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맞춤
다니카와 슌타로
그녀는 다른 사내의 냄새를 풍기고 돌아왔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입 맞출 수 없었다
그러다가 둘은 태양의 열기가 남아 있는 이불 속에 들어갔다
그날은 하루 종일 날씨가 좋았다
그래도 나는 입 맞출 수 없었다
그녀는 자기 가슴을 내 가슴에 갖다 대었다
하지만 나는 할 수 없었다
그녀가 다른 사람처럼 여겨졌다
두 사람이 만나기 전 같았다
아직 내가 그녀의 거기를 몰라서
일요일에는 혼자서 낚시를 다니던 무렵 같았다
저 조그만 늪가에서 겨울의 희미한 햇빛을 바라보며
누군가 만나기를 기다리던 무렵 같았다
나는 두려웠다
그래도 나는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새 잠이 들어버렸다
커다란 초원과 같은 밤이다
달려도 달려도 언제까지 달려도
『이십억 광년의 고독』에서 전재. (다니카와 슌타로, 문학과지성사, 2009)
ⓒ 양수영
달려도 달려도 언제까지나 입맞춤
*
그는 다른 여자의 냄새를 풍기고 돌아왔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입 맞출 수 없었다. 그는 이를 닦고 오면 되지 않겠냐며 칫솔에 치약을 묻혔다. 그래도 나는 그에게 입 맞출 수 없었다. 그가 다른 사람처럼 여겨졌다. 나는 두려웠다. 그래도 나는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새 잠이 들어버렸다.
*
나는 철봉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자전거를 타고 뱅글뱅글 운동장을 돌던 짝꿍 녀석이 내 앞에 탁 멈춰 선다. 그러고는 꽤 은밀한 손짓으로 나를 부른다. 나 따라오면 재미난 구경하지. 정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녀석의 자전거 뒷자리에 홀랑 올라탄다. 자전거 바퀴살이 학교 후문 쪽 푸세식 화장실 앞에서 점점이 느려진다. 뭐야, 여기서 내리라고? 잠시 후 녀석은 살금살금 고양이걸음으로 칸칸이 화장실 중 하나의 문을 벌컥 열어젖힌다. 놀랍게도 그 안에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 남녀가 들어차 있다. 똥이 덕지덕지 묻은 변기를 사이에 둔 채 그들은 발이 빠지거나말거나 냄새가 배거나말거나 서로의 상체를 꼭 끌어안은 채 입맞춤 삼매경이다. 갈 곳이 없었거나 정말 급했거나, 둘 중 하나 아니겠냐. 그들로부터 한참을 도망쳐 숨을 고르고 났을 때 이렇게 뇌까리던 열세 살 소년은 서른넷에 열세 살 소년의 아버지가 된 지금껏 뭐든 그렇게 딱 한발씩 빠르다.
*
나는 ‘시인과 촌장’ 콘서트홀에 와 있다. 친구도 애인도 아닌 애매한 위치의 한 남자가 내 옆자리다. 에둘러보니 손을 잡지 않은 남녀는 우리뿐이다. 크리스마스에 연인들을 위한 콘서트니 당연하지 않으랴 하면서도 나는 어깨라도 닿을까 왼쪽으로 살짝 몸을 튼다. 가수가 말한다. 제가 지금 ‘사랑일기’라는 노래를 할 텐데요, 노랫말 중에 사랑해요 라는 부분이 나옵니다. 그땐 서로 마주보세요. “끝도 없이 흘러만 가는 저 사람들의 외로운 뒷모습에 사랑해요 라고 쓴다, 사랑해요 라고 쓴다, 사랑해요 라고 쓴다, 사랑해요 라고 쓴다.” 홀 안은 사랑해요 라고만 나오면 서로 눈을 맞추고 고개를 까딱까딱하고 입을 쪽쪽 맞추는 온통 말 잘 듣는 연인들뿐이다. 노래가 다 끝나도록 입과 입이 떨어질 줄 모르다가 억지로 멀어진 두 사람의 입과 입 사이를 기다랗게 늘어진 한 줄의 침이 다시금 잇는 걸 본다. 이거 두 번만 사랑했다가는 침으로 목욕을 하겠네. 민망함을 못 이겨 내가 말했을 때 쉿 조용히 하라던 그 남자는 이제 없다. 몇 년 전 성전환수술을 해 참으로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언니가 되었다는 후문!
*
나는 일산시장 장날, 일행들과 함께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맞은편 테이블에 앉은 깡마른 노인이 비닐장갑 낀 손으로 숯불바비큐를 발라 겹치는 뱃살에도 꼭 끼는 미니원피스를 입은 한 여인에게 연신 들이댄다. 여인은 고기를 야금야금 받아먹으며 분명 교태라고 할 만한 말을 계속 해댄다. 글쎄 복덕방이 자꾸만 내 엉덩이가 탐스럽다며 만지려고 하잖아, 늘어진 티셔츠를 입었는데 가슴골이 깊다면서 힐끔거리잖아. 순간 담뱃갑을 힘껏 움켜쥐었던 노인이 구겨진 담뱃갑을 땅에 내던지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여인의 목을 확 끌어당긴다. 목뼈가 으스러지도록 강렬하게, 무엇보다 길고 또 길게, 바비큐 연기 자욱한 천막 아래 계속되는 입맞춤. 노인과 여인은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한참동안 원 없이 그것을 해댄다. 아휴 더러워 입이 기름 범벅일 텐데. 아무렴, 그래서 사랑 아니겠냐. 일행과 얘기를 나누는 사이 그들은 계산을 하고 서둘러 자리를 뜬다. 저 양반들 가네, 어디로 갈까? 빤하지 않겠어, 갈 데야. 가만 있자, 누가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 했던가.
*
어느새 잠이 깨어버렸다. 커다란 초원과 같은 밤이다. 달려도 달려도 언제까지 달려도 여전히 입맞춤인, 그래 사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