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me fall
Let me fall.
Let me climb.
There’s a moment when fear
And dreams must collide.
Someone I am
is waiting for courage.
The one I want,
The one I will become
Will catch me.
So, let me fall,
(하략)
나를 떨어지게 내버려두세요.
나를 오르게도 내버려두세요.
두려움과 꿈은
부딪쳐야만 하는 순간이 있지요.
내 안의 또 다른 누군가는
용기를 기다려요.
내가 원하는 그 사람,
언젠가 내가 될 바로 그 사람이,
나를 잡아줄 거예요.
그러니, 나를 그냥 떨어지게 내버려두세요.
(하략)
‘태양의 서커스’ <퀴담>(Cirque du Soleil - Quidam) 중에서
ⓒ 양수영
그런 줄? 그럴 줄!
다시 태어나면 어떤 사람일래? 라는 질문과 종종 맞닥뜨릴 때가 있다. 타고난 냉소라 누가 다시 태어난대? 라는 반문으로 일단 상대를 찌르고 보는 싸가지라지만 그래도 속으로는 곰곰 구색을 맞춰볼 때가 있다. 그렇게 상상일 때면 나는 집시처럼 떠도는 서커스단의 작고 어린 소녀로 분하곤 한다. 살이란 살은 죄다 유연함에 발려버리고 가녀린 뼈마디는 오로지 바람에 의지한 채 땅으로 곤두박질치다 아슬아슬 다시금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그 자유로움이야말로 새를 닮은 까닭이다.
오디오 볼륨을 높여본다. 몇 년 전 내한공연을 가졌던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의 ‘퀴담(Quidam, 익명의 행인이라는 뜻의 라틴어)’ OST 앨범이다. 不通에서의 通으로라는 큰 주제 속에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 환상적인 무대며, 규모며, 의상이며, 음악이며, 기예며… 인간이 무대 위에서 몸을 부려 행할 수 있는 종합 예술의 극치는 예 있지 않을까 하였는데, 그래서 이를 보러 LA행 비행기라도 타야 하나 소원을 빌어 왔던 터였는데, 서울 한복판에서 볼 수 있다니 해서 거금 20만원이나 주고 VIP 좌석을 예약한 이유 중에 으뜸은 다름 아닌 한 여자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Let me fall’이라는 노래와 함께 붉은 실크 줄에 매달린 그 여자를 보기 위해서였다.
이 여자, 나를 그냥 떨어지게 내버려두라더니 나를 그냥 오르게도 내버려두라고 한다. 노래가 시작될라치면 공중에서 스르르 온몸에 줄을 감은 여자가 미끄러져 내려온다. 고로 여자의 운명은 줄이 되는 셈이다. 놓치면 죽고 잡으면 산다. 그렇다고 억지로 철봉에 매달린 아이처럼 아등바등 그런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온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몸짓으로 여자는 춤을 춘다. 꽃 같다. 아니 꽃이다. 보다 치열하고 열정적인 춤사위일 때 꽃잎은 더욱 진한 농도를 자랑하듯 이러한 피고 지고 나고 감을 경험해가는 과정 속에 여자는 한껏 무르익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친구는 너무 빨랐다.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그 줄이란 거 잡느니 놓았을까 하면서도 아니다, 아니라며 속으로 내내 친구를 나무랐다. 결혼을 한 달 앞두고서 헤어지자는 남자 때문에 생을 놓다니, 바보! 진짜 아파서 내뱉고 만 말이었다. 왜 친구는 저를 버리는 것으로 사랑이 완성된다고 믿은 걸까. 저 없이 무슨 사랑이라고, 사랑은 내가 너를 사랑할 때만이 곧 사랑이거늘.
세계 제일의 고공 줄타기 명수인 필립 프리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지. 줄타기에서 줄 위를 그저 걷는 것보다 더 아름답고 중요한 묘기는 없다고. 친구가 곁에 있었다면 비유컨대 나도 그랬을 텐데, 줄 매달리기에서 줄 위에 그저 매달리는 것보다 더 아름답고 중요한 묘기는 없다고.
서울역을 지나오는데 맞은편 통유리로 된 고층건물 꼭대기에 두 개의 줄이 나란히 드리워져 있다. 그에 몸을 매단 두 명의 청소부가 유리를 닦는 중이다. 이보다 더 아름답고 중요한 묘기가 또 어디 있으랴. 참으로 성스럽다할 삶, 그 묘기대행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