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취미
김종미
언젠가 실수로 접시를 깬 후 나는 매일 접시를 깬다 접시를 깨며 나는 비로소 접시를 사랑하기 시작한다 접시의 그 많은 무늬들은 어디서 오나 비로소 나는 접시에게 주소를 묻는다 가끔은 접시가 대답 대신 내 손가락을 찌른다 발가락을 찌른다 선명한 핏자국이 깨진 접시에 무늬를 새긴다 선명하게 붉은 꽃이 핀다 나는 깨진 접시의 주소가 된다 쨍그랑 내가 비명을 지른다 완벽하게 숨긴 모서리들을 와르르 쏟아낸다 나도 모르는 모서리, 낯선 주소, 낯선 남자… 알고 보니 그는 오래될수록 낯설어지는 남편, 그가 내 오래된 찬장에 새 접시를 채우고 있다 그가 비로소 아내의 새로운 취미를 눈치 챘나 보다
『새로운 취미』에서 전재 (김종미, 서정시학, 2006)
사랑은 취미가 아니잖아요
어렸을 적 동네에 방앗간이 있었다. 설이 코앞에 닥칠 때면 엄마는 방앗간에 가서 떡살을 쌀떡으로 바꿔오는 연례행사를 잊지 않았다. 바구니 가득 흰 쌀이 바구니 가득 흰 가래떡으로 바뀌는 순간, 내 입에서는 일종의 추임새랄까 감탄사 비스무리한 것이 절로 내뱉어지곤 했다. 그렇다. 총이나 다이너마이트처럼 차가운 것이 아니라 이렇게 뜨거운 것을 뽑아낼 줄 알기에 인간만이 희망이라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모락모락 김이 서린 방앗간 안에서 쭉쭉 제 살을 밀고 나오는 가래떡 한 줄이 내 손에 쥐어지기를 고대하는 마음, 그 설렘으로 나는 엄마를 따라 겨울이면 방앗간을 들락거렸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옆집 반장아줌마가 우리 집 벨을 눌렀다. 방앗간 주인 내외가 부부싸움을 크게 벌이고 있는데 아빠더러 좀 말려달라는 얘기였다. 방앗간 주인아줌마는 내복바람이었다. 끝까지 가게 밖으로 떠밀려나가지 않으려고 몸을 잔뜩 웅크렸으나 방앗간 주인아저씨는 아줌마의 맨발을 구둣발로 콱 밟아버리는 것이 아닌가. 악! 저건 너무 아픈 발이잖아! 연안부두의 무슨 조직파라고 했던가, 주먹깨나 쓴다는 아저씨의 전력을 동네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까닭에 선뜻 나서서 말리는 이 하나 없었다. 아빠를 올려다봤다. 나는 뒤에서 아빠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돌하르방처럼 가만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아빠를 나는 이해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아줌마가 허공에 대고 싹싹 빌기 시작했다. 가게 안에 들어갔다 나온 아저씨의 손에는 꽁꽁 얼린 긴 가래떡이 쥐어져 있었다. 휘휘 가래떡은 바람을 일으키며 연신 아줌마를 향했다. 아줌마의 내복 위로 피가 튀었다. 등짝도 있고, 엉덩이도 있고, 종아리도 있는데 왜 하필 얼굴일까. 잠시 후 경찰이 출동했고 그새 사라져버린 아빠를 나는 이해했다.
그로부터 일주일쯤 지났나, 엄마가 방앗간에 가서 참기름을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엄마는 아줌마의 근황이 궁금했으나 차마 얼굴을 마주 대할 자신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드르륵 가게 문을 열자 얼굴 가득 붉고 푸른 멍을 꽃으로 피운 아줌마가 때마침 밥상을 든 채 방으로 올라서고 있었다. 마침 잘 왔네, 밥 먹고 갈래? 갈치 구웠는데. 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어댔다. 술을 마시지 않아 오늘만은 민숭민숭한 표정의 아저씨가 텔레비전을 보며 아줌마의 팬티를 탁탁 털어 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어떻게 아줌마가 아저씨에게 밥을 차려줄 수 있는 거지.
아니 어떻게 아저씨가 아줌마에게 밥을 얻어먹을 수 있는 거지.
대체 어떻게 두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밥상 앞에 마주앉을 수 있는 거지.
그날 밤 나는 일기를 썼다. 담임선생님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날 불렀다. 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니? 선생님 저는요, 평생 결혼 같은 건 안 할 거예요, 너무들 쉬워요, 사랑에는 예의가 기본이잖아요. 초등학교 5학년 때의 내 일기장을 가끔 펴볼 때가 있다. 세상 모든 어린이는 이미 어른으로 태어나는 거라고 나는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