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2
황지우
내가 싼 똥을 내가 치운다.
들짐승처럼,
이상하다.
똥냄새가 하나도 안 난다.
참외 씨 속의 참외 속의 참외씨 속의 참외 씨,
씨를 옮기는 動物의 똥.
『나는 너다』에서 전재 (황지우, 풀빛,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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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한 이의 한 마디]
똥 잘 싸는 방법
윤성근
대학을 졸업하고 일반 회사에 다니다가 꼭 십 여 년 만에 사표를 던졌다.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한 나는, 컴퓨터 말고 다른 걸로는 밥벌이를 못 할 줄 알았다. 아니, 밥벌이가 제일 중요한 일인 것처럼 생각하며 그 십 년을 보냈다. 다른 게 아니라 바로 이게 잃어버린 십 년이다.
거짓말 같이 부풀어 올랐던 IT 거품이 스멀스멀 꺼지기 시작 할 무렵, 컴퓨터는 내게 밥 먹여 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월급 통장에는 돈이 쌓였지만 스트레스라는 보너스도 함께 쌓였다. 아침마다 똥 누는 것도 힘들었다. 내가 왜 이런 짓을 하고 있을까? 나는 나일까? 어쩌면 안전하고 포근한 내 뱃속에 가득 쌓여있는 똥보다도 못한 내가 아닐까!
모든 걸 벗어놓고 다른 옷을 입기로 했다. 책방이다.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하고 가끔은 말도 안 되는 글을 컴퓨터에 그적거리는 게 좋다. 책이 나를 구원 해 줄 수 없지만, 나는 책을 통해서 구원받았다고 믿는다. 돈 안 되는 책방 일을 한 게 이제 3년이 됐다. 누가 그런다. 무슨 일이건 3년 하는 동안 망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오래 갈 수 있다고. 기쁘다. 정말로 안 망할 것 같다. 책이 망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망하지 않을 거다.
시를 좋아하거나 잘 알지 못하지만, 오래 전부터 황지우 님 시는 아껴 읽는다. 황지우 시인은 최근에 한예총 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시인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유명한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있을 거다』 는 한두 번 즈음 들어봤으리라. 나 역시 그 시집을 좋아한다.
허나, 내게 의미가 있는 시집은 따로 있다. 1987년에 ‘풀빛’에서 초판을 낸 『나는 너다』 연작 시집이다. 제목 그대로 ‘나는 너다’ 라는 주제로 엮은 메모 같은 연작 시 여러 편을 수록하고 있다. 각 시들은 모두 제목대신 숫자로 표시 돼 있다. 어떻게 보면 공들여 쓴 시 같고, 다르게 보면 그저 한 순간 떠오른 시상을 그적거린 메모처럼 보인다.
책방을 내기 전, 오랜만에 들춰 본 시집에서 나는 충격적인 시 한 편을 본다. 아무데나 펴서 읽은 것인데, ‘내가 싼 똥을 내가 치운다.’ 라는 첫 구절을 보고 굉장한 자극을 받았다. 들짐승들은 자기가 싼 똥을 스스로 치운다. 다른 맹수들이 배설물 냄새를 맡고 자기를 잡아먹으러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똥은 짐승에게도 그렇지만 사람에게 아주 원초적인 생리현상이다. TV에 나오는 아무리 예쁜 여자도, 멋진 미남도 하루에 한번 정도 똥을 싼다. 똥을 못 싸면 ‘변비’ 라고 해서 죽을병은 아닐지라도 사람을 참 괴롭게 만든다. 그런데 시인은 스스로 만든 똥을 치우면서 ‘똥냄새가 하나도 안 난다.’ 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그럴 만도 하다. 이 똥이 다름 아닌 내 똥이기 때문이다. 더럽고 추해도 내 몸 안에서 나온, 내 부산물이니까 결국 내 자신과 다름이 아니다. 내가 아무리 겉모습을 치장하고 가면 뒤에 숨는다고 하더라도 똥은 어쩔 수 없이 똥인 거다. 똥은 가장 솔직하고 진실 된 결과물이다. 내가 똥보다도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때에 읽은 황지우 님의 시는 이렇듯 내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똥 속에 섞여 나온 참외 씨는 내가 먹은 참외 때문이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 참외는 또 다른 사람이 싼 똥을 거름으로 해서 자란 거다. 그걸 또 따서 내가 먹고 참외 씨 섞인 똥을 싼다. 그건 다시 거름으로… 덧없는 사람살이는 이렇듯 더럽고 추하고 원초적인 일들이 반복되는 것 외에 다른 게 아니다. 거기서 무슨 구원을 찾고 해탈을 꿈꾸겠는가.
해서 나는 고속으로 회전하는 컴퓨터 하드디스크 안을 빠져나와 책방으로 탈출했다. 지금도 나는 이 결정에 대해서 만족이거나 불안하다는 그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잘 한 일 이라고 믿는다. 아침마다 똥은 시원스레 잘 싸고 있지 않은가. 그거면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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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황지우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연혁(沿革)」이 입선, <문학과지성>에 「대답없는 날들을 위하여」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로 제3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고, 「뼈아픈 후회」로 김소월문학상을, 이 시가 실린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로 제1회 백석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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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윤성근
글 쓴 사람 윤성근은, 존 레논을 좋아하지만 오노 요코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닉 드레이크와 커트 코베인을 좋아하지만 빨리 죽는 건 별로다. 굵고 길게 사는 방법에 관심이 많다. 오랫동안 IT 업계에서 죽도록 일했다. 하지만 책 읽고 글 쓰는 게 컴퓨터 보다 좋았기 때문에 어느날 갑자기 잘 나가던 회사를 관두고 출판사와 헌책방 일을 두리번 거렸다. 지금은 서울 은평구 응암동 골목길에 간판도 없이 <이상한나라의헌책방>을 운영하면서 돈 안되는 글쓰기, 책읽기에 빠져있다.