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 대하여
칼릴 지브란
그러자 아기를 품에 안고 있던 한 여인이 말했다. 저희에게 아이들에 대하여 말씀해 주소서.
그는 말했다.
그대들의 아이라고 해서 그대들의 아이는 아닌 것.
아이들이란 스스로 갈망하는 삶의 딸이며 아들인 것.
그대들을 거쳐 왔을 뿐 그대들에게서 온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지금 그대들과 함께 있을지라도 아이들이란 그대들 소유가 아닌 것을.
그대들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순 있으나 그대들의 생각마저 줄 순 없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아이들 자신의 생각을 가졌으므로.
그대들은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은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집마저 줄 순 없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으므로. 그대들은 결코 찾아갈 수 없는, 꿈속에서도 가 볼 수 없는 내일의 집에.
그대들이 아이들과 같이 되려 애쓰되 아이들을 그대들같이 만들려 애쓰진 말라.
왜냐하면 삶이란 결코 뒤로 되돌아가지 않으며, 어제에 머물지도 않는 것이므로.
그대들은 활, 그대들의 아이들은 마치 살아 있는 화살처럼 그대들로부터 앞으로 쏘아져 나아간다.
그리하여 사수이신 신은 무한의 길 위에 한 표적을 겨누고 그분의 온 힘으로 그대들을 구부리는 것이다. 그분의 화살이 더욱 빨리, 더욱 멀리 날아가도록.
그대들 사수이신 신의 손길로 구부러짐을 기뻐하라.
왜냐하면 그분은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시는 만큼, 또한 흔들리지 않는 활도 사랑하시므로.
『예언자』에서 전재 (칼릴 지브란, 강은교 옮김, 문예출판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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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한 이의 한마디]
아들아 이제 너는 자유다
강성분
한때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명제를 험난한 세상에 대한 보복이자 진리요, 불임의 변명으로 여기던 여인네가 덜컥 아들을 낳고 말았다. 인간들로 우글거리는 지구에 미안해하며 신에 감사하며 나 자신을 불안해하며 그러나 온전한 사랑을 다짐하며 아이를 낳았다.
세상의 어떤 어미가 자식이 인생의 쓴맛을 알기 바라겠느냐만 이미 단맛, 쓴맛을 넘어 온갖 구린 맛까지 다 보아 온 선험자로서, 앞으로 자식이 격을 고난이 필연이고 심지어 죽을 때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것임을 알기에, 그래서 무작정 자식의 행복만을 바랄 수 없는 어미가 내 자식만은 그 고난들을 의연히 받아들이기를, 나처럼 몸부림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수많은 다짐을 했더랬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너의 고통에 눈감으리라. 견디어 내기를 바라며.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너를 버리리라. 길을 찾아 내게 돌아오도록.
신뢰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너의 거짓을 어루만지리라. 너 스스로 진실에 목마르도록.
그러나 아이가 자라면서 이상을 실현할 굳건한 영혼을 만드는 형이상학적 모성애와 정글에서 살아남기를 가르치는 생물학적인 모성애의 구분이 모호해져 가고 있다. 생물학적인 모성애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그리도 애썼건만 달빛 없는 밤길에 익숙해지듯 곧 모성의 어두움도 드러나고 말 텐데.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아들의 육신을 빚어내듯 영혼을 빚어내는 것은 더 험악한 구속이며 월권행위일까. 아들의 육신과 인격과 영혼 중 나의 책임은 어디까지이며 단 한 가지라도 가능하기나 할까.
아이는 내가 알지 못하는, 아니 상상하지도 못하는 사상과 삶을 펼칠지 모른다. 나는 늘 누군가 숙고하여 이루어낸 지식과 철학의 소비자로서 새로운 사상과 진보적 개념들에 놀라며 받아들일 줄만 알았지 새로운 것의 생산자가 되어보지 못하지 않았던가. 그런 주제에 날 선 사상과 모성애를 무기로 자식이 나로부터의 탄생을 넘어 새로 태어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겠지. 이미 나를 앞서 나아가는 화살의 방향을 흔들지 못하듯이.
그래서 여기
엄마의 이름으로 불가능할지 모르는 다짐을 남긴다. 피융~! 아들아 이제 너는 자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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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칼릴 지브란 (Kahlil Gibran, 1883-1931)
시인이자 철학자이자 화가였던 칼릴 지브란은 수많은 예언자들을 배출한 땅 레바논에서 태어났다. 그의 시는 20개 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조각가 로댕이 시인이자 화가였던 윌리엄 블레이크의 작품과 비교하기도 했던 그의 그림은 세계 곳곳에서 전시되었다. 그는 생애의 마지막 20년을 미국에서 살며 영어로 글을 썼다. 『예언자』(The Prophet)는 20세기에 영어로 출간된 책 중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으로 기록되었으며, 사람들은 이 책을 ‘20세기의 성서’라고까지 불렀다. 저서로 『눈물과 미소』(A Tear and Smile), 『부러진 날개』(Broken Wings), 『광인』(The Madman), 『사람의 아들 예수』(Jusus, the Son of Man)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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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강은교
1968년 신인문학상에서 시 「순례자의 잠」이 당선되어 등단, 한국문학작가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 『봄 무사』, 『풀잎』, 『어느 별에서의 하루』, 산문집 『어느 불면의 백작 부인을 위하여』, 『무명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등을 펴냈다. 그 외에 데이빗 소로우의 『소로우의 노래』와 비평 연구서, 동화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현재 동아대 한국어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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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강성분
어느 날 하늘에서 아들이 하나 뚝 떨어지는 바람에 졸지에 엄마 이름을 달고 사는 아낙네다. 그 바람에 안 그래도 어설프게 살아가느라 물샐 틈 많은 인생이 기쁨거리, 걱정거리를 줄줄 흘리고 다닌다. 그래도 버리고 싶지 않은 이름 엄마. 너무도 그립던 그 이름을 이제 내가 받았다. 하지만 할머니로 오해받기 딱 좋은 엄마. 그래서 ‘무쟈게’ 긴장한 엄마. 젊어 보이고 싶어 안달하면서도 땡볕에 땀을 떨어뜨리며 무아지경에 빠지는 농사꾼 엄마. 김산이네 엄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