지 못했다. 계속 “아치야! 슈슈야!” 하면서 땅만 팠다. 아주 구슬픈 노래 같았다. 나는 그 소리를 뒤로하고 걷기 시작했다. 엄마는 늘 누구나 떠나온 곳으로 돌아간다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내가 떠나온 곳을 모르겠다. 걸으면 걸을수록 가까이 가는 게 아니라 무엇인가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내 이름을 아는 고양이는 없다. 나는 나 죠죠로부터 아주 멀리 떠나갔다. 나는 이름 없는 고양이가 되었다.
이름이 없어지자 마치 투명 고양이가 된 것 같았다. 전에는 모든 것이 죠죠의 것이었다. 죠죠의 아침, 죠죠의 작은 소나무, 죠죠의 슬픔과 기쁨. 그러나 이제는 죠죠와 상관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투명 고양이 죠죠는 마치 누구 눈에도 안 보이는 것처럼 아무데나 쓰러졌다. 차가 마구 달리고 행인들이 지나다니는 거리의 가로등 뿌리에 누웠다. 죠죠는 이내 땅으로 스며들듯 잠이 들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차가운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갈래진 털 사이로 보이는 속살은 분홍빛이 아니라 연회색이었다. 주마등처럼 내 발을 탐내던 햇살과 놀던 날. 글롬 형 차지였던 젖을 빨던 행복한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죠죠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커다란 트럭이 지나가며 물탕을 튀겼다. 흠뻑 젖은 몸은 오히려 그 흙탕물을 비웃었다. 죠죠는 일어나려고 해보았다. 그러나 몸은 땅에 지남철처럼 붙어 있었다. 투명 고양이는 보통 고양이보다 더 가벼운 게 아니라 수십 배, 수백 배 더 무거운 것 같았다. 그때 누가 부르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죠죠야, 죠죠야.”
하늘을 향해 있던 오른쪽 귀는 빗물이 들어갔는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먹먹했는데 땅 쪽을 향하고 있는 왼쪽 귀로 가늘게 소리가 들렸다. 마치 땅속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그 소리는 어떤 힘 같았다. 꼼짝도 하지 않던 발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죠죠야, 죠죠야.”
새벽빛이 담과 담 사이를 가르자 그 소리는 더 선명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소리가 나는 담 쪽을 올려다보니 ‘바보, 멍청이, 준희와 세영 얼레리꼴레리’ 그런 낙서만 웃고 있었다. 죠죠는 그 소리를 따라 언덕길로 계속 걸었다. 주택가가 거의 끝나는 곳, 파밭이 있고 그 주위에 호박덩굴이 얽혀 있는 축대 위에 마치 동상처럼 서서 밤새 죠죠를 부른 건 아빠 쿠쿠였다. 아빠도 밤새 내린 비에 흠뻑 젖어 있었다.
“죠죠야, 다 젖었구나. 이리 오너라.”
아빠는 죠죠의 눈 주위만 대충 닦아주고 앞서서 걷기 시작했다. 밝아오는 세상과는 반대로 숲속은 점점 어두워갔다.
“죠죠야, 이제부터 너는 숲에서 살아가야 한다. 모든 것이 불편하겠지만 이름을 잃고 사는 것보다 외로운 것은 없단다. 숲에선 이름을 간직하고 살 수가 있지. 그리고 아주 말라비틀어진 것이 아니라면 풍뎅이도 먹을 만하고…”
아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걸었다. 죠죠는 뒤따라 걸으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고사리가 초록 잎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죠죠, 안녕?”
거미가 이슬 맺힌 거미줄을 흔들 때마다 작은 무지개들이 숲속에 뿌려졌다.
“우리 거미들은 원래 고독하게 태어나지만 숲속에선 외롭지 않아. 숲속의 나방은 어찌나 힘이 센지 거미줄을 엉망으로 만들어놓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야. 그거 수리하려면 며칠씩 걸리지. 하여튼 쉴 틈이 없어.”
처음 들어설 때는 숲속이 어둡게만 느껴졌는데 조금 걷다 보니 숲속엔 다른 빛이 가득 차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숲속에는 혼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부전나비 떼가 우르르 지나갔다. 제비꽃 꽃잎이 바람에 흩어지는 것 같았다. 아직 덜 익은 도토리가 발 앞에 굴러 떨어졌다. 또르르 굴러가는 도토리가 마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 같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푸른 하늘이 나뭇잎 사이로 죠죠를 찾고 있었다. 죠죠는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숲으로, 숲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